모든 결혼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이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법률상 아내가 간통을 저지르면 남편이 아내와 별거해야 했습니다. 또한 자녀를 얻지 못하는 경우 등 다른 이유로도 이혼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남녀 모두 이혼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아내가 이혼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는 학대를 당하면서 가족이 그녀를 지원해 주었을 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별보다는 위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정치가이자 모험가였던 알키비아데스의 아내는 남편이 끊임없이 창부들을 집으로 데려오자 이혼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그녀에게 돌아올 것을 강요했습니다. 로마의 지배 시기에 이혼 문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아내를 향한 '곤봉'
로마인들은 전설적인 도시 건국자 롬룰루스에게서 비롯된 규정에 근거해 이미 이혼할 권리를 보장받았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편은 아내가 간통을 저지르거나, 몰래 낙태를 하거나, 열쇠를 빼돌린 경우 배우자를 내쫓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낙태'는 실제로 남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열쇠 탈취'는 잠긴 포도주 저장고를 여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당시 여성에게 적용되던 음주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어쩌면 중독까지?). 실제로 에그나티우스 메텔루스라는 로마인은 아내가 포도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곤봉으로 그녀를 때려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참고로 이 술은 피임과 초기 낙태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남성의 권력에 추가적인 '위협'이 되기도 했습니다.
로마인은 연회에 참석한 것은 물론, 혼자 포도주를 마신 것만으로도 아내와 이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혼 대신 처벌을 택하기도 했지만… 로베르 봄피아니 그림.
다른 이유로 이혼할 경우 로마인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재산의 절반은 배우자에게, 나머지 절반은 다산의 여신 데메테르(케레스)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 전통에 따르면 도시 건국 후 500년 동안 단 한 번의 이혼도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최초의 이혼은 기원전 231년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루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자녀를 가질 수 없었고, 그는 관리들 앞에서 자녀를 얻기를 희망하며 결혼하겠다는 서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동포들은 그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민적 서약보다 아내에 대한 충의가 우선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비리플라카(남편의 분노를 달래는 여신)라 불리는 여신의 신전에서 받는 치료가 부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투는 부부는 신전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제단 앞에서 서로의 잘못과 원망을 토로해야 했습니다. 이 방법은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마음을 정화시켰고, 밤의 은둔은 성관계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화해'가 목적이었겠지요.
재혼을 위한 이혼
기원전 2세기 로마 여성들에게도 이혼을 청구할 권리가 주어지면서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에 대해 더 큰 재량권을 갖게 되자 도덕적 변화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남성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지 않았고, 새로운 기회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공화정 말기와 제정 초기 로마에는 이혼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그들은 헤어진 직후 곧바로 다른 결혼을 하기 위해 이혼했습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결혼 파탄을 선언하기만 하면 끝이었습니다. 아내는 집안의 친구와, 남편은 여성 친구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때로는 여성들이 서로 넘겨지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산다고 선언하면 이미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연회를 열고 전통 의식에 참여할 수도 있었습니다. 국가는 할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기원전 19년 집정관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결혼처럼 이혼이 아닌 죽음으로 깨진 결혼은 드물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41년간 다투지 않고 살았으니."
헤어질 때 보통 어느 한쪽도 잘못이 없지 않다는 것을 삶에서 배웠던 철학자 세네카는 1세기에 '대칭적 부부 충실'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을 설파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내에게 품위를 요구하면서 스스로 다른 여자들을 유혹하는 사람은 악한이다. 아내가 간통자와 어울려서는 안 되듯이, 당신 역시 매춘부에게서 멀리해야 한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개혁조차도 로마의 이혼 만연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특별한 결혼법을 반포하여 관계 파탄을 막고자 했습니다. 이 법은 간통을 규탄했고(동시에 남편이 불충한 아내를 죽일 권리를 박탈하고 유혹자를 사형으로 처벌할 가능성을 제한했습니다), 25~60세 로마 남성과 20~50세 로마 여성에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의무를 부과했으며, 로마 시민들에게 자녀 출산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위협도, 세금 감면에 기반한 독특한 '500+ 아우구스투스 프로그램'도 풍습을 고치지 못했고, 인구 증가 붐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늙은 독신자들에게 특별 세금을 부과하기에 이릅니다. 남성들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여성들을 통제할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성들의 열망은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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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자가 최근 저술한 책 『수치의 시대, 고대의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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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ławomir Koper,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생활과 에로틱한 삶』, Bellona 2011.
- Seneca,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도덕 서간』, Michel Foucault, 『성의 역사』, Bogdan Banasiak, Tadeusz Komendant 외 옮김, Wydawnictwo świat/obraz Klimatyzacja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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