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73년부터 기원전 232년까지 인도를 통치한 마우리아 제국의 황제 아쇼카는 모든 인도 종교를 존중하는 통치자였지만, 동시에 불교 포교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 최초의 황제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통치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원형 불교 차이티야가 오늘날까지 그 흔적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비자크 언덕에서 발견된 원형 차이티야
서기 1909년, 바이라트(Bairath)의 비자크 언덕에서 지름 약 27피트(약 8.2미터)의 원형 불교 차이티야(불교 사원)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차이티야는 아쇼카 황제 통치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며, 돌 대신 팔각형 목재 기둥과 벽돌을 사용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합니다. 발굴 당시 이곳에는 약 26개의 목재 기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기둥들은 모두 타서 그을린 상태로 출토되었습니다. 이 기둥들이 회당인 '사바 만다프(Sabha Mandap)'를 받치고 있었습니다.
각 기둥 사이사이에는 벽돌로 쌓은 벽이 들어서 있었고, 사원의 지붕 역시 목재와 켈루(Kelu)로 덮여 있었습니다. 사원의 입구는 동쪽을 향해 있었으며, 동굴을 깎아 만든 형태의 차이티야와 달리 이곳의 차이티야는 두 개의 원형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고, 두 원 사이에는 참배를 위한 순례 회랑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주나르 석굴 차이티야와의 비교
이 차이티야는 서기 1세기 주나르(Junnar) 툴자 리나(Tulja Leena) 군의 차이티야 석굴과 유사성이 지적됩니다. 다만 바이라트의 차이티야는 목재와 벽돌을 사용한 반면, 툴자 리나의 차이티야는 석굴을 깎아 만든 12개의 기둥을 원형으로 배치해 축조했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학자들은 바이라트 차이티야를 본떠 이후 인도 서부와 동부의 여러 차이티야가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재 더미로 미루어 이 차이티야는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이 바하두르 다야람 사니(Rai Bahadur Dayaram Sahni)는 훈족 침략자들에 의해 불탔다고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사리(骨舍利)
자이푸르의 사와이 람 싱(Sawai Ram Singh) 국왕 재위 시절에는 이곳에서 금제 궤(函)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그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담겨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중 벽 사이 중앙에 참배용 회랑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히나야나(상좌부) 교단의 승려들이 이곳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자가 새겨진 벽돌
원형 차이티야에서 출토된 벽돌에는 한두 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파샴(Pasham)', '비스(Vis)', '워(Woe)', '워크(Work)' 등의 단어가 확인되었습니다. 아마도 차이티야 외벽에 불교 경전의 구절 일부가 새겨져 있었고, 그 파편이 문자와 단어의 형태로 벽돌에 남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규모 불교 비하라(승원)
비자크 언덕의 상부 단지는 폭넓은 계단 열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발굴 결과 거대한 불교 비하라(승원)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사각형 중심 공간 주변으로 6~7개의 선방(禪房)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중앙의 승원은 규모가 컸고, 원장(住持)과 함께 생활하는 인원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원장의 일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방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불교 수도원 유적의 잔해로 미루어 해당 비하라는 두세 차례 이상 개축·보수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비하라의 벽돌은 원형 차이티야에서 발견된 것과 완전히 동일한 규격이며, 진흙 모르타르로 쌓고 내외부에 하얀 회반죽 층이 발라져 있었습니다.
바이라트에서 출토된 불교 유물
이 유적에서는 인물 형상이 새겨진 토기, 바퀴 무늬 위의 삼보(三寶, 트리라트나) 문양과 만(卍)자 문양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새를 형상화한 토제 장난감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이 형상들은 바르후트(Bharhut)에서 출토된 조각품들과 놀랄 만큼 흡사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덮개 달린 용기와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불교 유적에서 흔히 출토되는 북방 흑색 연마 토기(Northern Black Polished Ware)와 갈색 또는 회색 토기 역시 이곳에서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유물들의 존재는 이곳이 불교 유적임을 확증해 줍니다.
부처님 상이 없는 이유
이곳에서는 부처님의 어떠한 형상이나 조상(造像)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이 차이티야는 부처님을 신격화하지 않고 불상을 만들지 않았던 히나야나(상좌부) 교단의 차이티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기독 시대 이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히나야나 교단에서도 불상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라자스탄 잘라와르 지구에서는 히나야나 계열임에도 많은 불상이 함께 발견된 불교 석굴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사자 형상의 아쇼카 석주
이곳에서는 매끈하게 연마된 석주와 연마되지 않은 석주 두 종류, 총 약 100여 개의 파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석주들은 추나르(Chunar) 석재로 만들어진 아쇼카 석주의 파편으로, 윗부분이 길고 튼튼한 구리선으로 묶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주 상단에는 사자 형상이 얹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이 사자 조각의 파편 다수가 이곳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다야람 사니는 참파란 지구 람푸르바(Rampurwa) 유적에서 이와 같은 사자가 얹힌 석주 두 개를 목격한 적이 있으며, 그중 하나는 왕도(王道)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바이라트에서 두 개의 아쇼카 석주가 확인됨에 따라 이러한 석주의 총수는 16개로 늘어났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이런 석주가 14개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한편 헨리 커즌스(Henry Cousins)는 치토르가르 지구 나그리(Nagri)의 칸칼리 마타 여신상 근처에서 이와 같은 아쇼카 석주의 사자 머리 하나를 발견한 바 있습니다.
아쇼카 시대 은화의 출토
불교 비하라 동쪽 벽체 두께 사이에서는 은화 36닢이 담긴 작은 토기 항아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화폐 가운데 8닢은 펀치마크(punch-mark) 은화, 28닢은 그리스 양식의 은화였으며, 모두 아쇼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