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물 보호 단체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인터넷은 반려동물 학대 소식으로 들썩입니다. 만약 옛날 '곰 아카데미'의 곰새끼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과연 어떤 말을 남겼을까요?
폴란드-리투아 연방 시절 사람들은 자연의 신기한 것들을 즐겨 구경했습니다. 대귀족들은 궁정에 흑인 종들을 두었고, 사자·호랑이·표범 가죽은 기병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이었으며, 쇠사슬에 길들여진 곰을 끌고 다니는 롬(집시)들은 귀족 저택과 도시 거리 어디에서나 커다란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저렇게 훈련 잘 된 곰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놀랍게도 그들만의 '아카데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럽에서 폴란드는 두 개의 아카데미로 유명했습니다. 하나는 각지와 주변국에서 온 수많은 학생을 가르친 크라쿠프 아카데미였고, 다른 하나는 흔히 스모르곤 아카데미라 불린 곳으로,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걷는 젊은이들을 길러냈습니다. 이 털복숭이 학생들의 실력은 속담처럼 회자될 정도였는데, 덕분에 옛 폴란드에서는 총명하지 못한 사람을 '스모르곤의 백파이프'라고 불렀고, 춤솜씨 없는 사람은 '스모르곤 졸업생의 우아함'으로 움직인다고 놀렸습니다.
전설의 아카데미는 어떻게 탄생했나?
곰을 다루는 집시들이 이미 16세기 폴란드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롬 민족에게 곰 조련은 솥 제작, 말 장사, 대장장이 일, 절도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생계 수단 중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리투아에 살던 롬 사람들은 '사랑받는 영주'라 불린 카롤 라지비우 공작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공작령 스모르곤에 정착해 여러 직업에 종사했으며, 공작이 임명한 롬 '왕'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이 왕의 임무 중 하나가 바로 곰들을 위한 일종의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는데, 숙련된 교관들의 감독 아래 곰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털복숭이 학생들의 입학

그렇다면 곰새끼에게는 어떻게 춤을 가르쳤을까요?
리투아는 오랫동안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숲속 동물들은 (어떤 귀족이 사냥을 나오기 전까지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리투아 숲의 왕은 당연히 곰이었습니다. 스모르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때때로 숲으로 들어가 어린 곰새끼를 포획했고, 포획된 곰들은 그대로 학교의 새 학생이 되었습니다.
한 번에 수십 마리의 학생이 재학했습니다. 크라쿠프 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남녀공학이 아니었기에 암컷 곰은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네발 짐승의 입학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교와 달리 세례 증명서도 두창 예방접종 증명서도 필요 없었고, 혈통은 첫눈에 알 수 있었으니까요. 재미있는 점은 외국인(정확히는 외국산 동물)도 입학이 허용됐다는 사실입니다. 라지비우 공작은 원숭이 몇 마리를 학교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곰을 학교에 맡긴 사람은 비용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먼저 재정 문제부터 논의해야 했는데, 곰의 숙식 비용은 당연히 지불 대상이었습니다. 게다가 곰의 교육을 전담할 특별 교관을 따로 고용해야 했습니다.
곰새끼들은 이렇게 춤을 배웠다
곰새끼에게 춤을 가르치던 교실은 바닥 대신 타일 화덕이 깔린 넓은 방이었습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굵은 나무 기둥이 서 있었고, 학생은 튼튼한 밧줄로 이 기둥에 묶여 있어 수업에 질려도 도망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수업 방식은 이렇습니다. 화덕에 불을 지펴 바닥이 거의 붉게 달아오르면, 앞발은 맨발로, 뒷발에는 짚신과 발보호구를 신긴 곰새끼를 안으로 들였습니다. 학생이 뜨거운 바닥 위에 서자 롬 사람이 바이올린이나 피리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앞발이 데워진 곰새끼는 재빨리 (신발로 보호된) 뒷발로 일어서서 어설픈 춤 같은 동작을 하게 됩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배운 사람이라면, 이후 곰이 바이올린과 피리 소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벨라루스에 속한 스모르곤의 문장에는 오늘날까지도 곰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학생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듯, 스모르곤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6년 재학 기간 동안 종종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관리인과 함께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귀족 궁정과 도시에서 곡예를 선보이고 돈을 받았는데, 그 수입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스모르곤 아카데미의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학생이 그렇듯 스모르곤의 곰들에게도 방학이 있었지만, 날짜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모후(母后) 자연께서는 가련한 곰이 겨울잠을 자야 한다고 정해두셨으니까요. 봄이 되면 스모르곤 대학의 졸업생들은 세상으로 떠나고, 가을이 되면 반드시 모교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학교 건물에는 곰들이 겨울잠에 빠질 수 있는 방이 마련되어 있었고, 11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 잎과 솔잎, 나뭇가지를 깐 보금자리 속에서 곰들은 방학을 즐겼습니다.
이제 진짜 '곰 조련사'는 사라졌지만…
스모르곤 아카데미는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고, 19세기 초까지 곰을 끌고 다니는 집시들은 마을과 도시의 단골 손님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11월 봉기(1830~1831) 당시 문을 닫았습니다. 19세기 말 바르샤바에서는 곰 조련사와 그들의 곰의 도시 출입을 금지하는 법령이 반포되었고, 다른 마을과 도시에서도 곰 구경거리는 금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제2공화국(폴란드) 영토에서는 쇠사슬에 묶인 곰을 끌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조련사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곰 조련이라는 직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유럽에서는 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현지 조련사들의 손에 들어간 곰들의 처지는 참담합니다. 곰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어린 곰의 이를 부러뜨리고 발톱을 자르는 것이 표준적인 관행이었습니다. 다행히 낡은 훈련 기법은 버려졌고, 2002년부터는 불가리아에서 곰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주인에게서 구출된 곰들을 돌보는 재단도 설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