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했을까?

오늘날 냉장고 없는 주방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가정은 물론 상점, 주유소, 심지어 작은 매점까지 상하기 쉬운 식품과 시원한 음료를 보관하는 냉장고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19세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자존심 있는 주부라면 언제나 '만약에'를 대비한 소소한 비축물을 갖추고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은 슈퍼마켓과 할인점이 넘쳐나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비축을 늘리거나 바꾸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가주(家主)는 계절마다 철저히 준비해야 했습니다. 물론 옷장을 유행에 맞게 바꾸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 어떻게 얼렸을까?

당시 사람들의 구원자는 생활 지침서였습니다. 지주들에게는 일종의 성경과도 같은 책이었죠. 부인들은 이 책에서 저장식품 만드는 법, 포도를 겨울까지 보관하는 방법, 얼룩 제거법 등을 배웠습니다. 저자들은 또한 농장을 더 잘 꾸리는 실용적인 조언도 함께 건넸습니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했을까?

얼음 창고를 짓는 일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택의 소작인들을 동원하면 가능했으니, 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많은 조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냉장고에 해당하는 '얼음 창고'를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이 신비로운 이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상자 속의 겨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마련된 공간(그리고 종종 별도의 건물)으로, 여러 영리한 장치 덕분에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거의 0도에 가까운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얼음 창고는 저택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폴란드 주부들을 위해 쓰인 책 『저택(Dwór)』(1843)의 저자 카롤리나 나크바스카(Karolina Nakwaska)는 실용적인 역할 외에도 거의 생사가 걸린 듯한 장점을 발견했습니다.

…때로는 건강에도 적잖은 도움이 됩니다. 신의 도움과 얼음만이 병든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병이 많으니까요 (…) 그러니 필요한 만큼의 얼음을 얼음 창고에 따로 두세요. 그러면 그 보상은 금방 돌아올 것입니다. (M. & J. 워진스키, 『폴란드 미식의 역사』 인용)

의학이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시절, 고열 환자에게 훌륭한 냉찜질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생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용도 외에도 얼음 창고에는 더 소박한 용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아는 냉장고가 미친 발명가들의 망상에 불과했던 시절, 상하기 쉬운 식품을 보관하는 일이었습니다.

직접 만들어 보자: 나만의 얼음 창고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얼음 창고는 모든 저택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주부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지 못했다면 검증된 저자들의 조언에 따라 직접 건설을 진행했습니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했을까?

나크바스카의 지침서 표지

얼음 창고에 가장 좋은 자리는 낮은 언덕으로, 저택 공원에 흔한 늙은 나무의 울창한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었습니다. 이 언덕에 구멍을 파고 벽을 벽돌로 쌓거나 나무로 지었습니다.

나무로 지을 경우에는 이중 벽을 세우고 그 사이에 짚처럼 열이 통하지 않는 재료를 채웠습니다. 얼음 창고 바닥에는 금속 격자를 깔고 그 위에 얼음을 올렸습니다. 몇 달에 걸쳐 서서히 녹으면서 물은 격자 아래로 흘러 땅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평범한 지붕 대신 흙, 잔디, 이끼로 단열된 아치형 천장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만으로는 절반의 성공에 그칩니다. 결국 출입구 문제가 남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침서 저자들의 귀중한 제안이 빛을 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나크바스카는 이렇게 권했습니다.

작은 복도가 있어야 합니다. 좁고 반목조(半木造)로 된, 두 개의 밀폐된 문이 달린 복도입니다. 첫 번째 문은 저택 쪽에서 북쪽을 향해 왼쪽으로 열리고, 두 번째 문은 얼음 창고 쪽에서 오른쪽으로 열립니다. 복도가 저택에서 얼음 창고로 곧장 이어지지 않고 반원형으로 꺾이는 것이 좋습니다. 얼음 창고의 표면처럼 말이죠. 그래야 공기와 빛이 최대한 적게 들어옵니다. 들어간 사람은 등 뒤에서 첫 번째 문을 닫은 후에야 두 번째 문을 열어야 하며, 이 때문에 손에 등불을 들고 저녁이나 해 뜨기 전에만 들어가야 합니다. (M. & J. 워진스키, 『폴란드 미식의 역사』 인용)

이제 얼음 창고를 준비하고 들어가는 법을 알았으니, '냉각재'를 채우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얼음 창고에 얼음은 어떻게 넣었을까?

한 해의 끝자락, 자연이 두꺼운 눈 아래에서 잠들고 온 세상이 혹한에 얼어붙을 때, 비로소 얼음 창고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에는 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습니다.

강과 호수에서 큰 얼음 덩어리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톱으로 얼어붙은 수면을 잘라낸 뒤 갈고리로 끌어올렸죠. 이 덩어리들을 창고 안에서 부수고, 그리고 주목하세요, 뜨거운 물을 부었습니다! 최대한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할 곳에 끓는 물을 쓰는 것이 절대적으로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과학이 숨어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은 얼음 조각들은 군데군데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로 굳었고, 이후 훨씬 더 천천히 녹았습니다. 그 위에는 두꺼운 소금층을 얹었습니다(나크바스카는 몇 개의 냄비 분량을 언급하지만, 많을수록 좋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설계와 건설 작업이 끝나고 얼음까지 채웠다면, 이제 이 정교한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고기와 사슴고기, 유제품(버터가 녹색으로 변하고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녹아야 가장 맛있는 풍미가 난다는 옛 폴란드의 믿음은 오래전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각종 상하기 쉬운 식품들이 보관되었습니다. 덕분에 한여름에도 상한 음식으로 인한 식중독 위험이 크지 않았습니다.

이 기능 외에도 얼음 창고는 하나 더, 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더위에 가장 우아한 숙녀들조차 아무 대책 없이 창백한 얼굴에 땀을 흘릴 수밖에 없던 무더위의 날, 얼음 창고는 구원의 처소였습니다. 이미 19세기에 귀부인들은 시원한 음료 없는 여름, 그리고 물론 아이스크림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얼음 창고 덕분에 요리사들은 푹신하고 향긋한 빙수를 아이스크림으로 만들고, 견디기 힘들 만큼 따뜻한 음료의 온도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창밖이 12월이고 온도계가 영하를 가리킬 때는 주방의 냉장고 역할을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여름의 가장 무더운 날, 누군가 냉장고를 꺼버리거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장 난다면(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렴풋한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증조할머니들은 이런 고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냉장고는 완전히 친환경적이었습니다!

출처:

  • Maja & Jan Łoziński, 『폴란드 미식의 역사(Historia polskiego smaku)』, PWN, 바르샤바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