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와 항생제, 정밀한 수술 기구가 전무했던 고대 로마에서 신장 결석(요로 결석)은 가장 고통스러운 질환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이 극심한 통증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충격적인 치료법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신장 결석을 치료하는 방식은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극도로 기괴했고, 물론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당시 의학이 도달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1단계: 몸을 움직여 결석 배출 시도
치료의 첫 번째 단계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환자가 제자리에서 여러 번 뛰게 하는 것이었죠. 결석이 저절로 방광을 통해 배출되기를 바라는 일종의 시행착오였습니다.
만약 이 방법으로 효과가 없다면, 환자에게 상체를 깊이 숙여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두 손을 다리 뒤로 감아 잡은 자세를 취하도록 했습니다. 체중과 중력을 이용해 결석의 위치를 바꾸려는 시도였습니다.
2단계: 외과의사의 숙련된 손길
이러한 방법들로도 결과를 얻지 못하면, 이제 비로소 외과의사의 기술과 도구가 동원되었습니다.
실제 과정은 이렇습니다. 의사가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결석을 방광 쪽으로 밀어내려 했고, 동시에 조수가 복부 바깥에서 손으로 눌러 결석을 고정했습니다. 두 사람의 협업이 필수적인 위험한 시술이었던 셈입니다.
최종 단계: 결석 절개술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석이 나오지 않으면, 마지막 수단이 동원되었습니다. 외과의사는 항문과 생식기 사이 부위를 직접 절개하여 결석을 꺼내냈습니다. 마취가 전혀 없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만성적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해방감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결석 절개술(lithotomy)'은 고대 로마 이후에도 수백 년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시행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내시경과 초음파 파쇄술 덕분에 흉터 하나 없이 결석을 제거할 수 있지만, 고대 환자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현대 의학의 발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