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최하위권, 유로 대회도 부진… 폴란드 스포츠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였을까?
최근 올림픽에서 폴란드 대표팀의 성적은 최하위권에 머물렀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사실 폴란드 스포츠의 마지막 전성기는 의외로 폴란드 인민공화국, 즉 공산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우수한 선수를 키워내는 어떤 마법 같은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1980년대 스포츠 영웅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진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스파르타적 환경 속에서 시작된 축구 인생
브와디미에시 스몰라렉(Włodzimierz Smolarek)은 비제프 우치(Widzew Łódź) 역사상 최다 리그 득점자(61골)였고, 폴란드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여러 차례 맡았으며, 1982년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매우 소박했으며, 국가는 그의 성공에 거의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스몰라렉이 공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 살 무렵이었습니다. 알렉산드루우 웃치(Aleksandrów Łódzki) 지역 클럽인 '부크니아시(Włókniarz)'에서 정기적인 훈련을 시작한 것이죠. 훈련 조건은 소박한 수준을 넘어 완전히 스파르타적이었습니다. 스몰라렉의 회고록 형식으로 쓰인 전기(축구 선수 출신 친구 야체크 페르진스키가 집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서너 번 훈련했고, 폴란드 대부분의 클럽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 체육관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알렉산드루우의 학교에서 훈련했다. 가장 많이 이용한 곳은 제3초등학교였다."
위생 관념도, 선수들을 위한 최소한의 편의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훈련 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은 아예 논외의 일이었습니다. 스몰라렉은 특히 부상 상황에서 두드러졌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때 나는 폴란드에서 내 경력 내내 나를 따라다닐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가장 초라한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스포츠 의학의 부재였다. 클럽에는 의사가 없었다."
구장 역시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물웅덩이도, 구멍도, 울퉁불퉁한 자국도 없는 평평한 잔디 위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젊은 축구선수들에게는 진짜 사치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의 스몰라렉.
잦은 감독 교체, 제대로 된 훈련 시스템의 부재
감독들은 만화경처럼 자주 바뀌었습니다. 한 클럽에서 몇 년간 경력을 쌓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훈련 자체도 야심 있는 선수들의 필요에 맞춰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스몰라렉은 동료들에게 사적으로 함께 운동해 달라고 부탁할 때만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본인은 훈련하고 동료들은 '조력자' 역할을 해주는 식이었죠. 게다가 미래의 챔피언이라 해도 오늘날 선수들처럼 오직 스포츠에만 전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글은 야체크 페르진스키(Jacek Perzyński)의 저서 『스몰라르: 개성 있는 축구선수』(에리카 출판사, 2012)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스몰라렉은 즈기에시(Zgierz)의 학교에서 제과 기술을 배웠고, 이후 알렉산드루우 웃치 시내 광장에 있는 제과점에서 안트차크(Antczak)와 발체르(Balcer) 두 장인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러한 진로는 아버지가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열정적인 축구선수였지만, 아들이 프로 선수가 될 재능이 있다고는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과사는 좋은 직업이다"라고 말한 아버지는 어떤 항의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스몰라렉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것이 내 직업이 되었지만, 사실 나는 쿠키나 다른 단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제과점에서 일하면서 손이 까지기 일쑤였는데, 제과점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다. 도넛 반죽을 체에 통과시킬 때면 거의 항상 손이 까졌다."
"네가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내 손에 선인장이 자라는 게 더 빠를걸"
미래의 스타는 제과점에서 거의 3년을 보냈습니다. 사장은 그를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소년이 축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장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내 손에 선인장이 자라는 게 더 빠를걸."
그럼에도 스몰라렉은 축구선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훈련 시스템에서 그가 실제로 칭찬한 것은 운동 계획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일과 선배·후배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체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축구선수의 위대한 성공은 누구 덕분이었을까요? 분명히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타고난 재능일까요?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게 끊임없이 노력을 강조했던 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인민공화국 폴란드에는 재능을 찍어내는 공장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축구선수에게는요.
출처:
- 야체크 페르진스키(Jacek Perzyński), 『스몰라르: 개성 있는 축구선수(Smolar. A footballer with character)』, 에리카 출판사(Erica),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