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8분짜리 한 편의 필름이 프랑스인들의 공산주의 환상을 무너뜨린 순간

전후 프랑스,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광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사회에는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특별한 호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 프랑스 공산당은 센 강변 정치권의 주요 세력 중 하나였으며,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20%에서 거의 30%에 이르는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이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그동안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수용소 군도』, 그리고 부족했던 '눈에 보이는 증거'

책은 누구나 들어본 바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1973)다. 이 책의 출간은 이미 프랑스에서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소련이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두어 두고 있다고?" 그러나 솔제니친의 증언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형의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2년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1975년 12월, TV 화면에 나타난 소련의 수용소

1975년 12월, 프랑스 제1채널은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촬영된 것으로 홍보된 다큐멘터리 필름을 방영했다. 예상과 달리 영상은 극도로 감정적이거나 끔찍한 장면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시네마와 역사』의 저자 마르크 페로(Marc Ferro)는 이 필름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필름의 길이는 약 8분이다. 무성 컬러 필름으로, 중간중간 빈 프레임들이 촬영의 공백을 나타낸다. (...) 아마도 은밀히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건물과 그 위에 세워진 감시탑이 보인다. 탑도 벽도 특별히 높거나 압도적이지 않아 모든 것이 상당히 평범해 보인다. 초록색 제복과 어깨 계급장을 단 민병대 혹은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으며, 개들이 그들을 따른다.

8분짜리 한 편의 필름이 프랑스인들의 공산주의 환상을 무너뜨린 순간

필름에 등장한 수용소는 리가 교외의 대략 이러한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방영된 영상 자체는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경찰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수감자들이 나타난다. 약 60명 정도로, 한 줄로 늘어서 평범한 걸음으로 걷고 있으며 엄격한 규율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개들의 존재는 감시가 가까운 곳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131~132쪽)

동구권 사람들에게는 놀랍지 않았던 풍경

동쪽 이웃들의 실상을 잘 알던 폴란드인들이라면 이 영상에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이곳은 '강제수용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 페로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필름에 담긴 곳은 리가 교외에 위치한 평범한 형무소였다. 결코 은닉되거나 비밀스러운 시설이 아니었고, 그 엄격함의 수준도 예컨대 미국의 교도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제니친이 묘사한 진짜 굴라그는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처참한 곳이었다.

8분짜리 한 편의 필름이 프랑스인들의 공산주의 환상을 무너뜨린 순간

소련 언론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사진은 『문학 신문』의 삽화.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때까지 소련이 진정한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수의 프랑스인은 "소련에는 정치범이 없다"는 주장을 맹목적으로 믿어 왔다.

소련 언론의 발끈한 반격

물론 소련 측 언론은 공격에 대한 공격으로 화답했다. 『문학 신문(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의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이 얼마나 규율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범죄자들인가! 가장 존경받는 언론과 TV, 라디오 회사들이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듯 일제히 공세에 나섰다!

8분짜리 한 편의 필름이 프랑스인들의 공산주의 환상을 무너뜨린 순간

이 글은 마르크 페로의 저서 『시네마와 역사』(폴란드 과학출판사 PWN, 2011)를 주로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반응과 소련 측의 "굵은 실로 꿰맨 거짓말"이라는 비난은 프랑스 여론의 마음에 들릴 리 없었다. 프랑스 공산당조차 발밑이 뜨거워지는 것을 실감했다. 몇 달 뒤 열린 1976년 당대회에서 이 정당은 소련과의 관계를 끊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한 미국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소련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 프랑스 공산당은 모스크바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러한 수용소가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범이 그곳으로 보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모스크바는 "프랑스 공산주의자들과 반소 세력 간에 결탁이 있었다"고 되받아쳤다.

평범한 필름이 남긴 거대한 균열

결국 이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필름이 프랑스인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프랑스 공산당은 적시에 소련과 거리를 두었지만, 그럼에도 그 여파는 피할 수 없었다. 1981년 이후 이 당이 총선에서 10%의 문턱을 넘어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