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전간기 폴란드군의 종병 제도, 인민정권이 만든 '귀족 군대' 신화의 실체

1944~1945년 이른바 '해방' 직후, 새 권력은 그때까지 이어져 온 폴란드 군대의 전통 전반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국내군(Home Army) 출신 병사와 전쟁 전 장교들은 물론이고, 장교 곁에서 묵묵히 봉직하던 '종병(ordinans)'마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새 정권의 공식 선전은 '너희들의 군대'라는 기묘한 명칭으로 당시 폴란드군을 맹비난했습니다. 이 이름 아래에는 귀족 출신 젊은이들과 무능한 '판(pan·영감)'들, 그리고 폴란드 군단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자기만족에 빠진 술꾼 장교들로 구성된 군대가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요컨대 진정한 군인이 아니라, 1939년 9월의 참패로 폴란드를 이끈 '계급 질서'의 잔재들이 뒤엉킨 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전간기 폴란드군의 종병 제도, 인민정권이 만든  귀족 군대  신화의 실체

폴란드 군단 시절에도 장교에게는 종병이 있었다. 사진은 유제프 피우수츠키 여단장과 그의 종병 심키에비치.

전쟁 전 폴란드군의 '귀족적' 성격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 중 하나는, 예외 없이 모든 장교가 개인 종병을 두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종병의 존재는 귀족적 특권의 발현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한 필요에 따른 것일까요?

종병과 마부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피오트르 야즈빈스키(Piotr Jaźwiński)는 저서 『장교와 신사들』에서 바로 이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의 책에 따르면 20세기 전반부에 종병 제도는 붉은 군대를 포함한 모든 군대에 존재했습니다. '노동자 낙원'이라 불리던 소련에서조차 장교에게 종병이 붙었다면, '지배 계급의 특권'이라는 주장은 이미 설득력을 잃습니다. 하지만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보며 물어봅시다. 대체 왜 전쟁 전 폴란드군에는 이토록 많은 종병이 있었던 걸까요?

기본적으로 모든 장교에게 종병이 배속되었고, 기동 부대에서 복무하는 경우에는 말을 돌보는 마부(koniuchy)까지 지급되었습니다. 이 역할은 보통 선임 연차의 이등병들이 맡았는데, 강조할 점은 완전히 자발적인 복무였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형태의 압박이나 강제로 이등병을 종병으로 만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전간기 폴란드군의 종병 제도, 인민정권이 만든  귀족 군대  신화의 실체

기동 훈련 기간에는 종병과 마부의 할 일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이 역할을 맡으려는 사람은 늘 넘쳤습니다. 사진은 피오트르 야즈빈스키의 책 『장교와 신사들 — 폴란드 제2공화국 기병대의 사적·공적 생활』(IW Erica, Tetragon, 2011)에서 가져왔습니다.

복무가 자발적이었고 지원자가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병 역할이 결천 박하게 여겨지거나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종병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요? 야즈빈스키의 책에 인용된 전쟁 전 기병 장교 그제고시 치지크(Grzegorz Cydzik)가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종병은 장교의 관사 청소를 비롯해,

군복과 마구, 장구류의 적절한 상태를 관리하고, 세탁물과 구두를 수선소에 가져다주고 찾아오며, 소액의 물품 구매를 알선한다. 또한 야외 작전 시에는 서류 가방을 싸고 풀며, 정해진 시간에 중대 수레에 싣고 기동 훈련 내내 이를 살피고, 배속된 장교의 식사를 준비하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한다.

마부의 일은 더 많았습니다. 장교의 말에게 먹이를 주고, 청결을 돌보고, 안장을 얹으며, 법정 기준 네 필의 말과 함께 산책을 나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동 훈련과 연습 기간에는 마부가 장교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기병포병에서는 하급 장교에게 별도의 개인 종병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부가 종병 역할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전간기 폴란드군의 종병 제도, 인민정권이 만든  귀족 군대  신화의 실체

기병 장교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자신의 말이었다. 기병 장교 하나가 최소 네 필의 말을 소유했고, 이들을 돌보는 것은 마부의 몫이었다. 사진은 피오트르 야즈빈스키의 『장교와 신사들』(IW Erica, Tetragon, 2011)에서 가져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법령은 점차 제한을 더했고, 1936년부터는 연대장과 기병 장교만이 종병을 둘 권리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기혼 장교들은 고용인 급여로 월 50즐로티 상당의 수당을 받았습니다. 같은 법에 따라 종병이라는 명칭도 '개인 종병(ordynans osobisty)'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가족의 일원처럼

종병과 마부가 군대에서 나쁘지 않은 처우를 받았다는 점은, 장교의 급여에서 용돈 형태로 지급되는 일정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제13 빌니우스 울란 연대에서 복무했던 그제고시 치지크의 회상입니다.

매달 최소 10즐로티를 용돈으로 주는 것이 관례였고, 제대할 때면 종병은 민간용 옷과 신발을 마련했습니다. [...] 루작(luzak·말을 돌보는 병)은 매달 최소 12즐로티의 용돈을 받았습니다.

치지크는 또한 좋은 종병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우받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는 빈말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장교가 종병과 마부를 두는 것은 사실상 유일하게 합리적인 해법이었지, 전쟁 전 폴란드군의 '지배 계급적' 성격의 발현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장교들의 어깨에 놓인 방대한 업무량을 감안하면,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할 시간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민간 하인을 고용하는 것은 논외였습니다. 젊은 장교에게는 그럴 재정적 여유가 없었을 뿐 아니라, 군 당국 역시 민간인 수십 명이 영내에 상주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결론적으로 '종병 = 너희들의 군대'라는 논리는, 폴란드 인민공화국 시절 만들어진 제2공화국 군대에 대한 다른 통념들과 마찬가지로 동화책 속 이야기로 분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출처:

기본 자료:

  • 피오트르 야즈빈스키, 『장교와 신사들 — 폴란드 제2공화국 기병대의 사적·공적 생활』, 바르샤바 2011.

보충 자료:

  • 바르토시 크루신스키, 『폴란드 제2공화국의 장교 경력』, 포즈난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