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기 소시지와 순대, 그리고 도시 하나에만 일곱 개의 전문 가게
말고기로 만든 소시지, 순대, 심지어 암말 소시지까지. 단 하나의 도시에만 일곱 개의 가게가 말고기 제품만을 전문으로 판매했습니다. 이러한 열풍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가난의 상징이었던 말고기
폴란드에서 말고기는 언제나 가난과 함께 언급되었습니다. 이미 1906년, 당시 소폴란드(마워폴스카)의 수도에서 발행되던 신문 '노비 즈보네크(Nowy Dzwonek)'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리비우, 크라쿠프, 그리고 타르누프에서도 말고기가 판매되고 있다. 11월 한 달 동안 리비우에서만 150마리의 말이 도축장으로 보내졌다. 소고기, 돼지고기, 송아지 고기 값이 급등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말고기를 먹기 시작하고 있다."

굴레를 쥔 짐마차 마부 (사진: 퍼블릭 도메인)
흥미롭게도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점령당국이 말고기 거래 전체를 국가가 독점하고 가격까지 통제하는 공식적인 국영 독점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습니다.
연간 25만 킬로그램
독립 이후인 전간기에도 말은 여전히 식탁에 올랐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집안 형편상 다른 고기를 살 여유가 없을 때의 선택이었습니다.
1928년 잡지 '나샤 지엠랴(Nasza Ziemia)'는 어느 정도 선정적이면서도 혐오감을 담아 "크라쿠프에서는 말을 먹는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그해 공식적으로 약 1,000마리의 말이 식용으로 도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치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1937년 우치에서는 매달 2만 킬로그램의 말고기가 소비되었는데, 이는 약 90마리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심장, 냉육, 그리고 소시지
교양·오락 주간지 '롤라(Rola)'에 따르면, 말고기는 소시지, 냉육, 순대 등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도시에는 이런 제품을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정육점이 무려 일곱 곳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외 수십 곳의 가게에서도 말고기가 몰래 유통되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기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아마도 동물 권익 운동가들뿐이었을 것입니다.

말과 함께 있는 젊은 고산지대 청년 (사진: 퍼블릭 도메인)
사실 대전(大戰) 이전부터 이런 취지의 단체 중 하나가 베를린에서 특별한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행사에서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말고기를 맛보라고 적극 권유했습니다. 그 목적은 지칠 대로 지친 일하는 말들이 "하군의 채찍에 시달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끌려다니는 대신, 도축장으로 팔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인도주의였을까요?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출처
이 글은 저자가 저술한 책 『주방에서 본 20년 — 전쟁 전 폴란드의 미식사(食史)』("Twenty years from the kitchen. Culinary history of pre-war Poland")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활용한 자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