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빅토리아 여왕과 이어진 60년 군림의 의미

두 여왕, 두 시대: 빅토리아와 엘리자베스 2세

케닐링크(Kennislink)에는 매주 게스트 칼럼이 게재된다. 칼럼니스트는 회차마다 달라지며, 각 분야의 연구자가 사회적 사건이나 일상 속 현상 이면에 숨은 학문적 통찰을 조명한다. 이번 주 필진은 역사학자 페터 리트베르헌(Peter Rietbergen)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다룬다.

60년의 군림, 다이아몬드 주빌리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는 매일같이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을 마주한다. 2012년 6월 첫째 주말, 그녀는 적어도 한 가지에서 선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로 영국의 여왕으로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즉 즉위 6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그녀의 머리에 얹힌 것은 1837년 빅토리아를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왕관으로, 벌써 60년째 함께해 온 물건이다.

두 명의 여왕, 그리고 세상이 급변하는 동안 지속된 유례없이 긴 두 개의 통치. 빅토리아가 열여덟 살로 왕좌에 오를 당시 사진 기술은 아직 세상에 없었다. 그러나 1897년 런던 거리를 환호 속에 행차할 때, 그 장면을 기록한 것은 사진뿐 아니라 움직이는 영상까지였고, 새롭게 등장한 '시네마'라는 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그 영상이 상영되었다.

엘리자베스는 1952년 왕위에 올라 이듬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이는 텔레비전 중계가 전 세계 수억 가정으로 직접 전달된 최초의 왕실 행사였다. 하지만 그 무렵 'PC'라는 개념조차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의 즉위 기념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 아니 아이폰 화면 너머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목격하다

변화는 기술에만 머문 것이 아니었다. 빅토리아는 대영제국의 부상을 지켜봤고, '인도 여황제'로 선포되면서 제국의 영광을 상징적으로 몸소 체험했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제국의 해체를 지켜보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 상징적인 순간은 1997년에 찾아왔다. 영국 전역을 누비던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호'가 노동당 정부에 의해 비용 절감을 이유로 퇴역한 것이다. 이 배는 현재 에든버러 부두에 정박된 박물관선으로 남아 있다.

두 노부인은 모두, 즉위 기념일을 앞둔 시기에 왕정의 인기가 결코 신이 내려준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랑하는 남편 알버트를 잃은 빅토리아는 국민의 감정적 요구를 오독했다. 그녀는 공적인 삶에서 물러나 은둔했고, 백성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며느리를 잃은 엘리자베스 역시 같은 요구를 잘못 읽었다. 그녀는 다이애나를 공개적으로 추모하기를 원치 않았고, 백성들은 다시 불평했다.

그러나 민심은 변덕스럽고, 무엇보다 감성적이며 정서적이다. 군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자는 자신이 오직 국민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9세기 초 입헌군주제가 성립한 이래 왕족들은 그 진리를, 때로는 불명예스러운 방식으로라도, 배워 왔다.

육신과 정신이 온전한 노부인이라면, 나이와 여성성이 결합될 때 대중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감정을 받아들이며 의무를 다할 결심을 할 수도 있다. 빅토리아는 결국 다시 인기를 되찾았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위 계승의 딜레마

하지만 인기와 고령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빅토리아의 후계자인 웨일스공 에드워드는 1901년, 거의 60세에 이른 늙은 왕자였다. 모후의 죽음에 슬픔을 느꼈지만 동시에 안도했을 것이다. 수십 년간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린 끝에,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된 것이다.

찰스 왕세자 역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슬픔에 잠길 것이다. 여왕은 이미 퇴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미 63세에 이른 찰스 역시 자신의 차례가 오면 안도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의 차례가 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시대는 크게 변했다. 국민은 젊음의 화려함을 원한다. 1901년에는 소수만이 에드워드의 아들이 직접 할머니의 뒤를 잇는 편이 낫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목소리를 영국 국민의 과반수가 속삭이고 있으며, 포퓰리즘 성향의 언론들은 그것을 높이 외치고 있다. 늙은 찰스가 스스로 물러나, 젊고 화려한 윌리엄이 빅토리아의 왕관을 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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