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858년 런던 '대악취' 사건, 도시 전체를 병들게 한 템스강의 악취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얼마나 불쾌한지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이라면 그 고통은 배가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인구 약 300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의 하수 시스템이 완전히 기능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자제하지 못하고 구토를 할 정도의 강렬한 악취가 도시 전체를 뒤덮는 진짜 재난이 시작됩니다.

템스강, 런던의 심장이자 하수구

런던은 태어난 순간부터 템스강과 운명을 함께해 왔습니다. 템스강은 단순히 음용수를 공급하는 수원지였을 뿐만 아니라, 물류 수송로이자 도시의 주요 하수 통로 역할까지 겸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가정에서 버리는 오염물질은 물론, 제지공장·무두질공장·양조장·도축장 같은 산업 시설에서 흘러나온 각종 폐기물이 강으로 쏟아져 들었고, 자살자와 살인 피해자, 심지어 사형수의 시신마저 템스강에 버려졌습니다.

사실 강의 수질에 대한 의문은 이미 16세기부터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하고도 개선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강이 흐르면 오염물질은 결국 바다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염된 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식은 턱없이 부족했고, 이는 각종 전염병 창궐에 좋은 환경만 만들어 주었습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전염병

19세기 전반기,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런던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합니다. 불과 50년 만에 인구가 100만 명에서 250만 명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인구 급증은 곧 강으로 흘려보내는 하수량의 급증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하수가 더 이상 하류로 흘러가지 않고 강바닥에 가라앉아 쌓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곳은 세균이 번식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온상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질, 장티푸스, 콜레라가 도시를 집어삼켰습니다. 1849년에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000명이 넘는 런던 시민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사망률이 치솟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시민은 원인을 소위 '역병의 공기' 탓으로 돌렸고, 해결책 역시 여전히 강에 최대한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데서 찾았습니다.

1858년 런던  대악취  사건, 도시 전체를 병들게 한 템스강의 악취

템스강의 의인화가 디프테리아, 결핵, 콜레라라는 자녀들을 런던시에 소개하는 풍자 만화.

존 스노(John Snow) 박사의 연구조차 상황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1854년, 그는 런던의 한 지역에서 콜레라 유행이 오염된 우물물을 마신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요청으로 해당 우물이 폐쇄되자 질병은 하룻밤 사이에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발견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만약 그의 연구가 인정받았다면, 4년 후에 닥친 재난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의회를 습격한 악취

1858년 여름은 기록적인 혹서로 기억됩니다. 석 달 동안 계속된 무더위에 한낮 그늘의 기온은 35도, 햇볕이 직접 내리쬐는 곳에서는 48도까지 치솟았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템스강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도시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생태계 재난이 벌어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드러난 오니 더미의 높이가 일부 지점에서 무려 2미터에 달했습니다. 곧 이 오물들이 썩기 시작하며 발효되었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악취가 수십 킬로미터 바깥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강에서 넘어온 악취 때문에 런던 시민들은 격분하고,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습니다. 템스강은 이미 여왕 빅토리아조차 감히 헤엄치기를 꺼릴 만큼 처참한 오수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1858년 런던  대악취  사건, 도시 전체를 병들게 한 템스강의 악취

'더러운 템스 아버지', 풍자화.

그런데 이 참사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사태의 책임자들, 즉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얼마 전 새롭게 재건축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템스강변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요. 토론하는 신사들의 의석은 재난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최전선이었습니다. '냄새나는 일'이라는 표현이 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악취는 회의실과 복도, 그 밖의 모든 공간을 가득 메워 업무 수행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강변의 모든 건물에서는 커튼에 표백용 염소를 발랐고, 템스강에는 수 톤의 석회를 투입해 중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응급처치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위안은 7월의 폭우가 가져다준 일시적 해방뿐이었습니다.

악취 문제의 해결

정치인들 누구도 이 생태계 재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악취라는 뼈아픈 '체험'은 강의 상태를 개선하고 현대적 하수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서두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사는 엔지니어 조지프 발재기트(Joseph Bazalgette)에게 맡겨졌으며, 프로젝트의 총비용은 현재 가치로 약 3억 4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1858년 런던  대악취  사건, 도시 전체를 병들게 한 템스강의 악취

새로운 하수도 시스템 공사 현장.

발재기트는 이미 도시 하수 시스템 재정비를 맡은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고, 이번 사업은 배수로, 펌프장 등 템스강의 물 흐름을 개선하는 부대 프로젝트들로 확대되었습니다. 공사 첫 16년 동안 약 130킬로미터에 달하는 하수도가 건설되었으며, 프로젝트는 1875년에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발재기트는 설계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의 신중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주민 수의 두 배에 맞춰 하수도 용량을 두 배로 늘리는 대신, 무려 네 배로 늘린 것입니다. 덕분에 런던의 하수 문제는 거의 1세기 동안 해결된 채 유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공사 초기 단계가 완료되자마자 감염성 질환 발생 건수가 급감했고, 영국의 수도는 이후 비슷한 환경 재난을 다시 겪지 않았습니다.

참고 자료

  1. Bibby, London's Great Stink. Historic UK (2021년 2월 8일 확인).
  2. Ashton, One Hot Summer: Dickens, Darwin, Disraeli, and the Great Stink of 1858. Yale University Press, 2017.
  3. Gould, Why Fish Fart and Other Useless Or Gross Information About the World. Penguin, 2009.
  4. Allen, Good Intentions, Unexpected Consequences: Thames Pollution and The Great Stink of 1858. Victorian Web (2021년 2월 8일 확인).
  5. Lemon, The Great Stink. Cholera and the Thames (2021년 2월 8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