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독일, 처형장에서 벌어진 기괴한 광경
1861년 독일 하나우(Hanau). 미국의 여행가이자 작가인 존 로스 브라운(John Ross Browne)은 이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살인죄로 참수형을 선고받은 한 남자의 처형 장면이었다. 그 자체는 당시로서는 낯설지 않은 '공개 처형'이었다. 문제는 처형 집행을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간질 환자들로, 손에는 그릇을 들고 있었다. 죄수가 숨을 거두자 그들은 아직 따뜻한 피를 그릇에 받아 그대로 마셨다. 그것이 특효약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런 행위를 한 이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시체에 깃든 생명력에 대한 믿음
수 세기 동안 유럽 여러 곳에서는 갑작스럽고 잔혹한 죽음을 맞은 사람의 몸속에 치유력을 지닌 생명력이 갇힌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이른바 '의학적 식인(medical cannibalism)' 풍습은 이미 서기 1세기에 로마의 역사가 대(大)플리니우스가 기록할 만큼 오래된 것이었다. 이런 '약'을 얻으려 한 시도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한 처형 집행인이 간질을 앓던 여성에게 참수된 죄수의 피를 넘겨주기를 거부한 것이다.
19세기 내내 의학 분야는 비상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혜택은 주로 대학 중심지와 대도시에 국한되어 있었다. 작은 마을과 농촌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었고, 오늘날 보면 사기극처럼 보이는 옛 치료법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풍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기록 곳곳에는 고대부터 인체에서 얻은 원료를 약재로 사용할 것을 권장해 온 과학자, 의사, 약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주로 어떤 재료를 약으로 만들었을까?
인간 지방 – 통증 완화와 매끈한 피부를 위해
인간 지방은 의학에서 폭넓게 활용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산 채로, 가능하면 고문이 끝나가는 무렵의 희생자에게서 얻은 지방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피부병 치료와 더불어 류머티즘, 통풍, 각종 통증, 심지어 불안감까지 다스리는 데 쓰였다. 화장품 분야에서도 활발히 사용되어 로션과 페이스크림 제조에 쓰였는데,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본인도 그중 하나를 바르고 다녔다.

인간 지방에 대한 수요는 워낙 컸기 때문에 공급원이 죄수에게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조나단 J. 무어(Jonathan J. Moore)는 이렇게 전한다.
“1736년, 잉글랜드 노퍽의 한 남자는 아내와 말다툼 끝에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 결과 자결로 판명되었고, 시신은 길갈짓에 묻히기로 정해졌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신을 외과의에게 반 기니에 팔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거래는 순식간에 성사되었고, 불쌍한 남편은 몸이 다 들어가지도 않는 자루에 담겨 끌려갔다.”
시체의 치유력, '매달린 손길'의 비밀
또 하나의 기괴한 풍습은 교수형 집행인의 손길이 지닌 치유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경고의 의미와 함께 교수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되살아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신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밧줄에 매달려 방치되었다. 그동안 피부 질환을 앓던 환자들이 다가와 시신에 손을 얹으며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갖가지 병을 앓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도 같은 방식이 적용되었다.
교수형 집행인의 유해 역시 치유 물질의 보고(寶庫)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시신에서 머리카락과 살점을 잘라 가져갔고, 이를 뽑아 갔으며, 민간 신앙에서 마법적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던 옷까지 훔쳐 갔다.

'손'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도둑의 잘린 손, 이른바 '영광의 손(hand of glory)' 역시 큰 인기를 누렸다. 적절히 처리된 손에는 보통 촛불이나 인간 지방으로 만든 촛불이 세워졌고, 손가락 자체를 촛대로 쓰기도 했다. '영광의 손'에는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졌다. 집을 도난으로부터 지켜 주고, 주인에게 투명한 막을 드리워 보이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사형수의 피 – 최후의 특효약
피의 건강 효능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젊고 강건하며 격렬하게 죽임을 당한 검투사의 피였다. 검투사의 피는 의식과 의학 양쪽에서 두루 쓰였다. 신부의 다산을 기원하고, 병을 고치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까지, 모든 경우에 '검투사의 즙'이 권장되었다.
이후 시대에는 사형수의 피의 용도가 더욱 확장되었다. 간질, 생리통, 복부 팽만감의 치료에 쓰였다. 또한 피가 신선할수록 효능이 좋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처형 집행인들은 참수 대기열에서 자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약재를 가장 빨리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죄수에게 인생의 마지막 풍경은 항아리와 냄비를 들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행렬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형 집행인들은 아예 원하는 '소재'를 파는 장사까지 벌였다. 한편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법률상 사형 선고를 받은 수인이 자신의 피를 의학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허락해야만 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의학적 식인 풍습은 뿌리 뽑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19세기에는 많은 지역의 당국이 현지 주민들로부터 시신을 보호해야 할 정도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859년, 참수된 여성의 시신을 지키던 군인들이 구경꾼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그들은 목에서 반 미터 높이로 솟구치는 피에 천을 적시고 싶어 하는 무리였다.”
참고 자료
- J.J. Moore, 『교수형, 해부, 훼손 – 처형의 역사』, Znak Horyzont, 크라쿠프, 2019.
- https://www.lorepodcast.com/episodes/episode-113-word-of-mouth (2021.1.25. 확인)
- M. Dolan, “The Gruesome History of Eating Corpses as Medicine”, www.smithsonianmag.com, 2012.5.6. (2021.1.25. 확인)
- M. Zarrelli, “European 'Corpse Medicine' Promised Better Health Through Cannibalism”, www.atlasobscura.com, 2017.10.31. (2021.1.25. 확인)
- R. Sugg, 『Mummies, Cannibals and Vampires: the History of Corpse Medicine from the Renaissance to the Victorians』, Routledge,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