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화의 최초 문학적 버전은 프랑스 작가 가브리엘-쉬잔 바르보 드 빌르뇌브(Gabrielle-Suzanne Barbot de Villeneuve)가 쓴 이야기로 여겨집니다.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디즈니 판본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이야기가 '미녀와 야수'의 저자가 태어나기 한 세기 전에 벌어진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페트루스 곤살부스(Petrus Gonsalvus)는 1537년 테네리페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소년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늘날 다모증(hypertrichosis)으로 알려진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질환은 아마도 그를 매우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원인이 되었겠지만, 고립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열 살이 채 되기 전, 그는 붙잡혀 새롭게 즉위한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에게 바치는 선물로 프랑스 궁정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선물은 새 왕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페트루스는 야생 생물처럼 보였고 말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그의 행동은 인간임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다모증은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었고, 곤살부스는 유럽에서 기록된 최초의 사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고 그를 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로 앙리 2세의 마음을 사서, 왕은 소년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존중하며 대하고 교육을 받도록 명령해 프랑스 궁정에 남겨두었습니다.
페트루스는 이후 12년간 왕의 후견 아래 사는 진기한 존재로 지냈습니다. 그는 자유인이 아니었고 통치자의 소유물이었지만, 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납치되어 프랑스로 옮겨진 것이 그에게 더 평온한 삶을 안겨주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녀, 야수와 결혼하다
1559년 앙리 2세가 사망하자 곤살부스는 왕의 미망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의 보호 아래 들어갔습니다. 새 보호자는 "만약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피보호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물론 귀족 여성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인 중 한 명의 딸인 카트린 라팔랭(Catherine Raffelin)이 이 실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소녀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곤살부스와 결혼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강요당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두 사람이 꽤 화목한 부부였다고 추측합니다. 부부의 초상화에 담긴 다정한 몸짓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러했을까요? 우리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카트린 라팔랭과 남편 페트루스 곤살부스.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있습니다. 카트린과 페트루스 사이에는 네 아들과 세 딸, 일곱 명의 자녀가 태어났으며, 그중 넷은 다모증을 물려받았고 나머지 셋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독특한 가족에 대한 소문은 유럽 각국의 궁정에 퍼져나갔습니다. 많은 군주와 귀족들은 서재에 '프랑스의 야수' 초상화 같은 진기한 물건들을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페트루스와 카트린, 그리고 자녀들의 모습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곤살부스 가족은 야생적인 외모를 강조하기 위해 종종 동굴 배경 앞에 서 있곤 했습니다. 이 그림들 상당수는 오늘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암브라스 성(Ambras Castle)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그렇게까지) 행복하지는 않게 살았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페트루스와 가족의 프랑스 궁정 생활도 막을 내렸습니다. 후원을 잃은 곤살부스 가족은 이탈리아, 정확히는 파르마 공국을 다스리던 옥타비오 파르네세와 마르게리타 디 파르마의 궁정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여기서도 그들은 남들처럼 자랑할 수 없는 신기하고 흥미로운 시종으로 대접받았습니다.

많은 군주와 귀족들은 서재에 '프랑스의 야수' 초상화 같은 진기한 물건들을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페트루스와 카트린, 그리고 자녀들의 모습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그들은 살롱 단골들 사이에서 존재감으로 유희를 제공하는 '볼거리'나 개인 수집가를 위한 초상화 모델에 불과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박물학자이자 의사인 울리세 알드로반디(Ulisse Aldrovandi)가 그들의 사례를 주목하여 저서 『괴물지(Monstrorum Historia)』에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페트루스와 카트린은 이탈리아에서 무렵까지 장수했지만, 결코 진정한 평범함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은 자주 흩어졌습니다. 곤살부스의 자녀들은 여러 궁정으로 보내져 이국적인 동물처럼 전시되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위험한 곤충과 이국적인 나비까지 함께 실린 요리스 훠프나헬(Joris Hoefnagel)의 동물 도감 『동물지(Animalia Rationalia et Insekta)』에까지 등장했습니다.
원숭이 인간에 관한 슬픈 동화
"원숭이 인간"—곤살부스 가족에게 붙은 이런 꼬리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모증은 극히 드문 질환이며, 이를 앓는 사람들은 언제나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19세기 멕시코 출신 줄리아 파스트라나(Julia Pastrana)의 이야기도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갓 태어났을 때 버려진 그녀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후 미국 서커스 무대에 섰습니다. 공연 중 그녀는 테오도르 렌트(Theodor Lent)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소녀에게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녀를 사들여 매니저가 되었고, 이후 남편이 되어 유럽 무대(바르샤바 포함)에서 줄리아를 선보였습니다.

다모증은 극히 드문 질환이며, 이를 앓는 사람들은 언제나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줄리아 파스트라나의 이야기도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의 결말은 더욱 슬픕니다. 구대륙 순회 여행 중 그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 역시 같은 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산후 합병증으로 어머니도 며칠 뒤 뒤따라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뒤에도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테오도르는 '원숭이 아내'와 그 아이로 계속 돈을 벌기로 하고, 두 사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진열장에 전시물로 내걸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전시물은 여러 손을 거듭 거쳐 다니며 무려 152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2012년에야 광범위한 국제적 노력 끝에 모자의 시신은 멕시코의 한 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