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3월,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기묘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 그는 미군 입대를 간청하며, 자신의 숙부와 싸우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과연 그를 믿을 수 있었을까?
리버풀에서 태어난 '히틀러'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1911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훗날 나치 독일의 독재자가 되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복형이었고, 어머니 브리짓 엘리자베스 다울링은 아일랜드 농가 출신이었다. 1914년 남편이 가족을 버리고 독일로 돌아간 뒤, 그녀는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다.
윌리엄은 인생에서 여러 시도를 거듭했다. 1933년, 그는 무너져가던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건너갔다. 숙부 아돌프가 총리에 오른 직후였고, 그의 성씨만 있으면 출세가 수월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퓌러(총통)는 조카를 위해 명예로운 자리를 마련해줄 생각이 없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늘 서늘하고 멀었다.

숙부 아돌프는 조카와 깊은 관계를 맺기를 꺼렸다(사진: Bundesarchiv, Bild 183-1987-0703-507 / CC-BY-SA 3.0).
문제가 된 이름
실망한 윌리엄은 몇 년 후 영국으로 돌아왔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나치의 적진에 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영국군 입대를 시도했지만, 정작 아무도 자기 부대에 '히틀러'라는 이름을 가진 병사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아돌프 히틀러와 싸우려는 의도라 해도 말이다.
"영국인들은 (...) 저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 호의를 보일 수 없습니다." — 퓌러의 조카는 훗날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특별한 편지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이 편지는 『잊을 수 없는 편지들』이라는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대체 왜 윌리엄은 이 편지를 쓴 것일까?
영국에서 거절당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도 군 입대를 시도했다. 1940년 처음 지원했지만, 독일 독재자와의 직접적인 혈연 관계 때문에 또다시 거절당했다.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의 이야기는 『잊을 수 없는 편지들』(SQN, 2015)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1941년 12월 11일, 아돌프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몇 주 뒤인 1942년 3월 초, 그의 조카는 앞서 언급한 편지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는 미군이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윌리엄 히틀러는 왜 미국 군인의 길을 택했을까? 우선 그는 아마도 자신이 설 곳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끔찍한 전쟁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그토록 유명한 이름을 가진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모국에서 거절당한 이상,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미군뿐이었다.
대통령의 마음에 들기를 바란 퓌러의 조카는 독일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군 복무와 독일인 친척과의 싸움을 자신의 소명이자, 기독교 문명에 대한 도덕적 의무까지 여기는 듯 표현했다. 루즈벨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미국만이 "도덕적이고 경건한 사회에서 살거나, 아니면 악마적이고 이교적인 체제에 예속되느냐"를 결정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1942년 잠시 휴식을 취하는 미 해병대. W.P. 히틀러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다(사진: U.S. Navy, 현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국 소장, 퍼블릭 도메인).
히틀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편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스스로를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그렸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미국인 다수보다 미군 복무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각하, 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이 위대한 영광에 합당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제 행동은 더 이상 미국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비교해 빛나리라고 확신합니다."
전선으로
윌리엄의 논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대통령에게 보내진 편지는 당시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에게 전달되었고, 후버는 철저한 조사를 진행한 뒤 그의 입대를 승인했다.

드디어 군인이 되기 전, 젊은 히틀러는 미국 전역에서 숙부에 대한 강연 시리즈를 열기도 했다.
신원 조회와 조사에는 2년이 걸렸고, 그래서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가 미국 군인이 된 것은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는 해군 의무군단에서 3년간 복무했다. 그의 복무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전투 중 부상을 입었고 그 희생으로 대통령으로부터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은 전해진다. 이 훈장은 전투 중 부상당한 모든 병사에게 자동으로 수여되는 것이었다.
숙부와의 전쟁이 끝난 후, 윌리엄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고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는 성을 '스튜어트-휴스턴'으로 바꾸기도 했다. 한때는 자신의 이름과 아돌프와의 혈연 관계를 내세우며 자랑스러워했던 그였지만, 이제 '히틀러'라는 이름은 갑자기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참고 자료
숀 어셔, 『잊을 수 없는 편지들』, Sine Qua Non, 크라쿠프 2015.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잊을 수 없는 편지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흥미롭고 중요한 편지 100여 통을 엮은 컬렉션이다.
~ 취직을 구하며 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지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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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 수행 직전 아이들에게 쓴 일본 카미카제 파일럿의 작별 편지
~ 마리오 푸조가 말론 브란도에게 '대부' 연기를 제안한 편지
~ 14세 피델 카스트로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10달러 송금을 요청한 편지
~ 마하트마 간디가 아돌프 히틀러에게 보낸 평화 호소문
…그 외에도 똑같이 매혹적인 편지들이 가득하다.
『잊을 수 없는 편지들』은 서신이라는 쇠퇴해가는 예술에 대한 감동적인 증언으로, 수 세기 동안 우리 문명의 아름다움과 섬세함, 슬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