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은 아직도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고 있다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정권이 키예프 시위대에 의해 무너지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혁명 전체를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파시스트 쿠데타"라고 규정하는 데 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위가 시작된 이래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고조된 긴장을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친유럽 진영,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러시아 간의 대결 구도로 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혁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이 사태를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장악과 가장 유사한" 파시스트 쿠데타라고 몰아붙여 왔다. 3월 16일 크림반도의 친러 행정관들이 해당 반도의 러시아 편입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을 때, 플래카드에는 모호함의 여지가 없었다. 키예프의 새로운 파시즘 아래의 미래이거나, 거대한 어머니 러시아의 날개 아래에서의 미래, 둘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켄크로이츠와 나치즘을 연상시키는 온갖 언급은 물론 상당 부분 러시아의 선전이다. 러시아에서—동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아주 나쁘게 보이게 하고 싶다면 '파시스트'라고 부르면 된다. 이는 공산주의 시절에 생겨난 '프레임(틀)'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 같은 나라들에서 어떤 방식으로 치러졌는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처형과 기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을 비교하면, 서부 전선은 정말 자잘한 것에 불과합니다."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러시아 전문가 마르크 얀센(Marc Jansen)은 말한다. "동부 전선에서만 최소 2,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참혹하게 벌어졌습니다. 150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했는데, 대개는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를 죽인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소련 붉은 군대와 독일 국방군 사이의 전투 역시 서유럽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길었다. 게다가 독일군은 진격하는 부대를 따라다니며 유대인, 공산주의자, 지식인, 그리고 국방군이 포로로 잡은 수천 명의 러시아 포로 등 각종 '불쾌한 요소들'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을 조직했다. 총탄에 의한 즉결 처형은 물론,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야외에서의 대규모 굶주림이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결국 붉은 군대는 서쪽의 동맹군과 힘을 합쳐 나치 독일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만행들 때문에 파시스트와 나치는 러시아인들에게 줄곧 공적의 적 1순위로 남았다. 게다가 뒤이어 온 공산주의 독재 체제 아래에서 전쟁의 과거는 서구에서처럼 서서히 정리될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에서는 이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 즉 제2차 세계대전 중과 이후에 활동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OUN의 지도자가 특히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얀센은 말을 이어간다. "그 조직은 주로 당시 폴란드 영토였던, 지금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OUN은 독립적이고 순수한 우크라이나 국가를 내세웠고, 반유대주의적이었으며, 히틀러의 베를린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동진할 때, '나흐티갈(Nachtigall)'과 '롤란트(Roland)' 대대 소속의 일부 우크라이나 부대가 함께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에서 독립 우크라이나 국가 수립을 시도했습니다. 붉은 군대가 그 지역을 떠나기 전, 소련군은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포로를 처형했습니다. 독일군은 이를 리비우와 다른 도시들의 유대인 탓으로 돌렸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군과 함께 여러 차례 포그롬(유대인 학살)을 벌였습니다. OUN의 게릴라 조직인 UPA('우크라이나 반군 군대')는 나중에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되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수만 명의 폴란드인을 학살했습니다."

UPA는 1950년대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련의 지배에 맞서 잔혹한 게릴라전을 벌였다. 오늘날의 상황은 이렇다. 반데라와 OUN은 국민적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다.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은 심지어 반데라를 '우크라이나 영웅'으로 공식 선포한 바 있다. 리비우와 우크라이나 서부에서는 반데라와 OUN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이 곳곳에 있다.

분열의 씨앗

"혁명 기간 동안 극우 민족주의 정당 스보보다(Svoboda)보다 더 우파에 속하는 많은 정당들이 스스로를 반데라와 OUN의 일종의 후계자로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얀센은 말한다. "스보보다 출신 인사들이 실제로 몇몇 정부 직책에 들어 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이 점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 전체가 파시스트와 네오나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 언론에 넘쳐나는 하켄크로이츠와 파시스트들은 어디까지나 '프레임'이지만, 그럴 만한 분명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위기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세력권에 속해야 한다고 보는 푸틴의 관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혁명 이후 그 구상이 실패하고 우크라이나 전체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자, 푸틴은 이제 나라를 찢어놓으려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동부 주민들을 서로 맞서게 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약화시키려는 계획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반데라와 그의 파시스트 추종자들이라는 프레임은 물론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