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모르면 부끄러운, 폴란드 역사를 빛낸 특별한 여성 4인

남성과 나란히 싸우고, 세계 기록을 세운 폴란드의 여성들

폴란드 역사에는 남성과 동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워온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고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며, 테스토스테론이 없어도 가장 힘든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더 큰 대의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4위. 헨리카 푸스트보유타우나(Henryka Pustowójtówna), 봉기의 딸

헨리카 푸스트보유타우나는 1838년 7월 26일, 폴란드 귀족 여성과 러시아 장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혼혈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스로를 폴란드인으로 여겼지만,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차르 군대에 들어간 오빠는 폴란드인들을 집요하게 박해했습니다. 헨리카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폴란드 애국자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애국가를 부르거나 루블린 연합 기념비에 꽃을 바치는 일로 골칫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이런 행동 때문에 차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고, 러시아 한복판의 정교회 수도원에 감금될 예정이었으나 병을 앓은 탓에 대신 지토미르의 어머니 곁으로 보내졌습니다. 러시아 당국이 반항적인 소녀에게 다음 조치를 취하기 전, 그녀는 동료 두 명과 함께 가짜 서류를 들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추적을 뚫고 도망친 그녀는 1월 봉기가 일어나자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의용군에 합류했습니다.

모르면 부끄러운, 폴란드 역사를 빛낸 특별한 여성 4인

헨리카 푸스트보유타우나. 삽화 출처: 안나 지비트-멜러(Anna Dziewit-Meller), 『숙녀들, 소녀들, 걸걸이들: 치마 속의 역사』(Damy, Dziewuchy i Dziewczynki. Historia w spódnicy, 크라쿠프, 2017)

안나 지비트-멜러는 폴란드 여성 영웅들을 다룬 저서에서 헨리카를 화자로 삼아 봉기 당시의 이야기와, 대열 속에서 동료들이 그녀를 대하던 모습을 전합니다.

"산속의 조건들은 숙녀에게 어울릴 만한 것이 아니었죠. 때로는 추운 땅바닥에서 노천으로 잤고, 총탄은 귓가에서 휘파람처럼 날았습니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몇 마일씩 걸으며 국 한 그릇과 따뜻한 목욕을 꿈꾸곤 했어요. 동료들은 진흙투성이 차마리아(전통 상의) 아래에 연약한 소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저를 대등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3위. 막달레나 벤지스와프스카(Magdalena Bendzisławska), 메스를 든 최초의 여성

여성 의사는 증조할머니들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가 바뀌던 무렵의 유명한 외과 교수 루드비크 리디기에르(Ludwik Rydygier)는 여성이 메스를 잡는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고, 남성의 몸을 수술한다는 것은 무례함의 극치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미 작센 시대, 즉 '강력왕' 아우구스트 2세의 통치 기간에 폴란드 최초의 여성 외과의사, 당시 '이발사'라고 불리던 직업인이 등장했습니다.

막달레나 벤지스와프스카는 여성이라고 해서 이 직업을 감당하기에 너무 연약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1697년 10월 6일, 그녀는 개업을 허가하는 왕실 특허를 받았습니다. 벤지스와프스카는 비엘리치카에서 이발사(당시 외과 치료를 담당하던 직업)로 일하던 남편 곁에서 기술을 익혔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도구와 직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처음부터 깊은 물에 던져진 셈이었는데, 그녀가 돌봐야 할 대상은 광부들이었습니다.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의 지하 노동자들은 잦은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경험을 쌓을 환자가 넘쳐났습니다.

1866년(제5판) 출간된 『크라쿠프와 그 주변』에서 전직 치안판사이자 크라쿠프 과학협회 회원인 암브로지 그라보프스키(Ambroży Grabowski)는 최초의 여성 외과의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 체룰리크(Cerulik), 그리고 1698년에는 필요한 능력을 갖춘 여성, 즉 과부 막달레나 벤지스와프스카였습니다."

2위. 스테파니아 빌친스카(Stefania Wilczyńska), 고아들을 따라 가스실까지 함께 간 교육자

그녀는 동화된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바르샤바의 여자 학교를 마치고 리에주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했으며, 폴란드로 돌아온 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즉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1909년, 스테파니아 빌친스카는 열악한 환경의 유대인 고아원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갔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뛰어난 조직력을 보여준 뒤 원장이 되었습니다.

모르면 부끄러운, 폴란드 역사를 빛낸 특별한 여성 4인

스테파니아 빌친스카, 야누시 코르차크와 고아들. 삽화 출처: 안나 지비트-멜러, 『숙녀들, 소녀들, 걸걸이들: 치마 속의 역사』(2017)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처럼 마음을 아이들에게 바친 남자, 야누시 코르차크(Janusz Korczak)를 만났습니다. 1912년 두 사람은 새로운 고아원을 함께 설립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진보적인 교육 방법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빌친스카는 편안한 가정을 떠나 코르차크와 여든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기를 택했습니다. 훗날 학생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녀는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들었다고 하며, 온 집안이 그녀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평생을 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데 바쳤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징집되어 자리를 비운 코르차크를 대신해 그녀는 지칠 줄 모르고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우리는 야누시 코르차크가 아이들이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곁을 지켰다는 사실을 기립니다. 하지만 스테파니아 빌친스카 또한 아이들과 손을 잡고 함께 걸었으며, 가스실로 향하는 길에서조차 사랑하는 고아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1942년 트레블린카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1위. 반다 루트키에비치(Wanda Rutkiewicz), "여자답게 등반하라"는 말이 자랑스럽다

얼마 전 폴란드 히말라야 등반계에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여성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원정대의 조직자 중 한 명이, 산에서 여성은 단 하나의 용도만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입니다. 만약 반다 루트키에비치가 살아 있었다면, 그런 태도에 두꺼운 등반 로프로 제정신을 쥐어짜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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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 루트키에비치. 삽화 출처: 안나 지비트-멜러, 『숙녀들, 소녀들, 걸걸이들: 치마 속의 역사』(2017)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운동을 사랑했지만, 클라이밍을 만나면서 자신의 소명을 찾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점점 더 높은 봉우리에 올랐고, 더 거대한 산맥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안나 지비트-멜러는 저서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그녀는 알프스에서 히말라야로,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산으로 떠났습니다. 험난한 봉우리를 올랐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여성 산악 원정대의 조직자이자 리더로서, 산을 꿈꾸는 많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반다 루트키에비치는 1978년 10월 16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최초의 유럽 여성입니다. 그리고 하산길에서 동료들이 모두 목숨을 잃는 비극 속에서도, 거대한 K2를 정복한 세계 최초의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산에서 그녀는 새로운 등반 루트를 개척했고, 여러 번 죽음의 문턱을 스쳤지만 언제나 새롭고 야심찬 목표를 세웠습니다. 마지막 목표였던 캉첸중가 정복을 위해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열정을 불태웠으며, 오늘날까지도 폴란드 등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클라이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