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의 피 한 방울 없던 여인
그녀의 핏줄에는 왕족의 피가 흐르지 않았다. 명문 가문의 혈통도, 왕실의 재산도 없었다. 그렇다면 크리스티나 로키차나는 대체 무엇으로 두각을 나타냈을까? 그녀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유혹자였고, 동시에 적국의 정보 요원이기도 했다.
우아하게 포장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1356년 폴란드의 국왕 카지미에시 대왕은 중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었다. 평생 결혼과 사랑의 문제에서 놀라울 정도로 순진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상상하여 그린 14세기 체코 궁정의 패션. 잉글랜드의 군주 리처드 2세와 결혼한 룩셈부르크 공주 안나의 초상. 참고 이미지: 크리스티나 로키차나의 초상화는 전해지지 않는다.
폴란드의 군주는 십여 년 전 자신이 어떻게 속았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첫 번째 아내 알도나 안나가 세상을 떠나자, 체코와 룩셈부르크를 지배하던 강대한 이웃이 중매쟁이 노릇을 자청하며 새 배우자를 내놓았고, 그는 그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정치적으로 아무 쓸모도 없고 왕조적으로는 오히려 재앙이 된 실패작 결혼에 얽히게 되었다.
1341년에 결혼한 카지미에시의 두 번째 아내 아델라이데 헤스카는 가난하기 짝이 없었고, 불임이기까지 했다. 남계 후사가 없는 국왕은 15년이 지난 후 아내와 이별하고 재혼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아델라이데를 강제로 내보내려 했다. 심지어 그녀를 성 중 한 곳에 가두고 수개월간 유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왕비는 끄떡없었다. 바로 그때 카지미에시는 '정말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도움을 청할 상대는 다름 아닌… 저런 혼인의 쓴맛을 선사해 준 바로 그 룩셈부르크 가문이었다.
완벽한 동맹
프라하에서의 끔찍한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카지미에시는 또다시 체코의 수도로 발걸음을 옮겼고, 외교 문서에서 "존귀한 형제님"이라 불렀던 황제 카를 4세의 충고를 다시 구했다.
당시는 아직 아델라이데의 운명이 결정되기 전이었다. 왕비는 자르노비에츠의 요새에 머물고 있었지만 여전히 왕관을 쓰고 있었고, 군주의 공식적인 아내로 남아 있었다. 국왕은 체코의 동맹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교황을 설득하여 아델라이데와의 혼인을 무효화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얀 마테이코의 스케치에 나타난 아델라이데 헤스카.
카를이라면 그 정도쯤은 쉽게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가? 그에게는 별도의 판이 깔려 있었다. 그는 카지미에시가 가정 문제로 진퇴양난에 빠져 교황청과 갈등을 빚고, 결국 후사를 잇지 못하는 상황을 원했다. 피아스트 왕조의 몰락은 비스와 강 유역에 수년간의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그만큼 이미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던 룩셈부르크 제국이 더욱 강화될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카를은 기회가 닿으면 자신이나 그의 후손이 폴란드 전체를 물려받기를 희망했다. 카지미에시의 뒤를 이을 예정이었던 헝가리의 군주 러요시 역시 아들이 없었고, 앙주 가문의 모든 영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상속권은 룩셈부르크 가문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선책의 제안
카지미에시가 이 모든 의존 관계를 왜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아무런 경계심 없이 남쪽으로 달려갔고, 친구다운 대접을 받으리라 확신했다. 실제로 카를은 그에게 만면의 우의를 베풀었다. 아델라이데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과 똑같이 또다시 차선책을 내놓았다. 그 이름은 크리스티나였다.
황제는 철저히 준비된 인물이었다. 어떤 여인들이 폴란드 국왕의 심장을 뛰게 하는지, 어떤 미모를 좋아하는지, 어떤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어떤 옷차림에 저항하지 못하는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카지미에시가 절대 거절하지 못할 여자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여자는 하필이면 황제의 믿음직한 충실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룩셈부르크의 카를 4세
그녀의 이름은 로키차나, 프라하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눈치 빠르고 성숙한 여인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프라하 시장이었고, 그녀는 호화로운 환경에서 자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 몇 년 전 남편 하나를 먼저 보낸 미망인이기도 했다. 재물이 부족할 리 없었다. 대상업 도시의 파트리키아트(귀족 시민층)는 대영주들보다 더 화려하게 살았다. 크리스티나를 귀족들과 구별 짓는 것은 오직 자신만의 문장이 없다는 점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단점이 지대한 중요성을 갖게 된다.
"아내 있는 왕과는 함께 살지 않겠어요"
그 여인은 프라하 궁정으로 불려갔고, 그곳에서 순식간에 카지미에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폴란드 국왕에게 두 사람 관계의 시작을 묻는다면, 아마 자신이 아름다운 시민 여인을 매혹해 사로잡았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크리스티나가 카지미에시를 유혹해 손바닥 위에서 늘 굴렸던 것이다.
그녀는 프라하에서 국왕의 정부가 되었거나, 적어도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음을 군주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동시에 그녀는 '애인'의 자리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장난기 많은 왕이 여러 성과 은밀한 처소에 두고 있던 수많은 창부들과 한줄에 설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강조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품위 있는 여인으로 여겼고, 자신의 신분에 걸맞은 대우를 기대했다.

레오폴트 뢰플러의 그림에 나타난 대왕 카지미에시.
카지미에시는 그녀를 보고 완전히 홀린 듯했다. 아직 아내가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나와의 결혼에 동의해 버렸다. 그런 결혼이 자신의 모든 전망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고급스럽고 부유하고 교양 있는 귀족 시민이라 해도 왕비로서 대관될 수는 없었다. 왕위 계승자를 낳는 것도 불가능했다. 왕의 아내라 해도 왕조 정치의 관점에서 그녀의 지위는 아무 연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큐피드의 화살에 꽂힌 카지미에시는 이 모든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크리스티나를 폴란드로 데려왔고, 그녀는 자리에서 즉시 "아내 있는 왕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급해진 마음, 스스로도 놀랄 만큼 타오른 감정에 이끌린 국왕은 아델라이데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스티나는 말을 지켰다. 카지미에시가 아내에게서 왕비의 칭호를 빼앗고, 모든 토지를 거두고, 마침내 폴란드 거류권마저 박탈하자, 그녀는 곧바로 바벨 성으로 옮겨왔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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