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은 도덕 규범을 어기는 자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편 사망 후, 정작 그녀 자신이 시종 존 브라운(John Brown)과 불륜 관계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년간 브라운은 여왕의 심복이자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는 궁정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실제로 빅토리아가 거칠고 냄새 난다는 소문이 있던 스코틀랜드 하인과 불륜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몰래 결혼까지 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군주가 런던 거리에 모습을 드러낼 때면 "브라운 부인!"이라는 휘파람과 외침이 쏟아졌다고 한다. 덕망 있는 여왕의 비밀스러운 생활에 대한 소문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고아입니다!"
현재로서는 빅토리아와 브라운 사이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왕의 성격과 약점을 이해하면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일생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나는 고아입니다!"라는 말이었다. 미래의 군주는 겨우 8개월 때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와 안정된 생활은 있었지만, 그녀는 평생 그 공백을 느꼈다. 이미 노년의 여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빅토리아는 남편 앨버트 왕자를 깊이 사랑했다.
1837년 6월, 18세의 나이로 전임 군주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을 때 그녀는 정치 문제에 서툴렀다. 그녀의 길잡이는 58세의 총리 멜번 경(Lord Melbourne)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해의 끈이 있었다. 업무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승마를 즐기거나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눴다. 전기 작가 데이비드 더프(David Duff)의 설명에 따르면, 빅토리아는 멜번을 "아버지 같은 존재, 기댈 수 있는 팔을 가진 강한 남자"로 여겼기에 그에게 친근함을 느꼈다.
위대한 사랑
그녀는 사랑하는 앨버트를 비슷한 방식으로 대했다. 결혼 생활 20년 내내 그를 사랑했다. 여왕은 남편에게 많은 책임을 맡겼고 그를 한없이 신뢰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음에도, 그녀는 통치가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 앨버트 사후 그녀는 절망에 빠졌고, 친척들이 그녀의 정신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다. 평생 동안 그의 셔츠를 가슴에 품고 잤으며, 그리움을 끊임없이 입에 담았다. 강한 남자에 대한 이러한 의존은 데이비드 더프의 말이 가장 잘 보여준다.
빅토리아 여왕은 한 남자에게 속하고 싶어 했다. 왕실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많은 연인을 두었으리라는 말도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강하고 굳건했으며,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브라운 씨는 누구인가?
존 브라운은 발모럴 지역 출신 스코틀랜드인으로, 앨버트와 빅토리아가 1848년 그곳 성을 임대했고 1851년에는 해당 재산을 직접 매입했다. 브라운은 그곳에서 하인으로 일했으며, 왕실 가족의 도착을 준비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그는 성실하고 유능한 직원임을 입증했다. 앨버트의 말을 돌보고 사냥용 동물과 장비를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곧 왕자의 주목을 받았고, 1851년부터 왕족과 친분을 쌓았다. 왕자는 그에게 여왕의 조랑말을 이끌어 달라는 새로운 임무를 제안했고, 브라운은 기꺼이 수락했다. 그는 빠르게 빅토리아의 인정을 얻었고, 여왕은 1858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존 브라운]은 여전히 발모럴에서 나와 함께 있다. 그 없이는 못 한다(…). 헌신적인 태도와 단정한 행동 덕분에 우리의 인정을 얻었다(…). 개인 시종으로 승진했다(…). 그는 사심 없이 우리의 소망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은 그녀의 연인으로 추정된 인물을 미워했다.
1861년 12월 앨버트가 요절한 후, 빅토리아는 남편을 연상시키는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쌌다. 브라운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를 윈저로 데려왔고, 이후 모든 거처에 동행시켰다. 새로운 곳에서도 스코틀랜드인은 여왕의 조랑말을 이끌었고, 산책할 때면 팔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했다. 그는 군주의 신뢰를 너무 많이 얻어서 누구와 알현할지 결정할 권한까지 위임받았다. 여왕이 신하들과 대화할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그는 대기실로 들어가 "다들 나가! 마님은 당신들을 보고 싶지 않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거칠지만 사랑스러운 사람
빅토리아는 브라운의 행동을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그의 강한 성격과 자신에 대한 헌신 탓으로 돌렸다. 외교관이자 여행가인 윌프레드 블런트(Wilfred Blunt)는 존이 "여왕에 대한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그 이유가 통치자가 "앨버트 왕자의 영혼이 브라운에게 옮겨갔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은 그녀의 자녀들, 특히 장남이자 왕위 계승자인 앨버트 에드워드에게 미움받았다. 자녀들은 이 무례한 남자가 자신들과 여왕이자 어머니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자녀 중 하나가 빅토리아를 설득하려 들면 그녀는 화를 냈다.

존 브라운과 빅토리아 여왕은 어떤 점이 닮았을까?
스코틀랜드인은 다른 하인들에게도 미움받았는데, 브라운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여왕을 하나로 여겼고 런던 사교계를 깔보았다. "나와 여왕님은 저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빅토리아가 그에게 수많은 선물을 준 것도 그가 인기가 없던 이유였다. 그녀는 심지어 그를 위해 두 개의 메달을 제작했다. '충성스러운 시종 메달'과 '헌신적 봉사 메달'이 그것이다. 1876년에는 그의 초상화를 의뢰해 앨버트의 생일인 8월 26일에 브라운에게 선물했다. 브라운 사후 군주는 깊이 애도했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인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오직 나, 나의 안녕, 나의 편안함, 나의 안전, 나의 행복만 생각했다. 용감하고 완전히 사심 없으며 지극히 신중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했다. 나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내 일상의 위로가 사라졌다. 공허함은 끔찍하고, 상실은 되돌릴 수 없다!
여왕의 요청으로 존의 묘비명은 알프레드 테니슨 경이 직접 집필했다!
그럼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브라운에 대한 빅토리아의 의존은 군주가 그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소문으로 번졌다. 윌프레드 블런트는 여왕이 하인을 "보호자"이자 "개를 돌보는 사람"으로 삼아 산속 오두막에 함께 갔다고 회상했다. 시녀들은 부지 저 멀리 머물렀고, 존은 바로 옆방에 있었다고 한다. 블런트에 따르면 여왕과 브라운은 그곳에서 "부부처럼" 시간을 보냈다. 반면 군주가 자궁탈출증 등 성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여러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떠했을까?
『빅토리아: 여왕, 친밀한 전기(Victoria: The Queen: An Intimate Biography)』의 저자 줄리아 베어드(Julia Baird)는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왕실이 빅토리아와 스코틀랜드 하인의 관계에 관한 문서를 파기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베어드는 군주와 브라운 사이에 "엄청난 친밀함"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그 정도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참고 자료
- Alderson A., Victoria did become Mrs Brown, "The Telegraph", 2003년 5월 4일
- Duff D., Albert and Victoria, London 1973
- Lamont-Brown R., John Brown. Queen Victoria's Highland Servant, The History Press 2002
- The truth about Queen Victoria's relationship with John Brown, britishheritage.com (2022년 6월 4일 확인)
- Woodham-Smith C., Victoria Queen of Great Britain 1819-1901, Dell Publishing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