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발트해 연안의 기묘한 저항
1939년 폴란드 침공은 현대 군인이라면 '미친 용기' 혹은 '절체절명의 몸부림'이라 평할 법한 극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전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례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해안 방어전에 참전한 '그디니아 낫 부대(코시니에시)' 자원병들의 이야기입니다.
폴란드 연안 거점들은 1939년 9월 군사 작전의 주요 무대는 아니었지만, 이곳의 방어 성패는 폴란드가 발트해에서 '존재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문제였습니다. 이곳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세계로 통하는 창문'을 최대한 오래 지켜내는 일은 국가의 명운과 직결된, 그야말로 명예의 사안이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가 카지미에시 루시네크(Kazimierz Rusinek)는 전투가 시작된 첫날부터 해안 육상방위사령관 스타니스와프 돰베크(Stanisław Dąbek) 대령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추가 부대를 창설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습니다.

▲ 노동자들에게 낫 병(코시니에시) 대열에 합류할 것을 호소하는 그디니아 폴란드 사회당(PPS)의 선전문
규모 또한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무려 2천 명에 달하는 자원병이 모일 것으로 기대되었다고 합니다. 대령과의 면담은 전투에 불타는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확보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안을 들은 돰베크 대령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무기? 총 따위는 없소. 병사들조차 가지고 있지 않소."
총이 없으면 낫이라도 들어야지
결국 자원병들은 전선이 아니라 방어 진지 구축 현장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들은 참호와 진지 구축 작업을 묵묵히, 그리고 용감하게 수행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끝내 변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무장하고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열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곧게 세워 세울 낫을 무기로 삼겠다는 아이디어가 탄생했습니다. 노동자 중대 지휘부는 새로 창설될 부대에 자원병들이 합류할 것을 독려하는 특별 호소문까지 내걸었습니다. 호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지들이여! 그디니아 노동자들이여! 삽을 든 사람들 곁에 무장한 낫 부대가 함께 설 것입니다. 민간복을 벗고 우리 용맹한 군대의 군복을 입읍시다. 오늘 주일, 9월 10일 모두 모르스카(Morska) 98번지, 그디니아 주택협동조합 아파트에 위치한 노동자 중대 사령부로 모입시다. 모금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 전단을 읽는 즉시 나타주십시오."
자원병 대대의 지휘관으로는 스타니스와프 웽지크(Stanisław Wężyk) 중령이 임명되었습니다. 대대는 4개 중대와 헌병 1개 소대로 편성되었습니다.

▲ 낫 부대(코시니에시)의 자원병들
9월 11일, 첫 전투의 시험대
9월 11일, 낫 병들은 전장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첫 번째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코시니에시 제1중대는 자전거병 소대의 지원을 받는 제2예비중대와 함께 독일군에게 빼앗긴 령지체(Łężyce) 마을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제1소대는 숲을 지나 진격하고, 제2소대는 제2중대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과연 이 기묘한 교전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코시니에시의 전술은 극도로 단순했지만, 의외로 효과적이었습니다. 먼저 자원병들은 돌격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보병 뒤에 숨어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명령이 내려오는 순간, 사방에서 우렁찬 폴란드식 함성 "우라!"가 쏟아지며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적을 쓰러뜨린 자는 즉시 그의 무기를 빼앗았고, 뒤에 남겨진 낫은 다른 자원병이 주워 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무기 부족을 메꿔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싸웠습니다. 옥시비에 고지가 함락되고 폴란드 부대가 궤멸하는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최후의 패배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자각한 돰베크 대령은 정부 위원 프란치셰크 소쿠우(Franciszek Sokół)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니스코(Nisko) 근처 스탈로바볼라(Stalowa Wola) 출신의 한 농부로서, 그디니아 방어를 지휘하게 된 것에 온전한 만족을 느낍니다. 발트해의 푸른 물결 소리 속에서 농부들의 낫이 나를 위해 울렸음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참고로 돰베크 대령은 9월 16일 옥시비에 방어선이 붕괴하자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오늘날 폴란드, 특히 그디니아에는 그를 기리는 거리와 기념물이 남아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 자료
이 글은 과거의 흥미로운 일화와 의외의 세부 사항을 짧고 알차게 전해 드리는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원본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Apoloniusz Zawilski, Battles of the Polish September(폴란드 9월의 전투), Społeczny Instytut Wydawniczy Znak,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