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Solidarity)"와 싸우기 위해 소련군의 폴란드 파병을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본인이었고, 소련은 어떠한 군사 개입도 배제한 채 계엄령 선포만을 고집했다. 러시아 최고의 역사학자 중 한 명인 루돌프 G. 피호야가 모스크바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계엄령의 실상을 낱낱이 밝힌다.
소련 지도부는 부패했고 정치국 간부들의 평균 나이는 80세에 육박했지만, 동지들은 여전히 시류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1980년 8월 파업의 물결이 폴란드를 휩쓸기가 무섭게, 모스크바에서는 비스툴라 강 유역의 상황을 평가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특별 정치국 위원회가 신속히 구성되었다.

미하일 수슬로프. 그는 폴란드 상황을 담당한 위원회의 수장이었다(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이른바 "수슬로프 위원회"는 1980년 9월 3일, 즉 폴란드 당국이 그단스크에서 노동자들과 합의를 이룬 지 불과 사흘 만에 권고안을 발표했다. 소련은 물론 폴란드 당국의 이러한 양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렇게 명시했다. "이 합의는 사실상 반사회주의 야권의 합법화다. (...) 과제는 반격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반격'이란 무엇이었을까? 당국의 관심을 군에 집중시키고, 야권 지도자들과 그들의 의도를 "폭로"하며, 소련과의 경제 협력의 이점을 널리 홍보하는 것이 권고되었다. 이 모든 것, 그리고 경제 위기의 책임을 자연재해에 돌리는 것까지가 폴란드 여론을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물론 여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 지도부는 폴란드 당·국가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설명했다. 회담 전날인 1980년 10월 29일, 소련 정치국 위원들은 비스툴라 강에서 "반혁명"이 격화될 경우를 대비한 공동 입장에 합의했다.
핵심은 폴란드 지도부를 설득해 계엄령을 도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해결책은 처음부터 브레즈네프와 그의 동료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였다. 다만 그들은 폴란드 공산주의자들과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는데, 그들이 미국 측에 모든 내용을 흘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연대'를 향한 당근 정책
거리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은 오래되고 검증된 공산주의식 해법이었지만,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놀랍게도) 회초리보다 당근부터 꺼내 들었다. 10월 회담에서 소련은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폴란드 사회를 "매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붉은 군대 병사들 대신 인민폴란드에 추가로 20만 리터의 디젤유와 50만 톤의 곡물이 보내질 예정이었다. 소련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은 폴란드에 10억 루블어치의 경제 원조를 약속했다. 다만 이 "원조"의 상당 부분은 폴란드산 석탄 같은 상품을 헐값에 수입하던 관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방식으로 충당될 예정이라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폴란드-소련 회담은 10월 31일에 마무리되었다. 브레즈네프는 회담이 "완전한 상호 이해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폴란드가 계엄령 선포 결정을 지연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군사 개입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소련 정치국을 크게 당황하게 한 것은, 경제 원조의 약속이 폴란드 사회의 분위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폴란드 공산주의자들 역시 계엄령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브레즈네프의 짜증을 유발한 핵심 인물은 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제1서기 스타니스와프 카니아였다. 그는 카니아의 '연대'에 대한 양보를 "항복"이라 규정했고, 서기 본인은 실패와 무능의 화신처럼 보였다.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는 거리에 폴란드 전차뿐 아니라 소련 전차도 등장시키길 원했던 것일까?
동시에 루돌프 G. 피호야가 『소련 권력의 역사』에서 설명하듯, 소련 지도자의 손발은 묶여 있는 상태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소련의 전황은 주가 지날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보존된 기록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서 서부 국경 방면에서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요컨대 폴란드에 대한 군사 개입은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피호야는 "소련 지도부에는 폴란드 당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 외에는 남은 수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압박이 가해졌다. 소련은 스스로 폴란드 계엄령 도입에 관한 문서를 작성했다. 그 초안은 폴란드 지도자들과의 후속 회담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가져왔고, 브레즈네프는 비밀 회의에 참석한 소련 측 인사들에게 미리 지시했다. "그들(폴란드인)에게 계엄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주고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심한 지시도 소용없었다. 카니아와 야루젤스키가 이 문서의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피호야가 강조하듯, "[소련] 정치국 의사록 어디에도 소련군의 폴란드 진입 가능성에 대한 준비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계엄령에 대한 강력한 요구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되었지만, 군사 침공 준비 문제는 어떤 문서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
야루젤스키, 소련군 파병을 공식 요청하다!
1981년 10월 18일, 스타니스와프 카니아가 마침내 물러나고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가 폴란드 통일노동자당 제1서기로 취임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이번 지도부 교체를 "희망과 안도"로 환영했다. 하지만 이 낙관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야루젤스키가 왜 계엄령 문서 승인을 끝내 거부했는지 그 이유가 금방 드러났다. 바로 새 서기가 소련 당국에 소련군의 폴란드 파병을 요구한 것이다. 이 사실은 소련 기록보관소 자료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브레즈네프는 '연대'에 대한 폴란드 통일노동자당 간부들의 항복적 태도에 분노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다른 소련 지도층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비스툴라 강에서의 군사 개입을 꺼렸다(출처: RIA 노보스티 기록보관소, CC ASA 3.0 라이선스).
1981년 10월 29일 소련 정치국 회의에서 KGB 의장 유리 안드로포프는 폴란드 측의 기대에 대해 보고했다. 알고 보니 야루젤스키는 몇 달 전 브레즈네프가 "우리는 사회주의 폴란드가 외세에 의해 다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발언을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장군은 이 느슨한 외교적 수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 인해 소련 수뇌부 사이에 진짜 패닉이 번졌다.
소련 공산당의 주요 간부 중 누구도 비스툴라 강에 군대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논의의 기조를 설정한 것은 안드로포프 자신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노선을 고수해야 한다 — 우리 군대를 폴란드에 들이지 않는 것."

소련 국방장관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원수도 그의 뒤를 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 군대를 폴란드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 한편 브레즈네프는 야루젤스키의 요구에 크게 놀라, 군인을 보내지 않아도 되기만 한다면 폴란드에 추가로 3만 톤의 고기를 보내겠다고 즉각 약속했다. 참고로 당시 소련은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상황이었다. 국가 비축량을 동원해야 했고, 심지어 다른 공화국들에 지원을 요청하며 내수 공급마저 제한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 소련 문서들은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소련은 폴란드에 진입하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손발을 총동원해 그 일을 피하려 했다!
계엄령 당일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소련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야루젤스키는 형제 나라들이 군사 지원을 거부한 데 대해 거의 모욕감을 느낀 듯한 반응을 보였다. 피호야는 바로 그때 그가 "나름의 방식으로 소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 기술한다. 물론 그는 "X 작전"(계엄령 선포)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착수했지만, 소련과의 회담에서는 온갖 요구를 쏟아내며 주도권을 행사했다.

소련 문서를 믿는다면,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은 소련의 개입 거부에 크게 불만이었다. 사진은 KGB 의장 유리 안드로포프와 함께한 야루젤스키(사진: D. Szlachta, CC ASA 3.0 라이선스).
그는 경제적 지원을 기대했고 — 놀랍게도 — 무장 지원마저 다시 요구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소련 지도부는 사건의 전개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소련 정치국 의사록에 따르면 12월 10일, 즉 계엄령 선포 불과 사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 소련은 계엄령이 준비되고 있는지조차, 언제 선포될지조차 알지 못했다. 12월 13일의 계엄령 선포 소식은 그들에게 폴란드 국민들만큼이나 충격적인 돌발 변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Rudolf G. Pichoja, 『소련 권력의 역사 1945-1991』, PWN(폴란드 학술출판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