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탈스탈린화를 최초로 구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라브렌티 베리아

전후 소련의 첫 번째 해빙기는 흔히 니키타 흐루쇼프와 그의 유명한 비밀연설과 함께 기억됩니다. 그러나 사실 서투른 흐루쇼프는 옛 당 동료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꼈을 뿐입니다. 탈스탈린화, 개인숭배 타파, 대숙청의 종식—이 모든 변화를 고안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인물은 다름 아닌 라브렌티 베리아였습니다. 카틴 학살과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 추방에 공동 책임이 있는 잔혹한 스탈린주의 범죄자 말입니다.

스탈린이 1953년 3월 5일 세상을 떠난 직후, 전시 중 NKVD(내무인민위원회)를 이끌었던 라브렌티 베리아가 후계자 자리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새롭게 구성된 소련의 집단지도체제 속에서 그는 빠르게 가장 강력한 위치를 차지했고, 활발한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이 주제를 깊이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학자들은 베리아가 '붉은 차르'의 왕좌에 영원히 앉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도, 세계도, 소련 시민들도 그의 집권으로만 이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리아는 즉각 스탈린주의 해체 작업에 돌입했기 때문입니다.

탈스탈린화를 최초로 구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라브렌티 베리아

통념과 달리 탈스탈린화의 아버지는 니키타 흐루쇼프가 아니었습니다.

스탈린의 편집증 시대에 시작된 거의 모든 정치 재판이 중단되었습니다. 베리아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체포되었던 내무부 산하 전 직원들을 감옥에서 석방했습니다.

그는 또한 개인숭배를 대폭 축소했습니다. 그의 주도로 각종 의전 행사에서 소련 지도자들의 초상 진열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당 지도부 동료들은 그가 '스탈린 동지의 이름을 망각 속에 묻으려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각 공화국 출신 민족 엘리트들의 위상을 회복시켜 소련 체제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스탈린은 '러시아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이탈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반면 베리아는 개별 민족들이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졌던 레닌 시절의 모델로 되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베리아는 아울러 당 지도부와 국가 지도부의 분리를 추진했으며, 정치적 경쟁자였던 게오르기 말렌코프의 고발에 따르면 동독을 포기하고 진정한 민주화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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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아(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붉은 차르'의 명령에 복종하는 집행자였고 수천 명의 피를 얹고 있었지만, 스탈린 사후에는 급진적인 개혁 도입을 결심합니다.

『소련 권력사 1945~1991』의 저자인 러시아 역사가 루돌프 G. 피호야에 따르면, 그는 굴라크 해체(본인이 한때 직접 이끌었던 곳입니다!)를 추진하고, 더 평온하고 우호적인 국제정책을 펼치며, 유고슬라비아와의 갈등을 수습하고, 테러 통치를 종식하며, 농민에 대한 착취를 억제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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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인가, 개혁가인가?

폴란드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라브렌티 베리아라는 인물과 이 모든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잔혹한 처형자가 어째서 갑자기 국가의 자유화와 테러의 포기를 결심하게 된 걸까요?

루돌프 G. 피호야는 두 가지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합니다. 첫째, 베리아는 소련 지도부 안에서 결코 유일한 범죄자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여러 이유로 그가 가장 널리 알려졌을 뿐, 동료들이었던 게오르기 말렌코프,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니키타 흐루쇼프, 니콜라이 불가닌 역시 카틴 학살을 비롯한 여러 범죄에 똑같이 책임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폴란드 장교들의 처형 명령서를 포함해 처형 명령에 가장 많이 서명한 사람은 몰로토프였지 베리아가 아니었습니다. 한편 악명 높은 '대숙청'은 베리아보다는 그의 전임자들인 야고다와 예조프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그 모든 배후에는 스탈린이 있었습니다. 그의 동의 없이는 1930~40년대의 대규모 범죄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피호야에 따르면 베리아의 도덕성은 당 동료들의 윤리 수준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달랐던 것은 지적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소련 권력 정점의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계산적이었습니다.

탈스탈린화를 최초로 구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라브렌티 베리아

러시아 역사가 루돌프 피호야가 강조하듯, 베리아는 다른 소련 지도자들보다 나쁜 인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통념과 달리 대숙청의 주된 책임자는 그가 아니라 전임자들인 야고다와 예조프(사진 맨 오른쪽)였습니다. 물론 그들 역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가 탈스탈린화를 추진한 것은 선심 때문이 아니라 차가운 계산의 결과였습니다. 테러와 편집증의 통치가 장기적으로 국가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권력을 공고히 할 기회를 포착한 그는 경제가 파탄에 이른 초라한 제국이 아니라 진짜 강국을 통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행보가 스탈린의 다른 측근들의 마음에 들 리 없었습니다. 1953년 6월 26일 베리아는 체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됩니다. 말렌코프와 흐루쇼프는 그를 스탈린의 가르침에서 이탈한 죄 등으로 고발했습니다. 그 직후 흐루쇼프는 말렌코프마저 제거하고, 베리아가 내놓은 구상들을 가져와 반(反)스탈린주의 입장에 섰습니다.

출처:

저희 사이트의 핵심은 바로 '알쓸신잡'입니다. 과거의 흥미로운 일화, 놀라운 디테일, 옛 신문에 실린 기이한 소식을 다룬 짧은 글들입니다. 단일 출처에 기반한, 3분이면 읽을 수 있는 글이죠. 이 글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루돌프 G. 피호야, 『소련 권력사 1945~1991』, 폴란드 학술출판사 P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