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프는 폴란드에 점령당한 도시였을까?
얼마 전 폴란드 일간지 '레치포스폴리타(Rzeczpospolita)'는 유로 2012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된 자료를 근거로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리비프(Lviv)는 무려 600년 동안 폴란드의 점령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보는 개최국인 우크라이나 측이 조직위원회에 보낸 것이었다. 놀랄 일도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 전통에서 이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시계를 약 120년쯤 돌려보자. 19세기 말, 갈리치아(Galicia)의 양대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리비프 대학교에 한 역사학자가 강단에 섰다. 이름은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Mykhailo Hruszewski). 당시만 해도 별볼일 없어 보이던 이 역사학자는 시간이 지나며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민족을 '각성'시켰고(어떤 이들은 '창조'했다고 평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지도자 자리까지 올라섰다.
바로 이 인물, 오늘날까지도 우크라이나 최고의 국민적 영웅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흐루셰우스키가 1905년 『갈리치아에서의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라는 짧은 소책자를 펴냈다. 왜 이 소책자가 중요할까? 불과 2주 반 만에 급하게 집필된 이 짧은 글야말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식 갈리치아 역사관의 원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흐루셰우스키가 그린 '폴란드의 재앙'
『진보적 민족주의자(Progressive Nationalist)』의 저자 루카시 아담스키(Łukasz Adamski)는 흐루셰우스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카지미에시 대왕. 중세 루스(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분할한 죄인이라는 것일까?
"폴란드인들은 수세기 동안 갈리치아와 그 토착민들을 야만적으로 착취해 왔다. (...) 1349년, 즉 카지미에시 대왕이 적루테니아(Red Ruthenia)를 실질적으로 장악했을 때, 폴란드인들은 이 땅에 '침략자'로 등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흐루셰우스키에 따르면 폴란드인들은 루텐 땅을 침입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유린하고 말았다. 그의 서술 속 당시 할리치(Halych) 땅은 "천혜의 자원이 풍부하고 잘 발달했으며, 경제와 문화 면에서 당대 폴란드에 뒤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앞서는" 곳이었다. 요컨대 우유와 꿀이 흐르는 땅, 물론 우크라이나인의 우유와 우크라이나인의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한 것은 폴란드 신사들이 그들의 '역사적·문화적 사명'을 들고 나타난 때부터였다. 악명 높은 '동방진출(Drang nach Osten)'이 시작되면서 목가적인 평온함, 아니 일상 그 자체가 끝장났다. 폴란드인들은 나라를 밑바닥까지 털어버렸고, 그 결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제1차 분할될 무렵 이곳은 '우둔한 농민, 굶주린 유대인, 반쯤 문맹인 성직자'들의 고향으로 전락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폴란드 귀족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흐루셰우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분할 이후에도 폴란드인들은 오스트리아 당국의 묵인 아래 갈리치아 파괴를 계속했다. 그 결과 리비프의 땅은 "상업 없고 산업 없는 나라 (...), 굶주림이 몰고 오는 발진티푸스가 가장 흔한 단골손님인 나라, (...) 유럽 지도에 찍힌 가장 검은 낙인"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은 폴란드인, 그 가장 악질의 억압자 탓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회 (...)는 부정직하고 교활하며 위선적인 적과 마주하고 있다. 폴란드 쪽의 적들은 식민지 개척자요, 남의 땅을 침탈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그 땅을 가꾸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자기들 땅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점령 하의 리비프?
흐루셰우스키는 한술 더 떠 완전히 터무니없는 음모론까지 받아들였다. 폴란드 신사들은 교묘한 술책이나 갖가지 협박을 통해 늘 러시아 정권과 거래를 시도하며 벨라루스·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의 민족적 열망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교본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비슷한 인용구는 얼마든지 더 늘어놓을 수 있다. 요컨대 흐루셰우스키는 폴란드인 조상들에 대해 그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셈이다.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시절 거의 모든 민족운동은 이런 구호로 출발했으니까.
민족은 분할 지배 세력과 이웃 나라와의 경쟁 속에서 단련되고 성장한다. 극단적인 감정 없이는 민족주의 이념이 대중에게 결코 닿지 않았을 것이다. 폴란드도, 우크라이나도, 슬로바키아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나라 역사학자들이 이미 오래전에 이런 식의 단순화되고 왜곡된 논리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출간되는 책들조차 여전히 흐루셰우스키의 역사관을 맹목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꽃들이 UEFA 웹사이트까지 피어나게 된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출처
- Łukasz Adamski, Progressive nationalist. Mychajło Hruszewski and his views on Poland and Poles, Polish Scientific Publishers PWN,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