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폴란드인들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어두운 순간 10가지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폴란드 역사

폴란드인들의 약탈 행위,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외면한 국내군, 히틀러의 군대에 협력한 수천 명의 크라쿠프 시민. 한 나라의 역사에서 모든 장면을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오늘은 많은 폴란드인들이 차라리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이번 TOP 10 목록은 역사 콘텐츠 매체 '호기심 가득한 역사(Ciekawostki Historyczne)'에 게재된 글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폴란드 역사 속 논란이 되는 고통스러운 에피소드들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

10. 르네상스의 도시 크라쿠프, 그리고 만연했던 성폭력

근세 크라쿠프는 르네상스 문화가 꽃핀 도시였지만, 동시에 성폭력이 만연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사형 집행인, 평민, 도시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 의한 성폭행 사례가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아동 성학대와 집단 강간에 대한 기록도 확인됩니다.

9. 전쟁 전 폴란드에도 존재했던 수용소

1934년 6월 17일, 대통령령에 따라 베레자 카르투스카(Bereza Kartuska)에 격리 시설이 설립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간수들은 수감자들을 학대하고 굴욕을 안겼으며,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고 하루 최대 15시간에 달하는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8. 왕이 되기 전, 바르샤바 공격을 명령했던 얀 소비에스키

훗날 폴란드의 왕이 되는 얀 소비에스키(Jan Sobieski)는 즉위하기 몇 년 전, 부하 병사들에게 바르샤바 공격을 명령한 바 있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잔혹한 약탈과 강간을 자행했는데, 이 모든 것은 왕비의 쿠데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7. 베스테르플라테의 수비병 모두가 영웅은 아니었다

독일군 침공 첫 전투로 기억되는 베스테르플라테(Westerplatte) 방어전에도 어두운 이면이 있었습니다. 일주일간의 전투 동안 탈영 사건이 발생했고, 심지어 동료를 적에게 내버려 두고 떠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지휘부는 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병사 네 명을 총살했다고 전해집니다.

6. 테러리스트였던 폴란드 대통령

훗날 폴란드의 대통령이 되는 이그나치 모시츠키(Ignacy Mościcki)는 젊은 시절 자폭 테러를 계획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내가 폭탄 제조를 도울 수 있도록 결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차르 러시아의 비밀경찰 오흐라나(Ochrana)가 음모를 적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5. 나치군을 열렬히 환영한 국경 지방의 폴란드인들

1941년 6월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개시했을 때, 동부 국경 지방(크레시)의 일부 폴란드인들은 나치 독일군을 큰 환영 분위기 속에 맞이했습니다. 주민들은 독일 병사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그들을 기리는 개선문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4. '사기 저하된 야만인'이라 불린 영국 주둔 폴란드 공군

영국 여성 보조 공군(WAAF) 출신 오드리 존브라운(Audrey John-Brown)은 영국에 주둔하던 일부 폴란드 공군 장병들을 사기가 저하된 야만적인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며 성희롱과 강간 미수를 고발했습니다. 그녀는 만취한 폴란드 군인 한 명을 정당방위로 살해한 일도 있었습니다.

3. 바르샤바가 무기를 들 때, 크라쿠프는 나치를 위해 참호를 팠다

1944년 8월 바르샤바가 봉기하여 무기를 들었을 때, 같은 시기 크라쿠프에서는 나치를 위한 참호 파기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국방군의 방어선이 될 교외 방어 시설 공사에 거대한 인파가 자원했습니다. 독일군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장비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이 압권입니다.

2.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외면한 폴란드 지하국가

폴란드 지하국가는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 저항 세력을 돕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국내군(Armia Krajowa) 지휘부는 유대인 저항 운동 지원에 회의적이었습니다. 1943년 1월까지 스테판 '그로트' 로베츠키(Stefan Grot Rowecki)는 예외적으로 유대인 전투 조직(ŻOB)에 권총 10정만을 지급했는데, 그중 4정은 고장 난 물건이었습니다.

1. 유대인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남은 재산을 약탈한 사람들

독일 점령당국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동안, 일부 폴란드인들은 그들이 남긴 재산을 약탈했습니다. 약탈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자 국내군이 이를 막기 위해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지하 신문 '정보 통신(Biuletyn Informacyjny)' 편집진은 '가장 숭고한 신적·인간적 구호의 이름으로, 동포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를 하이에나의 역할로 전락시키지 말기를'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전국 곳곳에서 약탈은 끊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