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밤병(요강)'조차도 예외는 아닙니다.
밤병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소박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으로, 그 위상은 무려 20세기 후반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었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인류의 야간 생활을 책임진 고마운 도구였던 셈입니다.
판화 속에 담긴 중세의 풍경
위 사진에 등장하는 목판화는 중세 시대의 전형적인, 그것도 거의 매일 벌어지던 일상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한 여인이 창문을 열고 밤병의 내용물을 거리로 쏟아붓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창바로 아래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도 개의치 않은 모습입니다.
왜 거리로 쏟았을까?
당시의 주택들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화장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에 용건이 있으면 밤병을 사용하고, 다음 날 아침에 그 내용물을 이렇게 버리는 것이 하나의 확립된 습관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거리가 비어 있는지, 아니면 마침 누군가 지나가고 있는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세 도시의 좁은 골목에서는 이런 광경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는 흔한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밤병, 생각보다 긴 역사
흥미롭게도 밤병은 서양만의 문물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요강'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재질 또한 도자기, 금속, 나무 등 시대와 계층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는 정교한 장식을 새긴 밤병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현대식 배수 시설과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기 전까지, 밤병은 위생과 실용성 사이의 타협점이자 당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단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