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고양이로 이집트를 정복하다: 페르시아의 기발한 심리전과 펠루시움 전투

고대 이집트는 기독교 이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이집트 군대가 고양이 한 무리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으신가요?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정확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쇠퇴하던 이집트 제국

월드 히스토리 백과사전(World History Encyclopedia)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기원전 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집트 제국은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상태였습니다. 여전히 지역 강국으로서의 위상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투탕카멘이나 람세스 같은 파라오 시대의 전성기만큼의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 동안 이집트는 아시리아 군대에게 연이어 참패를 당했고, 어떻게든 밀어내긴 했지만 국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침공, 개전의 명분

이집트가 약해진 모습을 지켜본 아케메네스 왕조, 즉 오늘날 이란을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 제국은 이제 자신들이 움직일 때라고 판단합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집트와 페르시아 사이의 긴장이 결정적으로 폭발한 계기는 이집트의 통치자 아마시스 2세가 딸을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 2세의 아내로 내주기를 거부하면서였습니다.

물론 캄비세스는 이유가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이집트를 침공했겠지만, 파라오의 모욕은 완벽한 명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캄비세스가 군대를 규합하는 동안 파라오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는 그의 아들 프삼티크 3세에게 넘어갔습니다. 군사적·정치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신임 파라오는 최선을 다해 대군을 소집해 기원전 525년 나일 삼각주 북부 도시 펠루시움에서 페르시아 침략자들을 막아서려 했습니다.

고양이로 이집트를 정복하다: 페르시아의 기발한 심리전과 펠루시움 전투

고양이보다 소중한 것이 없던 고대 이집트인들

결과를 말씀드리기 전에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배경 지식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단순히 고양이라는 귀여운 털뭉치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동물 전반을 깊이 숭배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대체로 채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바로 고양이 머리(때로는 고양이 몸)를 한 여신 바스테트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신 바스테트의 위상

바스테트는 '가정, 가족 생활, 여성의 비밀, 고양이, 다산, 출산'의 여신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존경받던 신격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보호자이면서도 복수에는 결코 인자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바스테트의 분노를 두려워해 고양이를 최대한 공경하며 대해야 했습니다.

헤로도토스 본인의 기록에도 이집트인들이 집 화재 시 자신의 안위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고양이를 구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한 보석과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채 미라로 만들어진 고양이의 사례도 수없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 사랑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양이를 죽이면 사형에 처해진다는 점입니다.

페르시아의 반격: 고양이를 무기로 활용하다

파라오 프삼티크가 진격하는 페르시아군을 막아 설 준비를 하는 동안, 페르시아 군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합니다. 월드 히스토리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전투에 대한 가장 생생한—다소 과장되었을 수도 있는—기록은 또 다른 그리스 작가 폴리아이노스가 남겼습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지도자 캄비세스 2세는 병사들의 방패마다 여신 바스테트의 이미지를 그리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개, 양,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고양이를 포함한 이집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들을 데리고(혹은 뒤따르게 하여) 전장으로 진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심리전의 완벽한 성공

결국 이집트 방어군이 마주한 것은 살아있는 고양이들이 바스테트의 이미지와 함께 진군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감히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단 하나의 화살이라도 쏘는 순간 고양이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바스테트의 분노를 불러일 것임은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서 대다수 병사들은 싸우기보다는 탈영하여 도주하기를 택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작전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펠루시움 전투에서 약 5만 명의 이집트인이 목숨을 잃은 반면, 페르시아군의 사망자는 겨우 7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페르시아는 파라오를 포로로 잡았고, 이집트 남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이집트 독립의 끝

이것이 사실상 이집트가 독립 제국으로서 존재한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몇 차례 짧은 이집트인 통치 시기를 제외하면, 이 지역은 이후 수백 년간 페르시아, 그다음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흘러갔습니다.

강대국의 운명이 고양이 한 마리의 목숨을 아끼는 문화적 신앙 앞에서 갈렸다는 점에서, 펠루시움 전투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심리전의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