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도시가 아니었다
1920년대 로스앤젤레스는 결코 '천사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범죄율, 만연한 부패, 그리고 무너져 가는 치안에 대한 신뢰는 도시의 평판을 갉아먹고 있었지요. 그런 가운데 대중을 경악시키고 부모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든 끔찍한 범죄가 발생합니다. 바로 12세 소녀 마리온 파커의 납치 살해 사건입니다.
납치의 시작
1927년 12월 15일,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 젊은 남자가 로스앤젤레스의 마운트 버넌 주니어 고등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쿠퍼'라고 소개하며, 부유한 은행가 퍼리 파커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딸을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홀트 선생님은 처음에는 낯선 남자를 의심했지만, 남자는 은행에 전화해 확인해 보면 모든 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며 의심을 불식시켰습니다.
홀트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어느 딸인가요?"라고 묻자, 남자는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마리온"이라고 답했습니다. 곧 열두 살 소녀는 학교를 빠져나왔고, 다시는 그 문을 되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쌍둥이 여동생 마조리 파커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학교에 남겨졌습니다.
기괴한 몸값 거래
마리온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야 드러났습니다. 둘째 딸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부모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고, 그곳에서 딸을 데리고 갔다는 '비서'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몇 시간 후, 소녀의 아버지에게 '조지 폭스'라는 이름으로 서명된 수수께끼의 전보가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마리온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1,500달러를 요구했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소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퍼리 파커는 물론 최후통첩을 받아들였습니다. 거래는 12월 16일에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납치범은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들을 발견하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파커 가족에게 또 다른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이번에 납치범은 경찰과 협조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딸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같은 날 저녁으로 제시했습니다.
오후 8시, 마리온의 아버지는 현금을 들고 로스앤젤레스 웨스트 5번가와 사우스 맨해튼 플레이스가 만나는 교차로에 성실히 나타났습니다. 잠시 후 한 대의 차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운전석에는 권총을 든 복면남이 앉아 있었고, 조수석에는 담요에 감싸인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의식이 없었지만, 범인은 퍼리에게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라고 확신시켰습니다.

192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모습
파커가 납치범에게 돈을 건네자, 납치범은 타이어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미터를 달린 뒤 차를 세우고 조수석 문을 열어 마리온을 길바닥에 던졌습니다. 아버지는 즉시 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녀를 품에 안는 순간, 기쁨은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딸은 잠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취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퍼리가 안고 있던 것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죽은 시신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마리온은 이미 12시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첫 번째 몸값 거래 시도가 실패한 직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소녀는 팔다리가 잘릴 뿐만 아니라 내장이 적출되고 수건으로 채워졌으며, 눈까지 꿰매져 있었습니다. 시신에서 성폭행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처참한 상태 때문에 명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의사는 마리온이 질식 또는 실혈로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끔찍한 발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2월 18일, 신문에 싸인 소녀의 사지와 장기가 엘리시언 공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범죄의 공포는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어린 파커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한 전국적인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읽어보기: 1930년대 이 논란이 된 사건은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무능함과 부패를 폭로하는 동시에, 캘리포니아의 작은 농장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던 연쇄살인범의 검거로 이어졌습니다.
짐승을 쫓다
수색에는 2만 명이 넘는 경찰관이 동원되었고, 살인범(생사여부 무관) 검거에 대한 포상금은 결국 1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수집된 증거들은 경찰을 윌리엄 에드워드 힉먼에게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퍼리 파커가 근무하던 퍼스트 내셔널 은행의 전 직원이었습니다.
힉먼은 1927년 6월 절도 및 수표 위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파커의 증언이 이에 일조했습니다). 그는 형기를 마쳤지만, 출소 후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난과 전과자라는 낙인과 씨름하던 그는 절박한 선택을 했습니다. 자신의 불운의 원인으로 여긴 남자의 딸을 납치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국은 힉먼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고, 결국 그는 오리건 주에서 체포되어 캘리포니아 당국에 인계되었습니다.

윌리엄 힉먼은 마리온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윌리엄은 납치한 이유에 대해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학비가 필요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마리온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 공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힉먼이 지목한 소위 살인범은 반박할 수 없는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범행 당시 그는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용의자는 소녀가 은행 방문 당시 자신을 알아봤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는 먼저 소녀를 목 졸라 죽인 뒤 토막 내 숨겼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몸값을 받으려면 마리온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신의 몸통을 채우고 눈을 꿰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힉먼의 재판은 1928년 1월 25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정신 이상을 주장해 무죄를 입증하려 했지만, 검사는 살인 당시 윌리엄이 온전한 정신 상태였음을 확인해 주는 정신과 의사팀을 확보했습니다. 1928년 2월 14일, 그는 교수형에 처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형은 같은 해 10월 29일에 집행되었습니다.
교수대에 오른 윌리엄은 집행관이 검은 후드를 씌우자 기절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를 처형에서 구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불행히도 밧줄이 너무 느슨했습니다. 낙하판이 열린 후 살인범은 14분간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고, 의사가 질식사를 확인하면서 비로소 숨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