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의 역사와 미스터리한 탈옥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

알카트라즈는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바위섬에 위치했던 최고 보안 등급의 교도소입니다. 오늘날 이곳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으며, 섬에서 벌어진 그 유명한 탈옥 사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물새들의 섬

'라 이슬라 데 로스 알카트라세스(La Isla de los Alcatraces)' — 스페인 탐험가 후안 마누엘 데 아얄라는 지평선에 작은 바위섬을 발견하자마자 이렇게 불렀습니다. 스페인인들은 이름을 새로 짓는 데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바위 위에 가넷(바닷새)이 무리 지어 서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섬의 '주인'이라 여겼습니다.

이 섬은 19세기 중반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골드러시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의 금광 발견으로 이 지역에는 금광 찾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습니다. 경제 호황을 누리던 샌프란시스코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은 1,000문이 넘는 대포를 갖춘 군사 기지 건설을 제안했고, 그 부지로 선정된 곳이 바로 알카트라즈 섬이었습니다(1859년부터 '포트 알카트라즈'로 불림).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의 역사와 미스터리한 탈옥

19세기의 알카트라즈

1880년대에는 군사 시설이 군 교도소로 전환되었고(주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사용), 1933년에는 연방 교정국이 섬을 인수했습니다.

수감자들

1934년 8월 11일, 첫 번째 죄수 수송선이 섬에 도착했습니다. 살인범과 흉악한 강도 등 위험한 인물 137명이었으며, 다른 교도소에서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던 난폭한 수감자들이었습니다. 알카트라즈에는 FBI 요원 50명 이상과 교도관 150명, 그리고 초대 소장 제임스 A. 존스턴이 배치되었습니다.

섬에는 죄수를 위한 시설 외에도 직원 가족을 위한 건물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교도소 담벼락 안에서 육지의 또래들과 다름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무기를 본뜬 장난감으로 놀 수는 없었습니다.

페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섬을 오갔습니다(오전 2시부터 5시 사이는 운항이 중단되었습니다). 직원 가족들은 쇼핑 등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쉽게 드나들 수 있었고, 때로는 이송 중인 죄수와 함께 배를 타기도 했습니다.

교도소 담벼락 근처에는 유치원이 있었고, 직원과 가족들이 주말에 즐길 수 있는 클럽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손님 초대도 자유로웠지만, 무기와 탄약을 지니고 섬에 올 수는 없었습니다.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의 역사와 미스터리한 탈옥

알카트라즈의 유명 수감자들

알카트라즈 초기에는 '침묵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노동 시간과 주말의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 죄수들은 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규칙을 어긴 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교도소 생활

알카트라즈는 바다와 강한 해류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은 탈출 시 맞닥뜨리게 될 차가운 물에 몸이 익숙해지지 않도록 뜨거운 물로만 목욕하게 했습니다. 교도관 90명이 교대로 근무했고(교대 근무는 8시간), 그들의 주요 임무는 하루 12회 죄수 인원 점검이었습니다.

일상은 모든 죄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복종이 요구되었습니다. 반란을 막기 위해 죄수가 최대한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즉,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무장한 교도관을 자주 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달래진' 죄수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여겨졌습니다. 참고로 교도관들은 죄수의 갱생보다는 절대적인 질서와 평화 유지를 위해 훈련받았습니다.

규칙을 거스르는 죄수는 독방 구금을 당했습니다. 독방은 빗물 저장용 대형 탱크 옆 지하에 위치해 있었는데, 축축하고 어두우며 좁아 사람이 지내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벽에 구멍을 뚫기가 쉬웠기 때문에 죄수들은 움직임을 억제하는 쇠사슬로 묶였습니다. 이 처벌을 받은 죄수는 3일에 한 번 식사(주로 빵)만 제공받았습니다. 출소 후 죄수들은 매트리스나 침대 없이 콘크리트나 암반 위에서 잤다고 회고했습니다.

복역 기간 동안 죄수들은 정신적 붕괴를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항의의 표시로 아킬레스건을 끊거나 손가락을 자르는 일이 빈번했고, 자살도 있었습니다. 신경쇠약에 이르지 않으려고 죄수들은 스스로 무언가에 몰두했습니다. 도마뱀, 쥐, 새 같은 동물을 기르는 것이 인기 있는 방법이었지만(당연히 금지된 행위), 일부는 과일로 만든 '프루노'라 불리는 밀주를 빚기도 했습니다(때로는 휘발유와 우유로 술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알 카포네와 유명한 탈옥

알카트라즈에는 흉악범뿐 아니라 알 카포네 같은 유명 인사도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금주법 시대의 밀주왕 카포네는 85번 수감번호를 받았고, 매일 교도소 화장실을 청소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것이 그의 우울증과 몰락에 한몫했다고 전해집니다.

알카트라즈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기에 탈옥 시도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공식 기록된 시도만 14회(34명)에 달합니다. 가장 유명한 탈옥은 1962년 6월 11일, 형제인 존 앵글린과 클래런스 앵글린, 그리고 프랭크 모리스가 조직한 사건입니다(앨런 웨스트도 계획에 가담했습니다).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의 역사와 미스터리한 탈옥

프랭크 모리스는 알카트라즈의 가장 유명한 수감자 중 한 명

모리스는 자기 감방 세면대 아래 환기구 철창 뒤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티스푼으로 개구부를 넓힌 그는 섬에서 일하던 배관공들이 쓰던 옛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이 통로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하려면 동료가 필요했고, 마침 모리스의 감방 옆에 수감된 죄수들이 곧바로 동료가 되었습니다. 계획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죄수들은 작업장과 식당에서 일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식당에서 가져온 식기류로 죄수들은 감방 벽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의 큰 전환점은 모리스가 작업장에서 진공청소기의 낡은 모터를 확보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이용해 드릴과 비슷한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작업은 하루 몇 시간씩, 주로 통금(오후 9시) 직전에 이루어졌습니다. 교도관이 다가오면 미리 알리고, 잘게 부순 잔해는 지붕으로 통하는 환기 덕트로 버렸습니다(탈출 경로는 지붕으로 올라 담벼락을 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정기적인 감방 검사 동안 어떤 교도관도 죄수들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환기구 철창은 비누와 종이로 만든 가짜로 교체되었고, 믿기 힘들지만 이 방법 덕분에 몇 달간 추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죄수들은 또 우비 20벌을 훔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결국 뗏목 재료로 쓰였습니다.(재료는 시멘트로 이어 붙였고, 노는 작업장에서 가져온 합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탈출은 깊은 밤에 계획됨)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는 잠자는 탈옥자처럼 보이는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화장지와 비누로 만들고 물감으로 칠한 인형에는 감방 이발사에게 몰래 얻은 머리카락까지 붙였습니다!

알카트라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의 역사와 미스터리한 탈옥

입지 조건 때문에 알카트라즈는 완벽한 교도소처럼 보였습니다

1962년 6월 11일,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소등 후 죄수들은 인형을 침대에 눕혀 두고 구멍을 철창 모조품으로 덮은 뒤 덕트로 이동했습니다. 지붕에 오른 앵글린 형제와 모리스는 웨스트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웨스트는 장비를 잘못 꾸려 통로에 끼었고, 겨우 지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친구들이 떠난 뒤였습니다).

나머지 세 사람은 담벼락을 넘고 즉석 뗏목을 타고 섬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헤엄쳐 나갔습니다. 그 후 그들에 대한 소식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끊겼습니다. 만에서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013년 캘리포니아 경찰은 존 앵글린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받았는데, 내용은 형제와 모리스가 이미 몇 년 전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암에 걸렸으니 당국이 의료 지원을 해주면 감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이 정보는 2018년에 공개됨). 경찰은 편지 검증을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탈옥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알카트라즈 교도소는 유지 비용 과다와 탈출을 허용하는 설계상 결함으로 인해 1963년 공식 폐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