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알렉산더 대왕의 성적 지향은 무엇이었을까?

위대한 정복자, 그리고 다채로운 연애사의 주인공

알렉산더 대왕은 위대한 정복 사업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풍부한 연애 생활도 함께 누린 인물입니다. 그를 가장 간단하게 규정하자면 '양성애자'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이는 상당히 단순화된 설명에 불과합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처럼

알렉산더 대왕의 연애사가 놀라운 신화와 전설로 뒤덮이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친구 헤파이스티온과의 관계입니다. 새로운 제국의 창시자였던 알렉산더는 헤파이스티온과 신화 속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와 맺었던 것과 흡사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헤파이스티온이 죽은 후에는 그를 기리도록 명령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번째는 마케도니아 왕의 곁을 맴돌던 총애받는 인물들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그중 한 명이 바빌론에서 젊은 통치자를 덮친 미스터리한 죽음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환관 바고아스가 있으며, 알렉산더는 이에게 공개적으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기록한 축제의 장면

카이로네이아 출신의 플루타르코스는 게드로시아에서 열린 축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게드로시아의 왕성에 도착하자 알렉산더는 병사들에게 다시 휴식을 허락하고 그곳에서 성대한 축제를 벌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합창 경연을 벌이는 병사들을 지켜보았다. 경연의 승자는 알렉산더의 총애를 받던 바고아스였다. 마케도니아인들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극장을 지나 알렉산더 곁에 앉는 바고아스를 보고 박수를 보내며 알렉산더에게 입을 맞추라고 외쳤고, 결국 알렉산더는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동성애자인가, 양성애자인가?

그래서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공공연한 동성애자로 보려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 명의 아내(록사나, 스타테이라, 파리사티스)와 정부 바르시네가 있었고, 적어도 한 명의 아들 알렉산더 4세까지 두었습니다.

논문 『알렉산더의 성생활』의 저자 대니얼 오그든(Daniel Ogden) 교수에 따르면, "통치자는 이성애자였고 방종하지 않았다"는 오랫동안 널리 퍼진 믿음에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마케도니아 출신 이 인물과 그의 행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위대한 정복자가 여러 파트너를 두었고 남성과도 '모험'을 즐긴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알렉산더는 비록 마케도니아 출신이었지만, 삶과 연애 취향이 명확한 분류를 거부하던 당대 그리스인들과 매우 닮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던 세계의 경계를 넓혔듯이, 자신만의 성적 자유의 경계 역시 한층 더 넓혀 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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