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이 끊임없는 전화가 사람을 어떤 광기로 몰아넣는지"
유명 작가 이레나 크시비츠카(Irena Krzywicka)가 회고록에 남긴 말이다. 전간기 폴란드에서 음란한 전화에 시달린 한 국회의원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자유 폴란드에서 여성들은 빠르게 완전한 참정권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정치에서 동등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919년 제2공화국 최초의 의회 선거에서도, 1938년 마지막 선거에서도 여성들은 줄곧 선거 명부의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자신들의 정강을 알릴 기회는 없었고,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당 지도부조차 그들을 '모피 코트에 어울리는 예쁜 꽃' 정도로만 취급했다.

여학생 기숙사의 전화선, 1927년 사진
그 결과 여성 의원은 흰 유니콘처럼 보기 드문 존재가 되었다. 초대 국회에서는 단 8명의 여성과 무려 436명의 남성이 세임(폴란드 의회)에 진출했다! 소수의 여성 의원들은 특별한 책임감을 짊어졌지만, 동시에 남다른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어떤 놈이 잘생긴 여성 의원을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경찰은 젊고 예쁜 유명 여성을 골라 괴롭히는 미친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레온 나글러(Leon Nagler) 경무총장은 말했다. 폴란드 경찰 최고위층 인물 중 하나였던 그만큼 무슨 말인지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20년대 말부터 그는 중앙수사국을 이끌었고, 이후 국가경찰총국 감찰관직을 맡았다. 바로 이 직책 중 하나에서 그는 정치와 색정광의 경계에 선 기묘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세임 복도의 여성 의원들, 1930년 사진
"어떤 놈이 잘생긴 여성 의원을 스토킹하고 있었다"고 나글러는 회상했다. 끊임없는 전화, 헐떡이는 숨소리, 협박. 상황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경찰이 움직였다. 해당 의원에게는 '변태를 가능한 한 오래 전화기에 붙잡아 두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물론 그녀의 전화는 도청 상태였다. 통화 발신지 주소를 파악하는 즉시 지휘부는 정예 순찰대를 파견했고,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여성 의원과 통화하며 손을 바지 안에 넣은 채 반쯤 정신을 잃은 남자"였다.
나글러는 어느 의원을 가리키는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사건의 대략적인 시기는 짐작할 수 있다. 제2기 혹은 제3기 세임, 즉 1928~1935년 사이였다. 하지만 당시 의석을 가진 십여 명의 여성 중 누가 '미인'으로 통했는지는 가려낼 수 없다. 일부 의원의 사진은 아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글러는 전문가로 평판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는 사건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고, 피해자의 신원을 밝힐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기자 출신 친구 이레나 크시비츠카와의 사적인 자리에서 털어놓았다.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 대화 상대를 진정시키려는 시도였다. 화려한 스캔들 메이커이자 가장 진보적인 사상의 전파자였던 크시비츠카 역시 자신만의 스토커를 둔 상태였고,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당신과 만나겠습니다. 하지만 그 만남이 당신의 마지막이 될 겁니다"
상황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낮이든 밤이든 이어지는 공갈과 협박, 성희롱성 암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이런 끊임없는 전화가 어떤 광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라고 크시비츠카는 생애 말기에 출간한 회고록에서 강조했다. 남편이 변호사였기에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가 사무실 고객이 아니라 스토커임이 드러나면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단 한 번, 예외를 두었고, 그것을 깊이 후회했다.
역겨움을 삼키며 전화기를 들자 익숙한 '굵은' 저음이 열광하듯 재촉하는 목소리로 들려왔다. "전화 끊지 마십시오. 아주 중요한 할 말이 있습니다."
목소리에는 그토록 간절한 탄원이 담겨 있어 나는 마지못해 수화기를 귀에 댔다(...). 한편 그 목소리는 계속됐다. "내가 지금껏 해온 일을 사과하고 싶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짓이지만 저는 몹시 불행합니다. 아내와 아이가 저를 떠났습니다. 떠나면서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당신을 차는지 궁금하면 크시비츠카에게 물어보라'고요. 그래서 묻습니다..."

레온 나글러 경무총장의 초상 사진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자레츠키입니다." "자레츠카 부인이라는 분은 모르지만, 부인이 당신을 떠났다면 그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다만 이런 전화 공갈이 가능한 남자를 떠난 것에는 놀라지 않겠습니다."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한 가지 더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당신의 마지막이 될 겁니다. 제가 당신을 죽일 테니까요."
크시비츠카는 겁에 질렸다. 그러나 공포가 그녀를 마비시키지는 않았다. 그녀는 즉시 나글러 경무총장을 찾아가 무언가 조치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흥미로운 일화 하나뿐이었다. 경찰관은 관대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런 미친 사람들은 해롭지 않습니다." 도청 설치와 범인 검거 요청에는 담담하게 거절했다.

전쟁 전 초상 사진 속 이레나 크시비츠카
"이런 경우엔 별도의 전화선이 필요한데, 그건 특별한 경우에만 설치하는 거라서요..." 그는 아이에게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크시비츠카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건 제 목숨 문제입니다!" 그녀는 외쳤다. 그러나 완전히 허사였다.
외무장관 부인의 이름으로
괴롭힘은 오히려 심해졌다. 낯선 남자는 크시비츠카의 어린 아들을 납치하겠다고 위협했고, 심지어 그녀의 집으로 관(棺)까지 보냈다. 기자는 친척과 지인 모두에게 캐물었고, 마침내 추격자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그는 품위 있는 사립학교의 존경받는 교사였다. 세간에서는 교양 있고 품격 있는 지식인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예절의 가면 아래에는 예측 불능의 미친 사람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행동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사건은 크시비츠카가 자신의 고민을 외무장관 부인 야드비가 베코바(Jadwiga Beckowa)에게 털어놓으면서 비로소 끝을 맺었다. 다음 날 장교 한 명이 그녀의 문을 두드렸다. 팔에는 장미다발과 호화로운 초콜릿 상자를 들고, '각하 부인'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어주었다. 그러나 도청 요청이 다시 나오자 거절했다. 크시비츠카는 이제 아무것도 자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화는 조용해졌다.

수화기를 든 아이, 20세기 초 엽서
기자는 그 추격자가 직장을 지켰고, 사건이 세상 빛을 보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의가 실현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는 마침내 목숨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미친 사람은 대신 다른 희생자를 찾았을까? 정부 각료의 부인과 경찰 수장에게 개입을 요청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을 파탄 내기 시작했을까? 크시비츠카는 이 질문의 답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남자가 하룻밤 사이에 집착을 내려놓았으리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