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그림자, 제3제국
나치는 독일에 어떠한 반항도 용납하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잔혹하게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3제국에서는 공포소설과 범죄소설에서나 볼 법한 흉흉한 범죄자들이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불과 2년 동안 최소 열두 명의 소년을 성폭행하고 살해했습니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그의 악행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1935년 2월 메클렌부르크의 슈베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세일러복 차림의 두 소년이 일주일 사이에 연달아 실종된 것입니다. 이 사태에 경찰과 지역 검찰이 총동원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2년간 북부 독일에서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 여섯 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명백해졌습니다. 이 범죄들의 배후에는 연쇄살인범이 있었다는 사실이요.
'틱톡 삼촌'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이 일련의 살인 사건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답은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섬뜩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견되었고, 시신에는 폭력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망 시기는 모두 가을과 겨울이었습니다. 안일했던 경찰관들은 아이들이 집을 나온 뒤 길을 잃고 숲속에서 잠들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면서 경찰은 광범위한 수색 작전에 착수했습니다.
문제는 무엇보다 범인이 활동한 지역이 매우 넓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분명 출장 등으로 많이 이동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임을 시사했습니다. 경찰은 이런 부류에 초점을 맞추었고, 몇 주 후 한 용의자를 체포했습니다.

비텐베르크는 잔혹한 사건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건이 해결된 듯 보였고, 경찰은 진범을 잡았다고 확신했습니다. 북부 독일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으리라 여겨졌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기에는요.
그러나 용의자는 구치소 감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사이에도 또 다른 소년들이 미스터리한 살인마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3월 23일, 비텐베르크(브란덴부르크) 근교에서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번에는 11세 소년이었습니다. 마침내 수사관들은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습니다. 소년이 실종된 날, 화려한 모자를 쓴 노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를 '틱톡 삼촌(Onkel Ticktack)'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사건은 빠르게 진전되었습니다. 4월 3일, 과거 성범죄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60세의 행상 시계공 아돌프 제펠트가 브란덴부르크의 부체츠(Wutzetz)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즉각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학대를 인정했지만, 동시에 살인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경히 부인했습니다.
단순한 소아성애자였을까, 아니면 살인범이기도 했을까?
아돌프 제펠트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1870년 3월 6일 포츠담에서 아홉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결코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에 종사했습니다. 열두 살 때 두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이것이 이후 그의 타락에 한몫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무 살에 결혼했지만 1년 만에 아내와 헤어졌습니다.

슈베린 교도소.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사진 출처: 박물관 소장품).
4년 후 그는 처음으로 '풍기 문란죄'로 수감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긴 '범죄 경력'의 시작이었고, 그 결과 그는 인생의 거의 절반을 교도소와 정신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왜곡된 관심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모두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아이에게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탈이 결국 그를 단두대로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결말부터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검찰은 '틱톡 삼촌'을 소년 1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재판은 1936년 1월 21일에야 슈베린 법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준비 절차가 길어진 데에는 여러 의문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제펠트는 혐의를 끝내 부인했고, 전문가들은 그가 피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살해했는지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수사관들은 교살당했거나 독극물을 먹인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실시된 부검은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지 않았습니다.
제펠트 본인은 사망 직전 게슈타포 수사관과 단독으로 면담한 뒤 자신이 직접 만든 독약을 사용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진술이 이루어진 상황 자체가 합리적인 의심을 불러일 수 있습니다.

유명세는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재판 종료 약 2년 후에도 제펠트를 다룬 폴란드 언론. '새 목소리(Nowy Głos)', 1937년 12월 21일자.
사건은 너무나 미스터리해서, 제펠트가 소년들을 깊은 최면 상태에 빠뜨린 뒤 숲속에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그의 범행 동기 역시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정은 자비를 보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모든 의문점은 무시되었습니다. 2월 22일, '틱톡 삼촌'은 단두대에 의한 사형을 열두 번 선고받았고, 추가로 형 집행 전 거세형도 선고되었습니다. 형은 1936년 5월 23일 슈베린 교도소에서 집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아돌프 제펠트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두운 비밀들을 고스란히 무덤까지 가져갔습니다. 그의 피해자 명단은 끝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발견된 12명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계공의 성범죄 피해자는 최대 100명, 사망자는 30명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