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레드 반 살인 사건: 살인범의 유해에 얽힌 기이한 운명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재판 과정을 지켜보거나 범죄의 세부 사항을 읽는 것은 섬뜩하지만 매력적인 오락거리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수 세기 동안 대중은 선혈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즐겨 왔다. 특히 19세기에는 가해자의 형 집행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당시 사법 당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대중 오락이 되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레드 반 살인 사건(Red Barn Murder)'이다.

붉은 헛간에서 시작된 비극

가난한 두더지 잡이의 딸 마리아 마튼(Maria Marten)이 부유한 농장주의 아들 윌리엄 코더(William Corder)와 불륜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미 사생아 한 명을 둔 어머니였다. 마리아는 지역에서 미모와 남자들을 홀리는 매력으로 유명한 여인이었다. 불행히도 코더와의 관계는 그녀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의 만남의 장소는 서퍽주 폴스테드(Polstead) 주민들이 '붉은 헛간'이라 부르던 곳창고였다. 이 명칭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착시 현상 때문이다. 해질녘 건물 뒤로 태양이 지면, 마지막 햇살이 건물 전체를 붉은 후광처럼 물들였다. 이 기묘한 광경은 주변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주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서도 이곳을 피했다. 그렇기에 레드 반은 몰래 애정 행각을 벌이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실종된 신부

새 연인과의 사이에서 마리아는 다시 임신했지만, 아이는 출산 직후 요절했다. 이 비극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은 마리아에게 마을을 떠날 것을 제안했고, 두 사람을 법적 처벌에서 구원해 줄 결혼을 약속했다.

19세기 초 잉글랜드에서는 혼외동거가 투옥 사유였다. 코더는 마튼 가족에게 치안판사가 혼외자 출산 혐의로 마리아를 체포할 것이라고 알렸고, 하루빨리 입스위치(Ipswich)로 함께 도피해 합법적으로 결혼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감옥에 가면 너도 간다고, 마리아는 윌리엄에게 상기시켰다.

1827년 5월 18일, 두 사람은 레드 반에서 만나 그곳에서 여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눈길을 돌리기 위해 마리아는 남자 옷을 입었지만, 모자 밑에는 화려한 빗을 숨기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며 섬세한 귀걸이로 치장했다. 이 차림으로 그녀는 가족의 집을 떠나 연인을 만나러 갔다. 그것이 산 채로 그녀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레드 반 살인 사건: 살인범의 유해에 얽힌 기이한 운명

이후 마리아의 소식은 거의 끊겼다. 새 삶에 대한 소박한 근황은 윌리엄이 잠시 들러 전해 줄 때뿐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리아의 친척들은 그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편지를 쓰지 않는 이유는 손에 혹이 생겨 펜을 쥘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변명은 특히 마리아의 계모 앤 마튼(Ann Marten)을 괴롭혔다. 그녀에게 이는 의붓딸에게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또 하나의 신호였다. 실제로 그녀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는데, 악몽 속에서 그녀는 레드 반과 그 안에 묻힌 마리아를 보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우려를 남편 토머스에게 털어놓았고, 토머스는 아내의 꿈이 과장된 상상의 산물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즉시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헛간에서 경악할 광경을 마주했다. 얕은 무덤에 묻힌 '딸의 썩어가는 시신, 목에는 아직도 꽉 조여진 녹색 손수건. 빗과 귀걸이는 썩어가는 내장 사이에서 반짝였고' 팔다리 뼈는 드러나 있었다.

여성은 칼에 찔리고 목졸린 데다 얼굴에 총까지 맞은 것이었다. 당연히 윌리엄 코더가 최우선 용의자가 되었다.

레드 반 살인마

그는 타임즈(The Times) 신문 광고를 통해 만난 새 아내의 친정에서 런던에서 체포되었다. 처음에 그는 마리아 마튼과의 인연을 부인했으나, 이는 그가 포박되어 서퍽주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Bury St Edmunds)로 호송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곧바로 재판이 열렸다.

기자들은 지방 곳곳은 물론 런던에서까지 조사와 법정 공판을 취재하러 몰려왔다. 잔혹하고 추잡한 범죄의 성격은 주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설교자는 레드 반 근처에서 거의 500명의 구경꾼을 모으며, 이미 지역 소문과 민요 속에서 '살인마 코더'로 불리던 코더의 흉악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규탄했다. 방문객들은 암카메라(camera obscura)와 범행을 섬뜩한 디테일로 재현한 각종 즉석 공연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했다.

레드 반 살인 사건: 살인범의 유해에 얽힌 기이한 운명

재판은 1828년 8월 7일 시작되어 놀라운 인파를 모았다. 피고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던 여성들은 근처 집들의 지붕에 올랐다. 성별 때문에 재판 중 법정에 들어설 수 없었지만, 그들은 신분과 계급을 불문하고 모두, 자신들 중 하나를 상대로 저지른 잔혹한 범죄로 남자가 유죄 판결을 받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어 했다.

법원 지붕이 그들의 무게로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여성 출입 금지 조치는 해제되었다. 이후 진행 과정에서 경관들은 난폭한 구경꾼들의 추가 소란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했다.

마침내 판결이 선고되었다. 윌리엄 코더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시신은 해부학적 검사를 위해 해부될 예정이었다. 형 집행은 1828년 8월 11일에 이루어졌다.

윌리엄 코더의 방황하는 유해

사형수의 시신이 교수대에서 겨우 내려오기 무섭게, 형 집행을 지켜본 군중은 밧줄 조각들을 다투어 챙겼다. 크고 작은 유명 범죄와 관련된 기념품을 수집하는 것은 19세기 잉글랜드에서 흔한 관습이었다. 레드 반은 인기 관광 명소가 되었고, 방문객들은 매번 그 일부를 떼어 가져갔기 때문에 건물은 급속히 훼손되었다. 결국 구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철거되고 말았다.

보존된 잔해들은 신발 모양의 비닢통(snuffbox)과 각종 기념품으로 변신했고, 지역 주민, 방문객, 수집가, 심지어 박물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탐내는 '머더빌리아(murderabilia)'가 되었다.

그렇다면 윌리엄 코더의 시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교수형 직후 시신은 몸통을 따라 절개되어 고인의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이후 시신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마음껏 와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는 당시 흔한 관행으로, 잠재적 범죄자들을 겁주기 위한 살인범에 대한 공개적 굴욕의 일부였다.

레드 반 살인 사건: 살인범의 유해에 얽힌 기이한 운명

이 기묘한 전시 이후, 골상학 연구를 위해 여러 개의 사후 마스크(death mask)와 석고 복제품이 제작되었다. 사형수의 옷은 교수형 집행인에게 넘겨졌고, 시신은 서퍽주 병원으로 옮겨져 학생들이 자유롭게 검사하고 거의 분해하다시피 할 수 있었다. 윌리엄의 피부는 최종적으로 레드 반에서 저지른 범죄의 역사를 담은 책의 표지로 사용되었고, 그의 해골은 정성껏 처리되어 오랫동안 과학 교구로 활용되었다. 결국 윌리엄 코더의 뼈는 2004년 친척의 요청으로 화장되었다. 불행히도 이 운명은 사형수의 남아 있는 모든 유해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의 모이스 홀 박물관(Moyse's Hall Museum)을 방문하면 레드 반 살인 사건 전시를 만나게 된다. 전시장에서는 레드 반을 형상화한 채색 도자기 인형, 마리아의 시신을 수색할 때 사용한 등불, 두더지를 잡던 그녀 아버지의 삽, 코더의 권총, 그의 사후 마스크, 건물 판자로 만든 신발 모양 비닢통을 볼 수 있다. 또한 윌리엄의 두피와 귀에서 떼어낸 검게 변한 피부 조각, 그리고 사형수의 피부로 장정된 재판 기록책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