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이 넘는 사람이 피터 니어스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흑마술에 빠져 갓난아기를 죽이고 그 심장을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과연 얼마나 진실이 담겨 있을까요?
역사에는 인명을 경시한 잔혹한 통치자와 무자비한 살인자들이 가득합니다. 일부는 실제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진짜 괴물'로 묘사된 많은 인물들은 실제보다 크게 과장된 경우가 많습니다. 처형자 블라드, 엘리자베트 바토리, 소니 빈을 다룬 소설들이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악명 높은 강도이자 살인범인 피터 니어스(Peter Niers)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아니면 유럽을 오가던 상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전설에 불과했을까요?
격변의 시대에 태어나다
니어스에게 돌려진 죄목 중 절반만이라도 사실이라면, 그는 유럽을 횡행한 역대급 살인범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인물이 된 데에는 그가 살았던 격동의 시대도 한몫했습니다. 16세기 중반 독일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부 유럽을 뒤흔든 거대한 사회적 동요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대륙으로 퍼져 나간 종교개혁의 물결은 봉건적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 대중에게 운명 개선을 위한 투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지역 봉기는 결국 1524년, 남부 독일을 1526년까지 집어삼킨 거대한 농민전쟁으로 번졌습니다. 토마스 뮌처 같은 지역 지도자들이 이끄는 반란 농민 군대는 부유한 지주들의 영지, 수도원, 도시를 습격했습니다. 봉기가 진압된 후, 탄압받은 마을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을 배회하는 강도단에 합류했습니다.
중부 유럽은 강간, 공포, 무정부 상태가 만연한 땅이 되었습니다. 독일만 해도 보존된 기록에 따르면 16세기 말 살인은 전체 범죄의 무려 15%를 차지했습니다.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신성 로마 제국은 온갖 약탈자와 도둑에게 안성맞춤인 환경이었습니다. 곳곳을 떠돌며 활동하는 강도 문제에 지방 당국은 감당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피터 니어스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강도들의 천국
니어스가 범죄의 길에 들어서기 전, 마르틴 슈티어(Martin Stier)라는 이름의 독일 목양업자가 동료들과 함께 거의 50명 규모의 무리를 조직한 바 있습니다. 슈티어 일당은 남프랑스부터 네덜란드까지 이르는 지역에서 22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1572년 처형된 슈티어는 니어스에게 영감을 주었고, 니어스는 1566년경 자신만의 무리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약 20명의 강도로 구성된 이 무리는 알자스 지방의 시골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니어스 일당은 빠르게 세력을 키워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갔습니다. 강도들은 수백 마일을 이동하며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프랑스 서부는 물론 라인란트와 바이에른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이후 일당은 방식을 바꿔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더 작은 표적들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도시에 당당히 들어가 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할 정도로 무법자들이었습니다.

슈티어 일당은 남프랑스부터 네덜란드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22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잔혹한 강도 피터 니어스에 대한 소문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대륙을 여행하던 상인들은 그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행운은 11년 동안 강도들과 함께했습니다. 1577년, 드디어 동료 중 한 명의 밀고로 일당은 붕괴됩니다. 우두머리를 포함한 일당의 상당수가 체포되었고, 니어스는 고문 끝에 75건의 살인을 자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감옥에서 탈출해 필연적이었던 처형을 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강도의 탈옥 소식은 그의 악명을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
악마의 화신
1577년 이후 니어스의 모습은 점점 더 기이하고 황홀한 형태로 변해 갔습니다. 그는 손가락이 휘고 턱에 흉터가 있는 강도로 묘사되었습니다. 늘 많은 돈과 두 자루의 권총, 검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1579년 발부된 체포 영장에서는 그가 "꽤 나이가 든" 인물로 기술되었습니다. 그를 다룬 책들에서는 그가 식인을 했다거나 각종 초자연적 능력을 지녔다는 혐의까지 더해졌습니다.
니어스의 '경력'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사람은 요한 비크(Johann Wick)라는 인물로, 그는 그의 악행을 묘사한 세 종류의 팸플릿을 남겼습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팔스부르 근교에서 강도는 악마와 계약을 맺고 흑마술의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소문에 따르면 니어스는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태아의 가죽과 지방으로 특별한 양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갓난아기의 손발을 잘라내고 심장을 먹었다고 전해지며, 젊은 여성의 가슴을 먹는 것을 즐겼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도피 중에는 통나무, 돌, 야생동물로 변신했다고도 하고, 나병 환자나 병사로 위장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려진 마법 능력조차 재체포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강도의 범죄 인생은 마침내 1581년에 막을 내립니다.
그 삶만큼 잔혹했던 죽음
니어스는 노이마르크트라는 마을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가죽 가방을 현지 여관 주인에게 맡긴 뒤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누가 자신들의 마을을 찾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니어스가 목욕을 즐기는 동안 그의 짐이 열렸고, 그 안에는 어린아이들의 말린 심장과 손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니어스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544건의 살인을 자백했습니다. 희생자 20명 이상은 임산부였다고 전해집니다.

니어스만 16세기 독일의 살인범은 아니었습니다. 크리스트만 게니페르타잉(Christman Genipperteing) 역시 피터와 마찬가지로 차륜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이런 죄악 앞에서 그가 고통 없는 신속한 죽음을 맞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1581년 9월, 군중들은 죄인의 고통을 구경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처음에 그의 몸에서 살가죽이 벗겨지고 상처에 뜨거운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고문 이틀째에는 발에 기름을 바르고 뜨거운 숯불에 구웠습니다. 마침내 고문 사흘째 되는 날, 강도는 바퀴에 묶여 뼈가 부러졌습니다. 처형을 지켜보던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 모든 '조작' 후에도 니어스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악마의 도움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탄과의 계약도 강도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사형 집행인이 그의 사지를 모두 절단하면서 처형을 마무리했습니다.
진실인가, 신화인가
정교한 고문을 당한 사람은 무엇이든 자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500명이 넘는 니어스의 희생자 수는 사실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반면 '피터 니어스'라는 이름의 강도가 실재하여 활동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독일 도시들의 연대기 기록이 그 증거입니다. 다만 그에 관한 이야기의 '악마적' 부분 전체는 당시 사회의 미신에 대한 믿음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16세기 독일은 마녀사냐와 마녀재판의 땅이었습니다. 악마의 영향력은 인간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를 설명하는 가장 좋고도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피터 니어스에 대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이 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피터 니어스는 식인 등의 혐의로 고발되었습니다.
혹은 그의 이야기는 실제로 여러 인물의 전기가 뒤섞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독일에는 앞서 언급한 슈티어 외에도 최소 두 명의 흉흉한 강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크리스트만 게니페르타잉과 페터 슈툼프(Peter Stumpp)입니다. 전자는 니어스보다 많은 무려 964명을 살해한 것으로 전해지며, 두 사람 모두 바퀴에 묶여 최후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슈툼프는 아이를 잡아먹는 늑대인간으로 여겨졌는데, 니어스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악명 높은 강도에 관한 역사의 전체 진실은 우리가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끔찍한 행각에 대한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종교개혁기 유럽 사회의 삶을 뒤흔든 동요의 투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