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부작 드라마 '레드 리버(Kokkino Potami)'가 뜨거운 호평과 시청자들의 사랑 속에 장대한 피날레를 장식하며 막을 내렸다. 하리스 치르키니디스(Haris Tsirkinides)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폰토스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과 연관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스토리 곳곳에 녹여낸 점이 큰 특징이다.
극중 여러 에피소드를 거치며 마지막 회에서 충격적인 흔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메흐메트 카르탈(Mehmet Kartal)'이다. 이 역할은 배우 디미트리스 드로소스(Dimitris Drosos)가 연기했다.
'메흐메트 카르탈'이라는 캐릭터는 터키의 정치인이었던 메흐메트 탈라트(Mehmet Talaat)를 모델로 삼았다. 탈라트는 엔베르 파샤, 제말 파샤와 함께 1908년 젊은 터키인(Young Turks) 운동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부터 1918년 터키가 패전할 때까지 '통일과 진보위원회'의 삼두정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1913년부터 1917년까지 내무장관 직책을 수행했으며, 이후 1917년부터 1918년까지 대재상(Grand Vizier)을 역임했다. 그는 항복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1918년 10월 14일 대재상 자리에서 물러났다.
탈라트는 극심한 잔혹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트라키아와 소아시아 해안, 폰토스 지역에서 그리스계 주민들을 강제 추방하는 계획을 주도하고 실행한 장본인이다. 나아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4년 봄부터 1918년까지 자신의 명령에 따라 자행된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이중 집단학살의 주모자이자 핵심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르메니아 청년의 총에 쓰러지다
구체적으로 탈라트는 1874년, 아직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에디르네(Edirne)에서 하급 오스만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드리아노플의 전신 회사에 근무했으며, 1893년에는 전복 활동 혐의로 체포되는 수난을 겪었다. 2년 뒤 감옥에서 석방된 그는 살로니카 오스만 우체국 서기장으로 임명되었고, 1908년 젊은 터키인 운동에 가장 먼저 가담한 인물 중 하나가 되었으나 그 결과 같은 해 공직에서 파면되었다.
이후 그는 이 운동의 은밀한 핵심 조직인 통일과 진보위원회(CUP)의 멤버가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오스만 제국은 당시 육군장관이던 엔베르 파샤의 의지에 따라 동맹국 진영에 합류했다.
내무장관으로서 탈라트는 주로 아르메니아인과 그리스인 등 소수민족의 강제 이주를 총괄하는 책임을 맡았다. 1917년에는 대재상에 올랐으며, 1918년 10월 14일 항복 직전에 해당 직위에서 사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사실상 확정지은 무드로스 휴전 협정이 렘노스(Lemnos) 섬의 무드로스 만에서 체결된 뒤, 탈라트는 삼두정의 다른 두 지도자였던 엔베르 파샤와 제말 파샤와 함께 독일로 도피했다. 그리고 1921년, 그는 아르메니아 출신 망명객 소곰몬 테흘리리안(Soghomon Tehlirian)의 총에 쓰러지며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