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우크라이나 마이단: 오렌지 혁명에서 유로마이단까지

2004년과 2013~2014년의 두 차례 마이단은 우크라이나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전국으로 번진 시위의 물결은 우크라이나 시민사회를 형성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이단(Maidan)'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 기원은 키이우의 '마이다네잘레즈노스티', 즉 독립광장입니다. 정부의 행보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모여들던 이곳에서 시작된 항의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마이단이 낙인찍혔습니다. 왜일까요? 작가 보리스 아쿠닌(Borys Akunin)의 말처럼 "시위대의 성공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시민이 통치자와 통치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작된 선거에서 시작된 첫 번째 마이단

첫 번째 우크라이나 마이단의 발단은 2004년 11월 2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조작된 결과였습니다. 당시 빅토르 유셴코와 총리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결했으며, 1차 투표에서 유셴코는 39.87%, 야누코비치는 39.32%를 득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마이단: 오렌지 혁명에서 유로마이단까지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블라디미르 푸틴

야누코비치 총리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주민들의 지지를, 유셴코는 중부와 서부 주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패배를 우려한 야누코비치는 11월 21일 2차 투표에서 법을 어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누가 표를 세느냐"는 원칙대로 움직였습니다. 도네츠크 출신 총리는 동부 지역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두고 있었고, 이들은 돈바스 지역에서 거의 90%의 투표율을 '보장'했습니다. 루한스크주에서는 무려 거의 100%에 달했습니다! 각 부대의 현역 군인들과 국립대학 학생들은 야누코비치에게 투표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역사학자 볼로디미르 뱌트로비치(Volodymyr Viatrovych)는 선거 당일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깡패들이 투표소를 습격해 투표용지를 훔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매수된 유권자들을 태운 버스도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차 투표에서 유셴코는 46.61%를 득표해 49.46%를 얻은 야누코비치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유셴코의 지지자들과 외국 관찰단은 이번 선거가 민주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사례가 수없이 많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사 표현이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항의 시위로 이어지다

11월 21일 저녁 예비 개표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하자 키이우 마이단에는 약 3만 명이 모였고, 다음 날에는 이미 1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광장에는 400개의 텐트가 세워졌습니다. 11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대통령 당선을 공식 발표했지만, 곧 체르니우치, 리비우, 지토미르, 빈니차, 수미, 오데사, 자포리자, 하르키우, 헤르손, 흐멜니츠키, 삼보르 등 수많은 도시와 지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선거 결과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중부·서부·북부의 여러 도시로 모여들었고, 오렌지색 깃발과 리본—빅토르 유셴코의 '우리 우크라이나'당의 상징 색이 그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시위는 '오렌지 혁명'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마이단: 오렌지 혁명에서 유로마이단까지

2004년 오렌지 혁명 당시의 빅토르 유셴코

시위대는 150명의 우크라이나 외교관들의 지지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국가원수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한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 역시 비슷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빅토르 유셴코가 디옥신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의 몸에서 검출된 독소 수치는 정상치의 무려 5만 배를 넘었습니다!

시위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2004년 12월 3일 최고재판소는 대통령 선거 무효를 선언했고, 12월 26일 재선거가 실시되어 유셴코가 승리했습니다. 2005년 1월 21일 그의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경제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실망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2010년 옛 라이벌 야누코비치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됩니다.

피의 마이단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몰락과 마이단 시위의 도화선은 2013년 11월 그가 EU 연합협정 서명을 연기한 데 있습니다. 이는 키이우의 젊은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1월 21일, 공동의 유럽 가치를 지지하는 1,500명이 마이단에 모였습니다. 2013~2014년의 이 사건들은 유로마이단(Euromaidan)이라 불렸습니다. 시위대 쪽은 평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1월 29일 밤부터 30일 새벽 사이, 내무장관 발레리 코략(Valeri Koriak)의 명령에 따라 경찰이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을 잔혹하게 공격했습니다. 새벽 4시, 마이단에는 약 100명의 시위대만 남아 있었지만, 특수부대 '베르쿠트' 요원 300명이 광장을 포위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구타와 발길질을 당했고, 8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 17명은 학생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마이단: 오렌지 혁명에서 유로마이단까지

2013년 12월 키이우의 시위

이 만행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 날 독립광장에는 80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는 부정부패, 권력 독재, 러시아화에 대한 그들의 항의 표현이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바로 22년 전인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국민투표에서 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습니다…

마이단의 잔혹한 진압 이후 시민들은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장 극단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위대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경찰은 산탄총 등 각종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리비우의 장인들이 구조에 나서 방탄복 제작에 착수했고, 이 방탄복들은 이후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도시 안의 도시

12월 8일 정오 키이우에서 대규모 행진이 열렸고,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여했습니다. 독립광장에는 일종의 '도시 안의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키이우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음식을 나르며 후원했습니다. 한편 정부는 마이단을 경찰 포위망으로 에워싸고,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시위대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통과시켰습니다. '베르쿠트' 부대의 규모는 5천 명에서 3만 명으로 무려 5배나 늘어났습니다! 우크라이나 헌법도 개정되어 대통령의 권한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탄압은 마이단에 모인 사람들의 결의를 더욱 굳건히 만들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정부군에 의해 피로 진압된 유사한 시위가 다른 여러 도시에서도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 마이단: 오렌지 혁명에서 유로마이단까지

키이우 중심가의 폭동

1월 22일 첫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2월 18일과 19일이 가장 비극적인 날이었습니다. 2월 18일 아침, 마이단 대표단은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베르호브나 라다)로 향해 2004년 헌법 복원 등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민병대와 '베르쿠트'에게 잔혹하게 공격당했습니다. 같은 날 최후통첩이 발령되었습니다. 시위대가 스스로 독립광장을 떠나거나, 아니면 무력으로 축출될 것이라는 통첩이었습니다. 그들이 거부하자 '베르쿠트'는 밤새도록 마이단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장교들은 FSB(러시아 연방보안국) 장군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 장군이 공격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우크라이나 각 지역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07명이 사망하고 약 3천 명이 부상당한 그의 정책은 EU 국가들과 지도자들로부터 비난받았습니다. 2월 21일 신뢰를 잃은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도피했습니다. 시위대는 11월 21일부터 2월 22일까지 총 92일간 마이단에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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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Історія українських майданів - від протестів на граніті до Помаранчевої революції (우크라이나 마이단의 역사 — 그라니트 시위에서 오렌지 혁명까지)
  2. www.istpravda.com.ua
  3. Кабмін прийняв протокольне рішення збільшити чисельність "Грифона" і "Беркута" у шість разів (내각, '그리폰' 및 '베르쿠트' 규모 증원에 대한 의사결정 채택)
  4. moz.gov.ua
  5. unian.net
  6. maidan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