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노르망디에서 폴란드 전차병의 최대 위협은? 독일군이 아닌 연합군 공군이었다

1944년 여름, 스타니스와프 마체크(Stanisław Maczek) 장군 휘하 폴란드 제1기갑사단 병력이 노르망디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후퇴하는 독일 국방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상상조차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가 독일군만은 아니라는 것. 연합군 조종사들은 독일 전차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 조종사들은 지상군 병사들 사이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연합군 진지를 오인 폭격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전선에서는 삼성(三星) 미국 장군조차 이들의 희생자가 되었다! (코브라 작전 중 오인 폭격으로 사망한 레슬리 맥네어 중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폴란드 전차병들은 첫 전투 날, 하늘의 지배자로 불리던 미군의 '정확성'을 뼈저리게 체감해야 했다.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미군 조종사

1944년 8월 8일, 노르망디의 독일군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공세의 두 번째 국면이 시몬즈(Simonds) 장군의 지휘 아래 개시되었다. 이른바 '토탈라이즈 작전'이다. 마체크 장군의 '검은 기병대'로 불린 폴란드 병사들은 제2캐나다군단에 배속되어 작전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노르망디에서 폴란드 전차병의 최대 위협은? 독일군이 아닌 연합군 공군이었다

1944년 8월 8일, 공격 직전의 마체크 장군 휘하 제1기갑사단 병력. 모두가 미군 폭격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 병사들이 전장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기도 전에, 먼저 미군이 독일군 진지를 폭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 오후 1시경, 무려 500대의 B-17 폭격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불행하게도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의 저서 『D-데이: 노르망디 전투』에 따르면, 대형 선두에 있던 폭격기가 독일군 대공포화에 피탄되면서 폭탄을 너무 일찍 투하했고, 뒤따르던 기체들도 그대로 따라 했다. 지상에서는 지옥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놀람이었고, 그다음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공포가 뒤따랐다. 차량이나 트레일러 밑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자는 숨었고, 도랑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도 폭탄은 하나둘씩 떨어지며 연합군 병사들을 부상 입히고 죽여나갔다.

— 카츠페르 슬레진스키(Kacper Śledziński), 『검은 기병대(Czarna Kawaleria)』(Znak Horyzont, 2014)

노르망디에서 폴란드 전차병의 최대 위협은? 독일군이 아닌 연합군 공군이었다

폭격이 시작되자마자 캐나다군과 폴란드군은 자군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황색 연막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원인은 지상군과 공군 간의 끔찍한 소통 부재였다. 미군은 황색 표식을 자신들의 목표물 표시에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 비버의 기록에 따르면 — 무려 315명의 폴란드 및 캐나다 병사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공세 자체도 상당한 추진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조차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참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르망디에서 폴란드 전차병의 최대 위협은? 독일군이 아닌 연합군 공군이었다

노르망디 상공에서 살육의 화물을 투하하는 B-17 플라잉 포트리스. 혹시 연합군 병사들을 폭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테더 경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지

이번에 제2군단 병력의 직접적인 목표는 팔레즈(Falaise)였고, 그 길목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쾨네(Quesnay) 숲이었다. 독일군은 이곳을 진정한 요새로 만들었는데, 그 핵심은 참호에 숨어든 호랑이(Tiger) 전차들이었다. 이에 연합군은 다시 한번 항공 지원을 결정했고, 이번에는 미군 대신 영국 왕립공군(RAF) 폭격기가 투입되었다.

며칠 전의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영국 공군 원수 아서 테더(Arthur Tedder) 경까지 직접 현장을 찾았다. 짐작하셨겠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당시 제10기갑기병여단 부지휘관이었던 프란치셰크 스키빈스키(Franciszek Skibiński)의 회고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거대한 폭격기 편대가 매우 낮은 고도로 북쪽에서 접근해왔다. 병사들은 전차 위에 올라가 열광적으로 베레모를 흔들었다. […] 그러다 폭탄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격 준비를 마친 군단의 전 종심과 전 폭에 걸쳐 수천 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내 인생에서 8월 14일처럼 폭격을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노르망디에서 폴란드 전차병의 최대 위협은? 독일군이 아닌 연합군 공군이었다

1944년 8월 14일, 노르망디의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는 영국 할리팩스 중폭격기. 혹시 폴란드군과 캐나다군을 폭격한 것은 아닐까?

믿기 어렵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황색 신호탄이었다. 『검은 기병대』에서 슬레진스키가 강조하듯, 군단 지휘부가 보낸 보고도, 폭격기 사이를 날며 폭격 중지를 알리는 모기(Mosquito) 정찰기의 신호도 소용이 없었다. 폭격은 모든 항공기가 살상 화물을 다 투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앞서 언급한 테더 경은 폴란드 전차 아래로 몸을 숨겨야 했다. 제2군단 전 병력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캐나다군의 피해가 컸지만, 폴란드군 진영에서도 200명의 병사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수백 대의 차량이 파손되었다. 게다가 노르웨이 전역에서 받은 비르투티 밀리타리(Virtuti Militari) 훈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던 포돌레(Podhale) 부대의 군기마저 불타 없어졌다.

노르망디에서 폴란드 전차병의 최대 위협은? 독일군이 아닌 연합군 공군이었다

영국 공군 원수 아서 테더 경.

앞서 인용한 스키빈스키는 이 일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날 우리 항공력의 활동은 8월 8일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날은 공격이 약화되었을 뿐이지만, 이날에는 공격 개시 자체가 좌절되었으니 말이다."

마체크 장군의 기갑 병력이 상상했던 첫 전투 주간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곧 그들은 전장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얻게 된다. 미군이 더 이상 그들의 머리 위로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