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네(Diné)어, 즉 나바호어는 수많은 전쟁의 언어였습니다. 널리 회자되지는 않지만, 미군의 수많은 승전은 이 언어의 독창성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언어는 '존속하느냐 소멸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은하 규모의 차원까지 확장되었는데... 놀랍게도 다스 베이더가 바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크리스 테일러는 '스타워즈'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애리조나주 윈도 록(Window Rock)에 위치한 나바호 보호구역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조지 제임스(George James) 중사를 만났습니다. 이오지마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암호 통신병, 이른바 '코드 토커(Code Talker)'였습니다.
별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88세 노베테랑과의 만남은 테일러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스타워즈'를 아느냐는 질문에 제임스가 이렇게 답했기 때문입니다. "별들끼리 왜 서로 싸우겠나?"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테일러가 이 부족 근현대사의 전환점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입니다.
태평양 전쟁을 이긴 언어
나바호 인디언의 언어인 디네어는 태평양 전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다른 부족 출신 인디언 암호병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나바호족이 전쟁 무대에 등장한 것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습니다.

인디언 부대와 함께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오른쪽 두 명은 나바호족 출신입니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디네어를 군사 암호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필립 존스턴(Philip Johnston)이 내놓았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엔지니어이자 선교사의 아들로 인디언들 사이에서 자란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존스턴은 부족 대표들과 정부 당국자 간 회담에서 통역을 맡았으며, 미국 측 자료에 따르면 그는 부족 외부에서 디네어를 구사할 줄 아는 단 30명 안에 드는 인물이었습니다.
1942년, 존스턴은 캐나다군이 제1차 세계대전 전선에서 원주민 언어를 활용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진주만 공습 이후 그는 비슷한 목적으로 나바호 인디언을 동원하자는 구상을 로스앤젤레스 해군청에 보고했습니다.
몇 주 후,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존스턴에게 계획을 발표하고 나바호 인디언 최초의 암호병을 선발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들은 캠프 엘리엇(Camp Elliott)에 새로 설립된 특수 시설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첫 훈련생은 29명의 인디언이었습니다. 이 작전 전체는 기밀로 분류되었습니다.

나바호 암호병들이 훈련했던 캠프 엘리엇 폐허의 현재 모습(사진: Philkon/Phil Konstantin, CC BY-SA 3.0).
제임스 중사
조지 제임스는 암호 학교에 입교했을 때 나이가 18세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8주간의 집중 훈련 후, 인디언 암호병들은 코드를 암기한 상태로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암호병 그룹은 1942년 9월 과달카날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나바호 암호병들은 태평양의 거의 모든 공세 작전에 참전했습니다. 며칠 밤을 새운 뒤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를 연달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전송해냈습니다!
나바호식 군사 암호
나바호어에서는 같은 단어도 발음하는 방식에 따라 최대 네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폭격기', '헬리콥터', '잠수함' 같은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군사 목적에 맞춘 약 200개 단어의 목록이 작성되었습니다. 예컨대 '상어'는 구축함을, '은색 떡갈나무 잎'은 중령을, '벌새'는 헬리콥터를 뜻했습니다.

이오지마 공격 당시 나바호 암호병들은 48시간 동안 800개가 넘는 암호 메시지를 오류 없이 전달했습니다. 제임스 중사는 이 성공의 일등공신이었을 뿐 아니라, 분대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하기도 했습니다.
사라져가는 전쟁의 언어
나바호족뿐 아니라 다른 인디언 부족 암호병들의 공로가 전후에 널리 인정받았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2년 '나바호 코드 토커의 날'을 제정했음에도, 디네어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30만 부족민 중 이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절반에 불과하며,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는 4분의 1을 넘지 못합니다.

영웅 나바호의 기억은 이어지지만... 그들의 언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플로리다의 코드 토커 기념비, 사진: Mlpearc, CC BY-SA 3.0).
나바호 원로들은 디네어를 지키는 일을 21세기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여깁니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배웠지만 집에서는 디네어를 쓰던 시절을 회상하며, 오늘날에는 정반대가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2013년, 테일러가 '스타워즈' 현상에 관한 책을 준비하기 위해 윈도 록을 방문했을 때, 지역 활동가들이 지난 3년간 추진해온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이 최초의 영화로서 소멸 위기의 디네어로 번역되는 사업이었습니다.
다스 베이더는 체육 교사였다
나바호족 대표들은 루카스의 영화가 인디언 공동체의 현대적 요구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번역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나바호족은 평등주의가 워낙 강해 '대표'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의 강요로 겨우 대표를 선출했을 정도였죠. 그래서 영화 속 '공주(princess)', '원로원(senate)', '제국(empire)' 같은 단어들은 영어 원본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디네어에는 '공주'를 뜻하는 단어조차 없었습니다... 원더콤 2012에서 레이아로 코스프레한 팬이 R2-D2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사진: Doug Kline/The Conmunity – Pop Culture Geek, CC BY 2.0).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족 '배우' 팀은 단 36시간 만에 사가의 에피소드 4를 완성해냈습니다. 그중에는 다스 베이더 역을 맡은 체육 교사도 있었습니다.
다시 멋진 언어가 되기 위해
인디언들이 스타 사가에서 본 것은 서구 세계가 온갖 굿즈와 광적인 팬덤으로 가려버린 본질, 즉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서사시입니다. 이 모티프는 인디언 문화의 영구적인 정전(正典)에 속합니다.

심지어 유명한 대사 "포스가 함께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은 힘과 모든 부정적인 것들로부터의 보호를 기원하는 나바호 기도문에서 거의 축자 번역한 것입니다. "조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문화 계승의 기회인 동시에, 젊은 세대에게 우리 언어가 멋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라고 부족 관계자들은 설명합니다.
야생 새를 봤는데...
2013년 7월 3일 더운 저녁, 윈도 록에서 열린 디네어판 '스타워즈' 시사회에 조지 루카스 사가 현상을 연구한 크리스 테일러가 조지 제임스와 함께 자리했습니다. 수많은 나바호족이 운집해 숨길 수 없는 열광을 터뜨렸습니다.
클래식한 오프닝이 지나자 제임스 중사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예전에 야생 새들이 서로 싸우는 영화 클립을 본 적이 있지." 짧은 대화 끝에 테일러는 그것이 X윙 전투기를 가리키는 말임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88세의 암호병 노인도 이미 스타워즈를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나바호 인디언 센터의 이름인 윈도 록(Window Rock, 창바위)이 어떤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사진: Ben FrantzDale, CC BY-SA 3.0).
돌아온 디네어
'스타워즈'가 나바호어로 번역된 이후 이 영화는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를 순회 상영했습니다. 번역 프로젝트는 젊은 세대와 원로 할 것 없이 인디언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습니다.
2015년에는 윈도 록에 디네어로 번역된 영화를 지속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이 재개관했습니다. 물론 그 시설은 우주 사가 에피소드 7의 개봉일에 맞춰 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