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음식 대신 콘돔과 사탕이 날아왔다 —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속 독일군의 보급 대란

음식 대신 콘돔과 훈장이… 스탈린그라드 포위망에서 벌어진 독일군 보급의 실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뛰어난 조직력으로 유명했다. 탄약은 제때 전선에 도착했고, 병사들이 굶주리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의 보급 부대는 유례없는 무능함을 드러냈고, 이는 포위된 동료 병사들의 경악과 분노를 자아냈다.

27만 명이 갇힌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1942년 11월 말, 소련군의 대반격으로 독일 제6군과 제4기갑군 소속 제4기갑군단, 그리고 루마니아 제20보병사단과 제1기병사단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당했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상장이 지휘하는 이 부대의 총 병력은 약 27만 명에 달했다. 히틀러는 미리 철수를 허락하지 않았고, 구원 부대가 통로를 열어줄 때까지 루프트바페(공군)의 공중 보급에 모든 것을 걸었다.

포위망 안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의 상황은 절박해져 갔다. 거센 눈보라와 혹한이 병사들을 갉아먹었고, 연료와 탄약은 바닥을 드러냈다. 식량 배급은 계속 줄어들었고, 결국 사료조차 공급되지 못하던 루마니아 기병대의 말 4천 마리가 잡아먹혔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파울루스의 최측근 참모였던 빌헬름 아담은 회고록 『어려운 결정』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12월 15일, 빵 배급은 하루 100g으로 줄어들었다. 하루 두 조각의 빵, 얇은 말고기 수프, 몇 잔의 따뜻한 허브차나 맥아 커피로 병사들은 살아남고 싸워야 했으며, 혹한과 눈보라도 견뎌야 했다.

말고기마저 떨어지자 독일 병사들은 스탈린그라드의 고양이와 쥐를 잡아 먹기 시작했다. 전투용으로 남겨둬야 할 말들이 결국 굶주린 병사들의 식량이 된 것이다.

음식 대신 콘돔과 사탕이 날아왔다 —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속 독일군의 보급 대란

루프트바페의 '공중 다리' 작전

독일군 지휘부는 스탈린그라드 병력의 정상적인 유지를 위해 하루 700톤의 물자가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최소치는 500톤으로, 연료 300톤, 식량과 의약품 140톤, 탄약 30톤이었다. 빵만 해도 하루 약 40톤이 필요했다.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나흘이든, 주일이든, 온 겨울이든" 공중 다리를 유지하겠다고 히틀러에게 장담했다. 그러나 '뚱보 헤르만'은 이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임무라는 사실을 퓌러에게 고할 용기가 없어 보였다. 참모들은 최소 물자 운송에만 융커스 Ju 52 수송기 800대 이상이 필요하다고 계산했지만, 당시 루프트바페가 모든 전선에서 보유한 Ju 52는 겨우 750대였다. 게다가 그 모든 기체가 동시에 정상 가동 상태여야 했다.

결국 제국 곳곳에서 비행기가 긁어모아졌다. 1942년 11월 말까지 독일군이 확보한 Ju 52는 200대에 불과했고, 여기에 하인켈 He 111 폭격기 약 190대와 구식 융커스 Ju 86 두 개 비행대가 합류했다. 이후에는 떠오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늘로 올렸다. 포케불프 Fw 200 콘도르, 신형 하인켈 He 177 폭격기, 심지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시제기 Ju 290까지 스탈린그라드 상공에 등장했다. 비행학교 학원생과 민간 항공사 루프트한자 승무원들까지 조종석에 앉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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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스탈린그라드 — 겨울옷 수송의 황당함

사건은 포위가 완성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11월 중순, 제6군 병사들의 월동 준비를 위해 최고사령부에 겨울옷이 요청되었다. 스탈린그라드 병사들을 위해 국민들에게 모금한 옷가지가 차량 가득 실려 보내졌다. 그러나 병사들이 육군 사령부에 보고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옷가지로 가득 찬 화차를 열자 거의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쓸모 있는 물품들 사이에 수백 점의 여성용 모피 코트, 손난로용 퍼머플, 카라쿨 덮개 등 값비싼 모피 제품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국민들이 기증한 옷은 아무런 선별도 없이 그대로 실려 보내진 것이 분명했다. 군대가 알아서 처분하라는 뜻이었으리라. (빌헬름 아담, 오토 륄레 『어려운 결정』)

콘돔과 마조람

포위망이 닫힌 후에는 공중으로 실려온 물자 1kg 1kg이 독일군에게 생사를 가르는 무게였다. 그럼에도 비행 승무원들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귀중한 적재량이 무분별하게 선택되는 일이 벌어졌다. 빌헬름 아담은 예상했던 식량이나 의약품 대신 철십자장, 기사십자장, 독일십자장이 든 큰 상자 여러 개가 포위망으로 보내졌을 때 파울루스와 참모부가 느낀 분노를 기록했다. 크로아티아 포병연대가 단 하나뿐인데도 크로아티아 훈장 두 상자가 배달되기도 했다.

음식 대신 콘돔과 사탕이 날아왔다 —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속 독일군의 보급 대란

특정 수송 물자는 병사들의 분노를 극도로 자극했다. 아담은 제6군 수석 보급장교 베르너 폰 쿠노프스키 소령의 발언을 인용한다.

더 황당한 사례를 몇 가지 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마지막 비행편으로 실려온 것은 남성용 피임용품이 든 상자 한 다스, 사탕 5톤, 마조람과 후추 4톤, 선전용 팸플릿 20만 부였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 관료들이 포위망 안에서 단 일주일만이라도 지내본다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포위망으로 향하는 물자 조직에는 아무런 통제도 없었고, 비행기에는 무엇이든 실리는 듯했다. 다른 수송편에는 옥상 방수재나 철조망이 실려 오기도 했다. 한편 스탈린그라드에 절실한 밀가루와 버터로는 로스토프의 독일군 창고가 터질 지경이었다.

참혹한 공수작전의 결과

포위망에 갇힌 병사들을 구하려던 독일 조종사들의 헌신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목적지는 대형 수송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활주로를 갖춘 피톰니크 비행장이었다. 첫 보급 비행은 11월 25일에 이루어져 75톤의 물자가 전달되었다. 그러나 날씨가 악화되면서 임무는 갈수록 위험해졌다. 영하 30도의 눈보라 속에서 지상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가장 숙련된 승무원만이 이륙할 수 있었다. 사고도 잇따랐다.

음식 대신 콘돔과 사탕이 날아왔다 —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속 독일군의 보급 대란

소련 전투기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공중과 지상에서 격추·파괴된 독일기라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소련군은 포위망 주변에 대공포 1,100문을 배치하고 야간 사격용 탐조등과 방어 기구(풍선)까지 동원했다. 낮에는 Il-2 공격기가 피톰니크를 폭격했고, 밤에는 '쿠쿠루즈니크'라 불리는 Po-2 복엽기가 공항을 괴롭혔다.

최고 기록을 세운 1942년 12월 7일에도 포위망에 전달된 물자는 282톤에 불과했다. 설정된 최소치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그 최소치조차 끝내 달성되지 못했다. 날씨 때문에 보급기가 아예 이륙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독일기가 스탈린그라드 상공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1943년 2월 2일 저녁이었다. 이미 착륙할 곳이 없어 낙하산으로 물자를 투하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날 소련군은 포위망 안 독일군의 마지막 저항을 진압했다.

스탈린그라드 상공 작전에서 루프트바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독일군은 수송기 총 487대를 잃었으며, 이 중 211대는 사고로 인한 것이었다. 승무원 1,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콘돔 수 톤, 향신료, 훈장, 선전 인쇄물을 전달하기 위해 치러진 끔찍한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