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치기, 16대에 걸친 가문 증명, 그리고 갈리선에서의 강제 복무까지. 기사단에는 아무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요건은 정말 독특하기까지 했죠.
주요 기사단들의 뿌리는 십자군 전쟁 시기의 예루살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 전역의 기독교인들은 그 이전부터 성지 순례를 다녔고, 제1차 십자군 원정(1096~1099)으로 성도를 탈환한 뒤에는 순례자의 물결이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무슬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중동행 여정이 쉬워지거나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적 열정이 끓던 이 땅에서 여행자들은 지독한 시련을 겪곤 했습니다.
베르트랑 갈리마르 플라비니(Bertrand Galimard Flavigny)는 저서 『요안니테스: 몰타 기사단의 역사』에서 큰길과 흙길을 배회하며 순례자를 노리는 현지 도적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순례자들은 도적들에게는 놓치기 아까운 먹잇감이었죠. 게다가 병든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필요하다면 치료까지 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임무를 수행한 것이 바로 기사단원들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사라센과 끊임없이 싸웠고,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중동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사단은 인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누구나 입단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템플 기사단은 시간이 지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문장으로는 '한 마리 말을 함께 타는 두 기사'를 채택했습니다. 이는 청빈함을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온갖 방랑자, 모험가, 수도원에서 도망친 수녀, 위험한 범죄자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모두 참회와 구원을 찾는다는 핑계를 내걸었지만, 실상은 고향에서의 처벌이나 곤경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난잡한 속에서 걸맞은 후보자를 걸러내야만 했습니다.
먼저 가문을 확인했다
베르트랑 갈리마르 플라비니에 따르면, 호스피탈러 기사단에 가입하려는 후보자는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이는 주로 귀족 신분으로 입증되었으며, 후보자의 가문이 이를 확인해 주어야 했습니다. 1270년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었습니다.
"후보자는 이름과 문장으로 확실한 귀족 가문 출신임을 논박할 수 없는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독일 출신 지원자들은 조상을 무려 16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증명해야 했습니다.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나았는데, 프랑스 기사들은 8대 계보만 갖추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증인 진술과 증거 제출이 포함된 실제 재판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다음은 의지를 꺾었다
후보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된 것은 절대적인 복종이었습니다. 템플 기사단에는 철의 규율이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푸트코프스키(Edward Putkowski)는 저서 『수도복을 입은 기사들』에서 연회와 술자리에 익숙했던 엉망진창의 봉건 영주들을 강력하고 효율적인 군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 조건이었다고 강조합니다. 많은 후보자들은 장난기가 많았고, 부모의 지위와 재산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없어 좌절한 차남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규율에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의지를 꺾어야 했습니다. 형제들은 후보자들에게 돼지 치기나 제분소에서 곡식 가루 빻기 같은 기사답지 않은 일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를 실현했습니다. 불복종 행위 하나하나는 매질, 감금, 강제 단식 등으로 엄하게 처벌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기사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투에서 시험받았다
기사단원들은 무엇보다 검을 들어 기독교 신앙을 수호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수도사들이 지키던 엄격한 금식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전투에서 검을 휘두르고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갑옷을 입고 버티려면 기사는 든든하게 먹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크레 공성전'. 호스피탈러 기사단장 마티외 드 클레르몽이 성벽을 방어하고 있다.
요안니테스(호스피탈러 기사단)는 특히 해상 복무를 할 후보자들을 꼼꼼히 살폈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의 멸망 이후 기사들은 말에서 배로 옮겨갔기 때문에, 심한 뱃멀미를 앓는 기사는 전투에서 기사단의 전력이 될 수 없었습니다. 환자 돌보기(호스피탈러 기사단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 외에도 후보자들은 배 위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베르트랑 갈리마르 플라비니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몰타에서 대수도원장 마르틴 가르세스(1595~1601)는 모든 기사가 '네 번의 카라반', 즉 기사단이 보유한 일곱 갈리선 중 한 척에서 4년 연속으로 네 번 승선하는 의무 복무를 이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드디어 서원에 이르다
형제들이 후보자가 이 무장 수도회에 합류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면, 이제 서원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 젊은이는 새로운 사람으로서 규율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해야 했습니다. 미사를 듣고 성체를 영접한 뒤에야 비로소 맹세를 했습니다.
기사단에 입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도 사제가 될 필요는 없었지만, 많은 수도 생활 지망생처럼 청빈, 순명, 정결을 서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사단원들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약속해야 했습니다. 바로 신앙을 끝까지 수호하겠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사라센, 즉 당시 모든 무슬림을 통칭하던 이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는 일이 된다 해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