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세입자를 죽인 하숙집. 아편으로 희생자를 마취시킨 뒤 묶어 도시의 우물에 던져 넣은 무자비한 살인 조직. 그리고 20년에 걸쳐 무려 400명까지 살해한 여인. 이들 중 과연 누가 진짜 '연쇄살인범'일까?
법이 부도덕과 비행을 막으려다 오히려 범죄의 악순환만 부추기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1830년대까지 영국에서는 사형이 선고된 살인범을 제외하고는 어떤 시신에 대해서도 해부를 엄격히 금지했다. 그 결과 의료계는 새로운 의사를 양성하고, 연구와 해부학적 발견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시신이 항상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호소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차별 대우에 분노했고(다른 나라에서는 주인을 찾을 사람 없는 익명의 시신은 자유롭게 해부할 수 있었다!), 은밀한 방법, 심지어 범죄적인 수단에까지 손을 뻗게 되었다. 산지브 K. 고시(Sanjib K. Ghosh)는 Human Cadaveric Dissection: A Historical Account에서 "무덤 도굴, 납치, 심지어 해부 소재를 위한 살인 사건이 놀라울 정도로 빈번해졌다"고 강조한다.

에든버러에 있는 윌리엄 버크의 하숙집.
기다림을 거부한 시체 상품화자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에든버러에 정착한 두 명의 민첩한 아일랜드인이 범행을 시작했다. 1828년, 윌리엄 버크(William Burke)와 윌리엄 헤어(William Hare)는 남녀 열여섯 명을 살해한 뒤 그 유해를 당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해부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녹스(Robert Knox)에게 팔아넘겼다. 녹스는 하루에 두 번씩 부검을 집도했고, 매번 무려 400명의 의대생과 구경꾼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신을 필요로 했다.
하숙집 주인이었던 윌리엄 헤어의 일련의 살인은 병으로 쇠약해진 세입자 한 명에서 시작되었고, 친구 윌리엄 버크가 이에 가담했다. 두 사람은 희생자를 술에 만취시킨 뒤,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의식이 혼미해졌을 때 교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언론은 이 수법을 범인의 이름을 따 '버킹(burking)'이라 불렀다. 살인범들이 검거된 것은 10개월 후였는데, 계기는 우연히 발견된 버크의 세입자들이었다.

분위기 좋은 배경의 전간기 범죄 미스터리. G.K. 체스턴의 『브라운 신부의 순결』(프론다, 2017)을 추천한다.
버크는 사형을 선고받아 1829년 1월 28일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에 기증되었다. 시신은 해부되었으며, 버크의 골격은 오늘날까지 에든버러 의과대학 해부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언론은 살인범의 처참한 최후를 앞다투어 보도했지만, 아일랜드인 두 사람의 뒤를 이을 범죄자들을 막지는 못했다. '버킹'은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영국의 심장부인 런던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핏빛 행보를 이은 추종자들
런던에서는 '런던 버커스(London Burkers)'라 불리는 갱단이 활개를 쳤다. 이 이름 역시 가장 악명 높은 시체 공급자들에게서 따온 것이었다. 버커스 갱단은 노숙자이고 야위고 있는 희생자들에게 숙소를 내어주겠다고 꾀어낸 뒤, 럼주와 아편 팅크로 혼절시켰다. 반쯤 의식을 잃은 불쌍한 이들은 밧줄로 묶여 우물에 던져져 익사했다.
확인된 희생자는 최소 세 명이었다. 갱단의 두목 존 비숍(John Bishop)과 토머스 윌리엄스(Thomas Williams)는 1831년 12월 5일 교수형에 처해졌고, 3만 명의 런던 시민이 그 처형을 지켜보았다. 같은 날 두 사람의 시신은 윈드밀 스트리트의 이른바 '해부 극장(Anatomy Theatre)'을 운영하던 외과의들에게 인도되었다. 복수를 갈망하던 군중들이 더욱 만족할 수 있도록 말이다.

런던 버커스. 19세기 석판화에 담긴 갱단 멤버 셋.
아이들에게 '새 어머니'가 되어준 여자
에든버러의 최초의 버커들과 그 모든 추종자들이 거둔 '전과'는 아멜리아 다이어(Amelia Dyer)의 범죄 행적 앞에서는 옅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녀는 이른바 '천사 제조업자(angel maker)' 중 한 명이었다. 원치 않는 아이를 입양해 키워주겠다며 받아낸 뒤, 아이가 되도록 빨리 죽도록 조치하는 여자들이었다(자세한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다룬 바 있다). 계산이 덜한 업자들은 아이들을 굶기고 방치하는 데 그쳤다. 아멜리아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점차 무관심과 가학을 넘어 살인으로 나아갔다.
브리스틀에 거주하던 다이어는 신문에 광고를 내며 어떤 아이든 10파운드면 입양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혼외 임신의 수치를 안고 있는 여인들의 부담을 덜어주고했다. 그리고는 아기들을 흰 리본으로 목을 졸라 죽인 뒤, 시신을 갈색 포장지에 감싸 템스강에 던져 넣었다.
그녀는 활동을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식으로 20년 동안 범행을 이어갔다. 마침내 붙잡혔을 때 그녀는 단 한 건의 살인만을 자백했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증언, 아이를 맡겼던 어머니들의 문의 기록, 다이어의 집에서 발견된 흔적들은 훨씬 방대한 희생자 수를 가리켰다.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이 범죄자는 1896년 6월 1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언론이 상상으로 그려낸 윌리엄 버크의 살인 장면.
범죄의 본질을 가리다
브리스틀의 이 범죄자를 다룬 글의 저자들은 흔히 그녀를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중 한 명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심리학과 범죄학 전문가들은 아멜리아 다이어가 과연 연쇄살인범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윌리엄 버크, 윌리엄 헤어, 존 비숍, 토머스 윌리엄스의 행위를 분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프랑스의 근대사 교수 필립 샤세뉴(Philippe Chassaigne)에 따르면, 이 용어는 다음 세 가지 조건 중 적어도 하나를 충족하는 범죄자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
- 오직 한 유형의 희생자에게만 집착한다.
- 범행에 성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 범행에 가학적 의식이 수반된다.
이 기준은 병적 욕망을 채우고 억누를 수 없는 집착을 발산하기 위해 살인하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에게 잘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불쾌한 흥분이 아니라 순수한 이익을 위해 살인한 범죄자들은 어떠한가? 네덜란드의 범죄학사 교수 피터르 스피레른뷔르흐(Pieter Spierenburg)는 이런 타락자들을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다중 살인범(multiple murderer)'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명명법을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연쇄살인범은 놀랍게도 단 한 명뿐이다. 바로 런던 화이트채플의 악명 높은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였다.
빅토리아 시대 범죄 실화의 백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