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바그너 그룹의 실체: 크렘린과 연결된 러시아의 사설 군대

세계에는 수많은 '사설 군대'가 존재하지만, 바그너 그룹만큼 악명 높은 조직은 드뭅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의 활동과 크렘린과의 연고 덕분에 이들은 효율적이고 잔혹한 용병 집단으로 그려지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이미지는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까요? 그리고 바그너 그룹은 정확히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핵심 인물들: 네오나치와… 요리사

바그너 그룹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애초에 그런 '직책'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조직 이름의 유래를 추적하면 소위 창립자로 알려진 인물에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스베르들로프스크주 아스베스트 출신의 드미트리 우트킨(Dmitry Utkin)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석면(아스베스트) 채굴 도시라는 이름의 연상도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바그너'였을까요?

놀라실 수도 있지만, 이 러시아인은 네오나치였습니다. 몸에 친위대(SS) 문양 문신을 새겼고, 2020년 촬영된 사진 한 장에서는 독일 국방군 모자를 쓰고 아무렇지 않게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군 중령으로 예편했으며, 2016년에는 전역 후 무공을 기려 용감훈장(Order of Bravery)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역사의 장면입니다. 계속해서 말하자면, 우트킨의 우상이었던 히틀러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사랑했고, 조직 이름도 거기서 따온 것입니다.

드미트리 '바그너' 우트킨은 군 경력을 선택했습니다. 양차 체첸 전쟁에 모두 참전했고, 유명한 정보기관인 GRU(러시아군 정보총국)에서 근무했습니다. 2013년에는 에스토니아 국경 인근 페초라에 주둔하던 제2독립특수여단의 지휘관을 맡기도 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그는 약혼녀에게 아무 말 없이 떠나 사설 군사기업들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2014년 크림반도와 돈바스에서 용병 지휘관으로 나타났고, 이 때문에 미국의 제재 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바그너 그룹의 실체: 크렘린과 연결된 러시아의 사설 군대

블라디미르 푸틴(왼쪽)과 예브게니 프리고진(오른쪽)

그렇다면 이 조직의 '재정 담당'은 누구였을까요? 가장 유력한 인물은 1961년생 올리가르흐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연결된 인물 중 하나죠.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NBC 기자가 푸틴에게 프리고진에 대해 묻자, 푸친은 그가 자신의 친구 목록에 들지 않는다며 단지 '사실 확인'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프리고진은 흔히 '푸틴의 요리사', 즉 전속 셰프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크렘린에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러시아군에 식량을 공급해 왔습니다. 1990년대 초 사업을 시작한 그는 처음에는 평범한 핫도그를 팔다가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영역을 넓혀 체인까지 설립했고, 이후 상류층을 겨냥한 레스토랑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과의 연계를 주된 이유로 프리고진 역시 미국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는 러시아 국방부와도 거래를 합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기지 건설에도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미 연방 검찰이 2016년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한 13인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또한 러시아 인터넷 롤러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nternet Research Agency)'의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바그너 그룹의 뿌리

이 조직의 뿌리는 벨리즈에 등록되어 전직 러시아 군인들을 고용하던 모란 시큐리티 그룹(Moran Security Group, MSG)에서 찾아야 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무렵 MSG의 회원들은 해적으로부터 선박을 빼앗아 되찾는 작전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선박 호위 업무 등을 맡았습니다.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는 쿠르드 지역과 바그다드 사이의 화물·자금 수송 경호를 담당했습니다. 러시아 사업가들의 의뢰를 받아 이라크에 설치된 유정들을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MSG 자체는 카르발라–바스라 구간 송유관 부설 사업에도 참여했으며, 일부 VIP 인사들의 경호 업무도 수행했습니다.

일종의 토대로서 MSG는 훗날 바그너 그룹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홍콩에 슬라빅 코프(Slavic Corps Limited)가 등록되었고, 여기에는 체첸, 아프가니스탄, 코카서스 전쟁에 참전했던 러시아 군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슬라빅 코프 설립의 명분은 MSG의 시리아 진입이었는데, 모회사는 자기 이름을 걸고 그곳에서 활동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푸틴의 고문이었던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가 MSG의 시리아 개입에 일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편에 서야 한다고 믿었지만, 공식적이 아닌 비공식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그너 그룹의 실체: 크렘린과 연결된 러시아의 사설 군대

바그너 그룹 로고

슬라빅 코프는 시리아 내 러시아의 이익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휘 책임은 MSG의 주주인 바딤 구세프와 예브게니 시도르가 맡았습니다. 2013년, 부대원 267명이 라타키아에 상륙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유전 시설 보호가 임무였지만, 실제로는 정규 전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깁니다. 부대는 홈스 주에서 이슬람국가(ISIS)의 성공적인 공격을 받았고, 입수된 러시아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러시아는 꽤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슬라빅 코프는 전세기를 통해 러시아로 철수했고, 상륙 직후 전원이 일시 구금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조직의 운영이 공식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두 지휘관만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바그너 그룹의 창설과 활동

이 틈새를 메운 것이 드미트리 우트킨이었습니다. 그의 PMC 바그너(PMC = Private Military Company, 사설군사기업)는 러시아 특수부대 및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2013년 또는 2014년경 설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조직의 활동과 러시아를 위한 그들의 일은 특유의 용어로 불립니다. 바로 '비공개 존재(ichthones)'입니다. 특정 지점에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4년부터 바그너 그룹은 이런 방식으로 크림반도에 '(비)공식 존재'했고, 이후 루간스크와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의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Il-76 수송기 격추의 배후에도 이 그룹이 있었으며, 루간스크 공항 강습 작전에도 참여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작전 이후 바그너 그룹은 시리아로 향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모집된 용병들의 계약서에는 지질학 또는 유전 관련 업무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적어도 초기에는 슬라빅 코프보다 훨씬 잘 준비된 상태였습니다. T-90, T-72 전차를 포함한 주로 러시아제 군용 장비를 갖추었고, 그들의 작전은 러시아 공군과 협조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2016년경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리아제 장비로 교체해야 했습니다. 이후 몇 년 전 슬라빅 코프처럼 패배를 맛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더욱 고통스럽고 파격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바그너 그룹의 실체: 크렘린과 연결된 러시아의 사설 군대

2018년 2월 7일, 하샴 전투 직전의 상황

2018년 2월 7일, 전투가 시작되기 전 프리고진은 시리아 당국자들(회수된 유전 지분 25%를 제안했다고 함)과 크렘린 대표들 모두와 공격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표적은 시리아 반군 기지였으나, 그곳에는 쿠르드족 훈련을 담당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 병력도 있었습니다. 공격은 너무 무모하게 감행되어, 바그너 용병들과 함께한 시리아군은 어떤 대공 지원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호출된 미군 항공기와 헬리콥터, 주로 아파치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습니다. 출처에 따라 이 전투에서 20~30명에서 최대 100명에 이르는 러시아 용병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바그너 그룹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RCA)과의 협약에 따라 현지 군대를 훈련시키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수의 일환으로 다이아몬드와 금광의 개발권을 얻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것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2018년 7월 30일, RCA에서 바그너 그룹의 개입을 취재하던 러시아 언론인 3명이 공격으로 살해된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바그너 그룹은 수단, 말리, 모잠비크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그너 그룹의 실체: 크렘린과 연결된 러시아의 사설 군대

RCA에서 바그너 그룹은 주로 러시아제 군용 장비를 사용했습니다

바그너 그룹은 세월이 흐르며 하나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전설이 정당한 것일까요? 그들의 활동 사례를 보면 정예 상대와의 교전에서 그들의 실효성은 많이 부족함을 드러냅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내용보다 형식의 우위, 즉 과장된 신화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