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발전은 다른 수많은 통신 수단과 마찬가지로 단 한 사람의 평생 안에 쏙 들어옵니다. 이 타임라인은 네모 노울린크(NEMO Kennislink) 방문자 세스 덴 후트(93세)의 삶을 따라가며, 통신과 정보 처리 수단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인터넷은 만능 해결책입니다"
"저는 줌(Zoom)으로 손주들과 이야기하고, 왓츠앱을 쓰고, 신문도 온라인으로 읽고, 은행 업무도 디지털로 처리합니다. 인터넷은 만능 해결책이죠."라고 1927년생 세스 덴 후트는 말합니다. 그가 시대의 흐름에 충실히 발맞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태어난 시절, 누구도 거의 한 세기가 지난 후 인터넷을 통해 친구, 가족, 심지어 낯선 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컴퓨터는 덴 후트가 십 대였던 1940년대에 발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회문화 활동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직접 컴퓨터와 마주하게 된 것은 30여 년이 지난 1970년대 말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30년이 지나자, 그의 손에는 인간 크기의 초창기 '계산 기계'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앞선 휴대폰이 들려 있었습니다. 덴 후트는 이제 "세상을 손안에 쥐고 있다"고 말합니다.
타임라인: 1927년부터 미래까지
아래 타임라인을 따라 세스 덴 후트의 탄생 이후 통신과 컴퓨터 분야의 발전을 함께 살펴보세요.
1927년 (세스 0세)
세스 덴 후트가 태어났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 깔린 전화선의 총 길이는 약 34만 킬로미터에 달했습니다(출처: CBS).
1930년 (세스 3세)
네덜란드 통계청(CBS)이 인구 조사 데이터 등을 처리하기 위해 처음으로 펀치 카드를 도입합니다. 펀치 카드를 사용하는 기계는 서류 양식을 일일이 다루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었죠. 이 무렵 네덜란드에는 30만 대가 넘는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출처: CBS).
1930년대 (세스 3~13세)
세스 덴 후트: "그 시절 사람들은 주로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전화는 엘리트, 회사, 의사들의 전유물이었죠. 우리는 모퉁이 잡화점에나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지인에게 '불행한 소식'을 전할 때는 전보를 사용했고요. 편지는 매일 오지 않았고,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1940년대 (세스 13~23세)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 최초의 컴퓨터들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컴퓨터에 비하면 부피도 크고 속도도 느렸으며, 주로 어뢰 항로와 미사일 궤적 계산, 암호문 해독 같은 군사 목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1945년 (세스 18세)
세스 덴 후트: "해방 후에야 처음으로 라디오를 들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일요일 따뜻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시사 프로그램 '힐터만(Hiltermann)'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뒤로 새로운 철도 노선과 시간표 소식이 이어지곤 했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위해서도 전화를 더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세스 23~33세)
엔지니어들이 네덜란드의 대형 방재 사업인 델타 공사(Delta Works)의 구조물 계산에 컴퓨터를 활용합니다.
1953년 (세스 26세)
1953년 네덜란드 국영기업 PTT가 렌즈 계산을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의 계산을 위해 계산기를 도입합니다. 이 기기는 복잡한 일련의 계산을 완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었고, 최대 2,048자리까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1959년 (세스 32세)
1959년 세스 덴 후트는 지역사회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덴 후트: "지역사회 활동가로서 처음으로 전화 없이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세스 33~43세)
1960년대, 첫 세대 팩스 기계가 등장합니다. 전화선을 통해 문서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세스 덴 후트는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1950~60년대에는 가끔 특급 우편 배달을 이용했습니다. 저녁에 기차 차장에게 직접 건넨 편지가 다음 날 아침이면 상대방 사무실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일반 우편이라면 훨씬 오래 걸렸겠죠."
1970년대 (세스 43~53세)
1970년대,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취미로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DIY 키트로 컴퓨터를 조립했죠. 또한 최초의 대규모 컴퓨터 네트워크인 아파넷(ARPANET)이 여러 미국 대학들을 연결합니다. 세스 덴 후트: "이동 중인 사람에게 연락하려면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했습니다. 한 주의 시작에 아내와 사무실에 어디서 나에게 연락할 수 있는지 적어 둔 목록을 남겼습니다."
1978년 (세스 51세)
세스 덴 후트: "우리 사무실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였고, 비서들은 특별 교육을 받았습니다. 회의록이나 업무 상담원의 메모를 작성하는 데 활용했죠. 인쇄도 가능해지면서 점차 등사기, 즉 복사기의 전신 격인 기계가 불필요해졌습니다."
1980년대 (세스 53~63세)
1980년대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이른바 '카폰(car phone) 네트워크'가 가동됩니다. 이제 이동 중에도 전화를 걸 수 있게 된 것이죠. 첫 번째 네트워크의 가입자 용량은 2,500명이었습니다. 세스 덴 후트: "직장에는 컴퓨터가 있었지만 종이 서류를 보관하는 파일 캐비닛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안에서 안경을 자주 잃어버리곤 했죠. 우리는 펀치 카드, 테이프, 마이크로필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받아쓰기 녹음기를 사용했지만, 비서가 받아쓰기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몹시 싫어해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세스 63~73세)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 '탄생'합니다.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규약으로, 이것이 결국 인터넷 대중화의 돌파구가 됩니다. 세스 덴 후트: "1993년에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중고 컴퓨터를 샀습니다. 전화선으로 접속해야 했죠. 아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메일로 네덜란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었습니다. 손주들과 인도네시아로 걸던 비싼 국제전화 요금도 크게 아꼈습니다."
1997년 (세스 70세)
델타 공사의 마지막 조각인 마슬란트 방조제(Maeslantkering)가 완공됩니다. 예측 수위를 기반으로 컴퓨터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방조제를 폐쇄합니다.
2001년 (세스 74세)
2001년 위키백과(Wikipedia)가 설립됩니다. 사용자들이 스스로 내용을 작성하는 백과사전입니다.
2004년 (세스 77세)
2004년 페이스북(Facebook)이 설립됩니다. 이후 소셜 네트워크는 인터넷에 점점 더 큰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2007년 (세스 80세)
2007년 아이폰(iPhone)이 소비자 시장에 출시됩니다. 화면 조작만으로 거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스마트폰 중 하나로, 현재 거의 모든 휴대폰이 이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2010년 (세스 83세)
세스 덴 후트: "2010년경에 첫 휴대폰을 샀습니다. 처음에는 비판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늦은 편이었죠. 사람들이 휴대폰에 삶에서 지나치게 중요한 자리를 내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이 기기는 내 호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다른 기기들의 역할을 대신해 주니까요."
2013년 (세스 86세)
2013년 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정보기관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대규모 불법 데이터를 수집하는지 폭로합니다.
2016년 (세스 89세)
2016년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유럽 규정인 GDPR(일반 개인정보 보호법)이 시행됩니다. 이때부터 기업들은 고객 데이터로 무엇을 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하며, 고객 역시 '잊혀질 권리'를 갖게 됩니다.
2020년 (세스 93세)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은 화상 회의와 온라인 대면 대화 같은 만남의 급증을 가져옵니다. 일부 통신사에 따르면 데이터 사용량이 한 번에 약 15~20% 늘었습니다. 이제 93세가 된 세스 덴 후트는 디지털 시대를 두 팔 벌려 맞이했습니다: "저는 줌으로 손주들과 이야기하고, 왓츠앱을 쓰고, 신문도 온라인으로 읽고, 은행 업무도 디지털로 처리합니다. 인터넷은 만능 해결책입니다."
2030년? (그리고 미래)
10년 후 우리는 홀로그램으로 온라인 소통을 하게 될까요? 델프트 공과대학교(TU Delft)와 CWI의 연구진이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활발히 연구 중입니다. 네모 노울린크는 파블로 세사르(Pablo Cesar)의 연구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