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해안에는 두 척의 노후한 네덜란드 포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Hr.Ms. 숨바(Sumba)와 Hr.Ms. 플로레스(Flores)는 이날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지원한 자매함으로, 세계 각지의 바다에서 다재다능하게 활약하고 승조원들의 과감한 기질로 인해 '테리블 트윈스(The Terrible Twins, 무쌍한 쌍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D-데이 참전
1944년 6월 1일, 테리블 트윈스는 노르망디 침공인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의 해군 부문인 넵튠 작전(Operation Neptune) 참전 지시를 받았다. 플로레스호는 영국군 상륙 해변인 아롱망슈 근처 골드 비치(Gold Beach) 앞바다에서 작전에 투입되었고, 숨바호는 포앙트 뒤 오크(Pointe du Hoc) 인근 미군 상륙 해변 유타 비치(Utah Beach)를 위한 미군 기동부대에 합류했다.
D-데이 전날 저녁, 네덜란드 자매함들은 상륙 함대와 함께 프랑스로 항해했고, 6월 6일 새벽 6시 15분부터 독일군 방어선에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단 몇 분 만에 한 차례 포격당 12~18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진벌레 같은 소음이었습니다. 뒤에는 전함이, 앞에는 중순양함이 불을 뿜었고 물론 우리도 6인치 함포를 발사했습니다. 때로는 함포 사격의 강한 반동 때문에 배가 해안에서 밀려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라고 숨바호 승조원은 나중에 회고했다.
예비 포격 이후에도 테리블 트윈스는 하루 종일 꾸준히 화력 지원을 제공했다. 저녁 무렵에는 탄약 재고의 절반만 남았다. 이로써 유럽 해안을 따라 5,000km가 넘게 이어지며 무적이라 선언됐던 독일의 방어선, 대서양 장벽(Atlantic Wall)에 구멍을 내겠다는 열망이 마침내 실현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사령관들과 승조원들이 수년간 보여준 공세적인 정신과 맞닿아 있었으며, 긴 해상 경력을 지닌 두 배 모두에게 값진 하이라이트였다.
'낡은 나막신'
1944년 6월 당시 테리블 트윈스는 18년의 현역 생활을 지낸 베테랑이었다. 네덜란드 함대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이 군함들은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식민지 방어를 위해 건조되었다. 1926년부터 이들은 군도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하고 각종 훈련에 참여했다. 한편 숨바와 플로레스는 그 '서투른' 조작성 때문에 승조원들에게 '클롬펜(de Klompen, 나막신)'이라는 호쾌하지 못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44년 3월 15일, 포함 두 척은 포츠머스에 도착했다. 이 항구 도시에서 네덜란드 자매함들은 나쁜 소식을 접했다. 마모된 15cm 함포 교체와 관련해 담당 영국 장교는 D-데이를 앞두고 조선소와 공장이 극도로 바빠 이 주문을 제때 완료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문제를 의제에 올려 제때 교체용 포신을 확보하고자 했고, 신청서를 리머릭(limerick, 5행 희곡시)으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숨바호에서 보고서가 들려왔다네
그들의 일제 사격은 룸바처럼 울린다고
두 문의 대포는 멀쩡하지만,
세 번째 5.9인치는,
고장 나서 발사를 거부한다네.
이 파격적인 행동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모든 절차가 진행되어 리머릭 애호가로 유명한 영국 해군 제1차관 A.B. 커닝햄 제독까지 답장을 보냈다. 함대 총감독관은 이렇게 적었다.
숨바가 참모부를 잠자리에서 깨웠다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그들이 제안하지 않는다는 것
개조를 거친 숨바를
(단 하나의 조건은 부드러운 벨벳 의자!)
'오버로드' 계획의 숙박선으로 배정하는 일을.
포함들은 곧 네덜란드 순양함 Hr.Ms. 수마트라(Sumatra)에서 가져온 새 15cm 함포를 장착했다. 6월 1일, 함장들은 오버로드 작전의 해군 부대인 넵튠 작전 지시를 받았다. 플로레스호는 아롱망슈 근처 골드 비치 앞바다에서 작전할 동부 기동부대(Eastern Task Force)에 배속되었고, 숨바호는 미군 상륙 해변 유타 비치 앞바다에서 미 해군 서부 기동부대(Western Task Force)와 함께 작전에 나섰다.
침공 중의 침공
6월 5일, 자매함들은 상륙 함대와 함께 노르망디로 항해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포격 진지에 배치되었고, 오전 6시 15분부터 독일군 진지에 포문을 열었다. 한 시간 반 동안 숨바호와 플로레스호는 각각 155발과 154발을 발사했다. 그 후에도 정기적으로 일제 사격을 가했고, 그 결과 저녁에는 탄약 재고의 절반만 남았다.
플로레스호는 6월 6일 늦은 저녁 영국으로 돌아왔다. 포츠머스에서 탄약과 유류를 보충한 뒤 다시 노르망디 해안으로 향했고, 이후 며칠간 영국 관할 구역의 홀게이트(Houlgate), 카부르(Cabourg), 디브쉬르메르(Dives-sur-Mer)의 독일 해안 포대와 요새를 연일 포격했다.
숨바호는 6월 12일 플리머스로 귀환했다. 승조원들의 실망과 달리, 미군이 함선의 노르망디 복귀 명령을 내리지 않아 6월 28일까지 그곳에 정박해 있었다. 6월 29일, 이 포함은 영국군 지휘로 이관되어 역시 포신 마모를 겪던 플로레스호를 교대했다.
마지막 전투
영국 관할 구역에서 숨바호는 7월 2일부터 10일까지 바방(Bavent)과 로베홈(Robehomme) 근처의 독일군 집결지와 디브쉬르메르의 해안 포대를 포격했다. 이 배는 총 446발을 발사했으며, 이것이 포함의 마지막 전쟁 임무로 판명되었다. 숨바호 역시 이번 작전으로 함포 포신을 다시 교체해야 했다. 이 군함은 7월 11일 포츠머스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네덜란드산 포신은 더 이상 구할 수 없었고, 배의 노후를 고려해 영국과 네덜란드 해군성은 이 배에 영국제 함포를 장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런던 샤드웰 베이싱(Shadwell Basin)에 계류시켰다.
플로레스호는 1944년 7월에도 작전을 계속했다. 포츠머스 체류 후 7월 22일 주노 비치(Juno Beach)에 정박했다. 이후 며칠간 이 네덜란드 함선은 그 진지에서 아직 가동 중인 적 포대들을 포격했다. 7월 26일에는 그중 한 차례 포격이 영국 관측기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을 크게 기쁘게 한 것은 이 항공기의 보고였다. "당신들의 사격은 매우 정확합니다. 실제 포에 4발의 직격탄을 명중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본 육해군 합동 사격 중 최고였습니다."
8월 2일부터 6일까지 함승 일부는 아롱망슈와 롱쉬르메르(Longues-sur-Mer)에서 플로레스호가 포격했던 해안 포대를 방문했다. 자신들의 성과가 남긴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또한 해안에서 적합한 포신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플로레스호는 8월 7일 스피트헤드(Spithead)로 출항하여 한 달간 어떤 작전도 없이 머물렀다. 9월 초, 이 포함은 런던으로 항해하여 숨바호 옆 샤드웰 베이싱에 정박했다. 테리블 트윈스의 제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전후의 삶
1945년 5월 독일 항복 후, 두 포함은 네덜란드로 귀환했다. 전후 초기 몇 년간 플로레스호는 로테르담-런던 간 연락선, 포술 훈련함, 어업 감시선, 사관생도 훈련함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1951년에는 프리깃함으로 재분류되었고, 4년 후 연습함으로 취역했다. 이 배는 1963년 예비 함대로 편입되었고 1968년 해체되었다. 숨바호는 1945년 이후 항공 관리선 및 레이더 훈련함으로 개조되었고, 1956년부터 숙박선으로 운용되다가 1985년 해체의 망치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