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운행을 시작한 지 정확히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런던 지하철(London Tube)은 연간 10억 명이 넘는 승객을 수송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
런던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지하철입니다. 1863년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던 런던에 지하철이 개통했을 무렵, 아시아에서는 이미 전기 교통수단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초기 런던의 객차는 지하철 열차라기보다 철도 객차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증기 기관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지하 역사에 가득 찬 증기와 황 연기로 인한 불편 때문에 이 방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전동화의 시작
"지하 공간을 최대한 빨리 환기시키는 해결책은 거리 수준까지 뚫린 대형 배기 통풍구를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런던교통공사(Transport for London)의 캔디스 존스는 말합니다.
런던 지하철의 전동화는 곧바로 시작되었지만, 모든 노선에 전력이 공급되기까지는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19세기에 북해 운하 같은 대형 인프라가 사람의 손으로 팠던 것처럼, 지하철 터널 역시 상당 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흙을 파낸 뒤 다시 덮는 '컷 앤 커버(cut and cover)' 방식이 널리 쓰였으며, 위치와 주변 건물에 따라서는 지하를 직접 굴착하기도 했습니다.
지하와 지상, 그리고 여러 운영사
런던 지하철 전체 노선 길이의 절반 이상은 오늘날까지도 지상 구간입니다. 초창기에는 런던 중심부를 도시 외곽의 미개발지나 신도시 성장 거점과 연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드문 이런 지역에서는 굳이 선로를 지하에 깔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의 회사가 하나의 노선을 독점 운영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영국에서는 여러 철도 회사가 같은 궤도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입니다. 퍼스트 그레이트 웨스턴, 노던, 사우스 웨스트 트레인즈 등 다양한 기업이 철도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런던 지하철 역시 초창기부터 여러 회사가 함께 운영해 왔으며, 설립과 건설 역시 단일 발주자나 재정 지원자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기술적 유산
런던 지하철의 건설은 빅토리아 시대 전성기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지하 굴착 작업이 본격화될 무렵, 런던~브리스틀을 잇는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처럼 야심 찬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선에는 당시 기준으로 전례 없이 큰 규모의 작업, 예컨대 클리프턴 현수교 건설 같은 과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템스강 아래 터널
산악 지형을 관통하는 터널 건설 경험은 철도 공사 과정에서 이미 쌓여 있었지만, 런던의 습윤토질 속에서 터널을 파는 일은 처음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은 19세기 초 템스강 하저 터널 굴착을 통해 관련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1798년 처음 제안되었고, 공사는 1820년경 시작되었습니다. 템스 터널은 물이 흐르고 항해가 활발한 강 아래를 뚫은 세계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템스 터널은 1843년, 정확히 170년 전에 개통되었습니다.
거센 파도와의 싸움
템스 터널의 건설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예고 없이 밀려들어 터널을 채우고 부분 붕괴를 일으킨 조류가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중단시켰습니다. 게다가 지질학자들이 토질을 점토로 잘못 판단했음이 드러났고, 일부 구간에는 유사(流砂)까지 존재했습니다. 결국 아이징바드 킹덤 브루넬이 아버지 마크 브루넬(역시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 엔지니어)로부터 작업을 이어받아 템스 터널 건설을 관철하고 완공해냈습니다.
굴착의 계속
원래 마차용 지하 통행로로 건설된 템스 터널은 결국 대규모 지하철망의 일부가 되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템스강 아래로 여러 개의 터널이 더 파였습니다. 옛 템스 터널은 현재 로더하이드 역과 와핑 역 사이의 비교적 짧은 이스트선 구간의 일부로 남아 있습니다.
런던 지하철의 첫 구간은 바로 메트로폴리탄 철도(올해로 개통 150주년)입니다. 디스트릭트선과 피카딜리선 같은 현대 런던 지하철 노선도 이 오래된 경로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터널망은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던 런던에 마차와 버스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신선한 공기와 대중화
지하 대중교통은 사람들의 통근과 상거래에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관광 산업에도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속도가 느리던 열차 요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웠습니다. 19세기 통계에 따르면 상당수 노동자들이 여전히 런던까지 도보로 출근했다고 합니다. 열차 여행이 모두에게 저렴해지기까지는 19세기 말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민들을 지하철로 이끌기 위한 매력적인 포스터들은 유명 예술가들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맨 레이가 런던 지하철 로고와 토성 행성을 함께 담아낸 우측 하단 포스터가 대표적입니다.
빅 브라더, 감시의 눈
오늘날 매일 2만 명의 기술자가 튜브(Tube)를 가동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노선 전체가 짧은 구간으로 나뉘어 각 구간마다 한 명의 기술자가 책임을 지는, 어마어마한 작업입니다. 네트워크 운영 센터는 274개 역과 동시에 운행 중인 500대의 열차를 총괄합니다. 카메라로 승객을 감시하고, 마이크나 승강장의 직원을 통해 무임승차, 음주, 역 내 오물 투기 등 행동에 대해 직접 주의를 줍니다. 비상 상황마다 고유 코드가 있는데, 코드 1은 출혈, 코드 2는 소변, 코드 5는 유리 파편 등을 의미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뿐'
향후 몇 년 안에 낡은 열차는 새 열차(1량당 약 1,000만 유로)로 교체되며, 2020년까지 140km의 레일 교체 작업이 진행됩니다. 그 규모는 100억 유로가 넘는 대형 사업입니다.
런던 지하철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최고의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런던 지하철의 모든 역을 담아낸 팀 맥크리디 같은 영상 아티스트들이 그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