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고고학자들은 네덜란드 아센(Assen) 근교에서 마지막 빙하기 시대의 네안데르탈인 야영지를 발견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특별한 발견이지만, 야영지가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내면서 그 흥미는 배가되고 있습니다. 왜 네덜란드 내 다른 네안데르탈인 유적지보다 이곳에는 주먹도끼가 훨씬 많이 발견될까요? 그리고 석기를 제작할 때 생기는 부산물인 폐기 조각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석기를 만든 '공방'은 분명 다른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이 유적은 5만 년도 더 전의 학살 현장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중기 구석기 시대의 네안데르탈인
약 13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 이어진 구석기 중기(중기 구석기) 동안, 중부 및 남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사냥과 채집을 하며 대체로 유랑 생활을 했지만, 때때로 일정 기간 한곳에 머무는 캠프를 차리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캠프가 대형 강 이남에서만 존재했다고 여겨졌습니다. 흐로닝언, 프리슬란트, 드렌터에서 가공된 플린트가 종종 발견되긴 했지만, 항상 산발적인 발견이거나 소수의 유물만 집중적으로 나온 유적이었습니다. 예외적으로 오버레이설의 만더(Mander), 그리고 힐버쉼 근교 코르버스보스(Corversbos)의 여러 밭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에서는 수십 점의 중기 구석기 유물이 수집된 바 있습니다.
새로운 발견
2006년 말, 흐로닝언 고고학 연구소(GIA)의 마르셀 니쿠스(Marcel Niekus)와 딕 스타페르트(Dick Stapert), 드렌츠 박물관의 얍 뷰커(Jaap Beuker)가 '네덜란드 북부 중기 구석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흐로닝언과 라이덴의 학생들, 그리고 네덜란드 북부 전역의 수많은 아마추어 고고학자들도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아센 근교 계곡 가장자리에서 네안데르탈인 캠프가 발견되었는데—정확한 위치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이후 거의 50점의 중기 구석기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만더와 코르버스보스에 이어 대형 강 이북 지역 최대 규모의 야영지이자, 네덜란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유적지입니다.
임시 야영지였을 가능성
흥미로운 점은 아센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더와 힐버쉼의 유적지가 석기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 '일반적인' 캠프로 간주되는 반면, 아센 근교 캠프는 임시 야영지로만 기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을 도축했고, 나무 도구도 만들었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아마도 둘 다였겠죠."라고 니쿠스는 설명합니다.
이례적으로 많은 주먹도끼
이 캠프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발굴된 주먹도끼(hand axe)의 숫자입니다. 지금까지 아홉 점이 수거되었으며, 이는 전체 유물의 약 20%로 전례 없이 높은 비율입니다. 비교하자면, 만더에서는 30여 년에 걸쳐 약 65점의 유물 중 주먹도끼가 단 한 점만 나왔고, 코르버스보스에서는 수십 점의 네안데르탈인 유물이 발견되었음에도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양면 가공 석기의 형태—특히 삼각형 및 준삼각형 계열—를 근거로, 이 캠프는 무스티에 문화 중 아슐리안 전통(MTA)의 초기 단계, 즉 5만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아센 근교에서는 주먹도끼로 추정되는 파손된 반제품과 작고 다소 실패한 복제품들도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에, 연구진은 일부 주먹도끼가 현장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소 서투른 주먹도끼는 네안데르탈인 아이가 만든 것일 가능성도 충분합니다."라고 스타페르트는 덧붙입니다. 돌을 다루는 기술은 누구에게나 쉽게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했던 법입니다.
'짐'으로 들여온 도구들
그러나 발견된 유물 대부분은 외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몇몇 주먹도끼와 소위 르발루아(Levallois) 기법으로 제작된 칼날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짐으로 챙겨 온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이동 중에 도구를 휴대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니쿠스는 말합니다.
추론 과정은 단순합니다. 주먹도끼를 만드는 사람은 반드시 폐기물을 남깁니다. 즉, 도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플린트 조각들입니다. "주먹도끼 하나를 만들 때 수십 개의 조각이 생깁니다."라고 니쿠스는 설명합니다. 그러나 아센 야영지에서는 이런 폐기물이 극히 적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 유적지에서 수년간 활동하며 밭 위를 수백 시간 걷고 수만 개의 플린트를 수집했습니다. 만약 그 주먹도끼와 르발루아 칼날이 현장에서 제작되었다면, 반드시 관련 조각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살과 목공의 현장
현재 연구진의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몇 개의 주먹도끼와 르발루아 칼날을 가지고 북부 드렌터에 도착해, 이 도구들을 사용한 뒤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타당한 설명은 우리가 임시 야영지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니쿠스는 말합니다. 동물을 도축한 장소이거나, 나무 도구를 제작한 장소, 혹은 둘 다였을 수 있습니다. 스타페르트는 "해외 유적지 연구에 따르면 MTA 주먹도끼가 때때로 도축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목공에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작은 주먹도끼는 거친 도축 작업에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처럼 많은 주먹도끼와 적은 폐기물이 공존하는 네안데르탈인 캠프가 발견된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더 흔한 패턴입니다. 예컨대 아센의 상황은 독일 오흐트미센(Ochtmissen) 유적지에서 알려진 양상과 유사합니다. 니쿠스는 "네안데르탈인들도 이곳에 주먹도끼를 짐으로 들여와 정착했습니다. 도구를 사용했지만 현장에서 석기 제작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핵돌 몇 개를 손보고, 가끔 주먹도끼 날을 다듬은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장소에 사냥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찾아왔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연구는 계속된다
한편 조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U)의 지질학자들과 지질고고학 전공 학생들도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수만 년 전 이곳을 누비던 네안데르탈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단서가 지역 지층 속에 더 숨어 있는지 탐색하고 있습니다.
드렌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 네안데르탈인 야영지의 출토 유물들은 2011년 새로 문을 여는 드렌츠 박물관의 상설 전시에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