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운전자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연료값은 비싸고, 도로 사정도 여전히 많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좋은 아스팔트 구간이 생기면 곧바로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되곤 하죠. 하지만 약간의 위안이 될 만한 사실 하나는, 전간기(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 시기) 폴란드 자동차 운전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을 견뎌야 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제2차 폴란드 공화국이 자동차 통행에 적합한 도로를 얼마나 확보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1939년 출판된 신뢰할 만한 자료인 『재건된 폴란드의 20년 교통사』를 펴보면, 저자들은 무색할 정도로 솔직하게 이렇게 적었습니다.
"폴란드에서 도로 재건과 개선된 포장의 사용은 1928년 실레시아에서 시작되었고, 1931년부터는 국가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37년 12월 31일까지 완성된 구간은 돌 포장 1,018km, 콘크리트 포장 189km, 클링커 포장 446km, 나무 블록 포장 3km, 역청 포장(아스팔트 및 타르) 951km로, 총 2,607km였다."
"1938년에는 추가로 350km의 도로가 재건되어, 그해 말 기준 우리는 2,957km의 개선된 자동차용 도로를 보유하게 되었다."
1939년에도 비슷한 속도가 유지되었다고 가정하면, 전쟁 발발 직전 폴란드에서 자동차가 편리하게 달릴 수 있는 도로는 고작 3,000km 남짓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포장도로들이 존재했는데, 1938년 4월 1일 기준 전체 길이는 63,169km였습니다.

이런 도로에서는 마차 통행만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꽤 많다'고 생각하시나요? 전혀 아닙니다. 대부분이 소위 조약돌을 깔아 만든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도로에서의 주행은 자동차에게 즐겁지도 안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통계 집계에서는 '자동차 도로'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 혹은 폴란드 피아트!
비교를 위해 말씀드리면, 2008년 12월 31일 기준 폴란드는 도시 및 근교 경량 포장도로를 합쳐 총 261,000km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61,000km와 3,000km를 비교해보면, 오늘날 폴란드에는 전쟁 전보다 무려 87배나 많은 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는 1945년 이후 국토 면적이 39만㎢에서 31만2,000㎢로 줄어든 것까지 감안한 결과입니다.
도로 건설, 재건 및 유지보수에 대한 지출 내역도 흥미롭습니다 (실레시아 주 제외). 1927/28년부터 1937/38년까지 이 목적으로 총 13억6,000만 즈워티가 배정되었으며, 그중 5억6,900만 즈워티는 지방정부 예산에서 충당되었습니다. 많은 금액일까요?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937/38년 해당 지출은 1억6,400만 즈워티였고, 그중 6,300만 즈워티가 지방정부 부담이었습니다. 국가가 지출한 1억100만 즈워티(건설·재건 7,600만, 유지보수 2,500만)는 전체 예산 지출의 단 4.2%에 불과했습니다.
수행된 사업의 약점은 유지보수에 필요한 자금이 크게 부족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의원이 1938/39년 예산안 심의 토론에서 지적했듯, 그 예산에는 국영 도로를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금액의 고작 16%만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 폴란드에는 인구 1만 명당 자동차가 고작 10대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은 폴란드 피아트 508 (출처: 퍼블릭 도메인).
도로가 없으니 자동차도 없다
도로 부족은 폴란드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9년 초 폴란드에 등록된 자동차가 고작 41,948대였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택시 5,216대, 버스 2,038대, 화물차 8,609대가 포함됩니다.
통계적으로 폴란드에는 인구 1만 명당 자동차가 10대였습니다. 비교하자면 영국은 511대, 프랑스는 523대,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독일은 251대, 포르투갈은 63대였습니다. 심지어 인구 1만 명당 13대를 보유한 루마니아마저 우리를 앞섰습니다.

제2차 폴란드 공화국에서 평범한 서민이 자가용을 갖는 것은 꿈처럼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좋은 도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평균적인 서민의 눈에 자동차 가격 또한 매우 높게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인기 모델이던 1938년식 쉐보레의 가장 저렴한 버전은 7,640 즈워티였습니다.
같은 시기 섬유 공업 노동자의 주급은 약 30 즈워티 수준이었습니다. 이 숫자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재건된 폴란드의 20년 교통사』로 돌아가, 당시 우리의 '꿈의 고속도로'에 대해 어떻게 적혀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속도로는 자동차화된 도로의 이상형이며, 의심할 바 없이 미래의 길이 될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도로 건설 분야의 그 밖의 수많고 시급한 과제들을 고려하여, 당분간 미래 도로망 계획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으로만 진행되었다."
이 인용문이 어딘가 낯익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