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생각보다 훨씬 '로마적'이었던 바타비아인

바타비아인, 통념과 달리 깊이 로마화되어 있었다

서기 초 무렵 현재의 네덜란드 지역에 살았던 바타비아인(Batavians)은 기존 학계의 예상과 달리 놀랄 만큼 깊이 로마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네덜란드 과학기구(NWO) 소속 고고학자 스테인 헤런(Stijn Heeren)의 연구에 따르면, 바타비아인들은 로마 지배가 시작된 불과 수십 년 만에 요리부터 건축, 목욕 문화까지 로마식 생활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는 9월 23일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U University Amsterdam)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헤런은 틸(Tiel) 인근에서 발굴된 유물과 정착지·매장지의 흔적을 면밀히 조사했다. 네덜란드 역사에서 바타비아인은 흔히 잔혹한 억압자에 맞선 용감한 민족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이른바 '소박한 사람들' 또한 로마의 특징을 상당 부분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작은 농촌 공동체는 로마식 관습이 도입된 마을로 점차 변모해 갔다.

식탁 위와 목욕탕 속의 로마

헤런은 유적지의 연대기를 분석하고 특정 유물 범주들을 검토함으로써, 현지 주민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로마 제국의 경제·군사·문화 질서에 편입되었는지 규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로마 지배 후 불과 수십 년 만에 바타비아인들이 이미 요리에 로마산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농부들이 로마인처럼 목욕탕에서 화장품과 오일을 사용했으며, 농가 역시 로마식 건축 양식을 본떠 지었음이 드러났다.

돈과 전쟁이 가져온 변화

헤런은 바타비아인의 로마 사회 통합을 이끈 두 가지 핵심 요인을 지목한다. 첫 번째는 로마군 주둔지였다. 로마 군단 캠프는 바타비아인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바타비아 농부들은 로마 병사들에게 식량을 공급했고, 그 대가로 로마식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타비아 경제는 점차 로마에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통합에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마도 바타비아인들이 로마군에서 맡았던 역할일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25년간 로마군에서 복무했으며, 제대 후에는 로마 유물과 관습을 고향으로 함께 가져왔다. 헤런의 연구가 틸-파세바위(Tiel-Passewaaij) 농촌 공동체에 국한되긴 했지만, 이 공동체는 바타비아 세계 다른 지역의 농촌 사회를 이해하는 데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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