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네덜란드 거의 모든 도시에서 불법 매춘이 엄격히 단속되고 있는 것과 달리, 17세기 암스테르담에는 그러한 통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매춘 행위는 1578년부터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널리 묵인되었습니다.
동인도 선원들이 몰려드는 여름
암스테르담의 매춘부들이 가장 바빴던 시기는 여름과 늦여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동인도회사(VOC) 소속 배들이 대거 입항하거나 출항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해로 두둑해진 돈주머니를 든 선원들은 육지에서 즉석 유흥거리를 찾았습니다.
달아오른 선원들의 욕망은 어딘가에서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문제는 그 상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상인 계층의 정절 있는 부인들과 딸들이었죠.
실제로 1698년 한 독일 여행자는 암스테르담에 매춘업이 없었다면 "적도를 넘으며 수치심을 잃고, 인도의 태양에 피가 끓어오른 선원들의 정욕으로부터 정직한 아내를 지켜낼 남편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선원과 매춘부, 같은 계층의 공생 관계
선원과 매춘부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두 집단은 대체로 같은 사회적 계층 출신이었으며, 도박장과 창관에서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고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체포된 매춘부들의 진술을 보면, 그들의 손님은 대부분 동인도 선원들이었다고 합니다.
화려함 뒤에 도사린 위협, 성병
그러나 이 세계가 언제나 축제 분위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콘돔이 소규모로나마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고, 그 이전에는 성병이 언제나 곁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페인 천연두'라고 불린 매독은 가장 두려운 질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치료법이 전혀 없었고, 감염 시 종종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누구나 선원과 매춘부가 성병의 주요 전파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시민 남성들이 과연 어떻게 성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