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암스테르담 리크스뮤지엄(Rijksmuseum)의 '말년의 렘브란트' 대규모 전시가 막을 내리기 무섭게,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도 같은 주제의 전시회를 선보입니다. 그러나 두 미술관의 접근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단 한 점의 그림 『사울과 다윗(Saul and David)』에 담긴 과학적 조사 결과에 초점을 맞춘 반면, 리크스뮤지엄은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속고 있는 걸까요?
마우리츠하위스 쪽에서는 이번 기회를 놓친 리크스뮤지엄을 비웃으며 '특종은 이제 우리 몫'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네덜란드 미술관이 한 점의 그림 뒤에 숨은 과학적 조사를 전시의 주제로 내걸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사 결과 『사울과 다윗』은 여러 조각으로 잘려 있었고, 다른 캔버스의 조각들과 함께 다시 맞춰졌으며 일부는 덧칠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그런 그림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봄 리크스뮤지엄의 렘브란트 전시에서는 연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실제로 전시된 작품 중에는 연구를 통해 나중에 부분적으로 덧칠된 사실이 밝혀졌고, 기존 미술사 이론의 재검토가 필요한 작품들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웃다가 숨을 거두다
리크스뮤지엄은 방문객들에게 이 그림들을 둘러싼 과학적 조사, 대가의 손길에 대한 의문, 흔들리는 미술사적 이론까지 모두 감추기로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기만 행위로 느껴집니다. 좋은 예가 1662년경 제작된 『제우시스로 분한 렘브란트 자화상』입니다(1936년부터 쾰른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 소장).
리크스뮤지엄의 설명판에 따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고대의 화가 제우시스는 많은 여성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 골라 하나의 이상적인 이미지로 합쳤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결코 렘브란트의 방식이 아니었다. 렘브란트는 제우시스의 일화 중 덜 알려진 이야기를 골랐다. 즉, 추한 늙은 여인을 그리다가 웃음에 질식해 죽었다는 일화다.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확실히 고전을 따랐지만, 고전적인 이상을 그리지는 않았다!"
저는 이 느낌표를 지어낸 것이 아니며, 렘브란트가 이 소재를 선택한 동기에 대한 그 확신 역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림 자체가 렘브란트의 작품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미술사학자들이 이 해석을 내놓은 것은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2012년)에 따르면 자화상의 입과 눈썹 주변의 물감은 턱 부분의 물감보다 나중에 칠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X선 촬영 결과에서도 렘브란트가 처음에는 훨씬 덜 유쾌한 표정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저 광기 어린 듯 활짝 웃는 입매와 치켜 올린 눈썹은 후에 렘브란트의 얼굴 위에 덧칠된 것이며, 캔버스 위의 늙은 여인 역시 나중에 추가된 인물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우시스로 분한 렘브란트'라는 해석의 근거는 리크스뮤지엄이 방문객들에게 보여준 것보다 훨씬 불확실해집니다.
뜻밖의 색채 명장
또 하나의 좋은 예는 렘브란트의 파란만장한 노년에 대한 통념입니다. 말년의 대가는 사랑하는 헨드릭예(Hendrickje)와 아들 티투스(Titus)의 죽음, 그리고 파산으로 인해 깊은 우울에 빠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를 대가의 말년 화풍이 어두워졌다는 점 등에서 추론해냈습니다.
소급해 보면 전혀 이상한 이론이 아닙니다. 그토록 많은 불행을 겪었다면 누가 슬프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과학적 연구는 렘브란트가 말년 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색을 사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물감 속 안료는 세월이 흐르면서 변했습니다. 예컨대 파란색 안료인 '스몰트(smalt)'는 수 세기에 걸쳐 색을 잃고 갈색으로 변합니다. 그럼에도 리크스뮤지엄은 비참한 우울증 환자라는 버전을 고수했고, 변하는 물감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는 한 마디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양이 질보다 중요한가?
물론 미술관들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호하고(비참한 우울증 환자 렘브란트, 터무니없이 입을 벌리고 웃는 렘브란트), 소중한 그림에 나중에 손대졌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다행히 마우리츠하위스는 과학을 위해 과감히 나섰습니다. 아예 하나의 전시를 열어 연구 결과를 방문객들과 공유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모은 말년의 렘브란트 작품으로 '평생에 한 번'일 회고전을 열었던 리크스뮤지엄의 접근 방식과는 사뭇 다릅니다. 들려오는 말로는 백 점이 넘는 작품과 5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상대하는 전시에서 설명판에 너무 많은 정보를 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작품 뒤의 연구가 더 궁금하면 웹사이트를 찾아보라고요.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도 소장 기관 자신조차 의문을 제기하는 '웃는 제우시스 렘브란트'라는 강경한 서술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미술관 방문이란 단지 아름다운 그림을 구경하는 것 이상이 아닌가요? 어떻든 숨겨진 정보는 저에게 불편함을 안겼습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또 무엇을 말해주지 않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