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0년간 네덜란드 남서부에서 발생한 홍수의 30% 이상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쟁 중에는 적을 막거나 몰아내기 위해 땅을 정기적으로 침수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U University Amsterdam)의 역사지리학 연구자 아드리안 데 크라커(Adriaan de Kraker)가 밝혀낸 결론이다.
위험한 전술
전시에는 전문가들이 제방 붕괴 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점을 지목하곤 했다. 그러나 계획된 침수 이후 제방 복구 계획은 대부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결과 제방은 수십 년 동안 손상된 채 방치되거나 아예 복구되지 않기도 했다. 그렇기에 홍수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여러 곳의 경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젤란트플란더런(Zeeuws-Vlaanderen)의 사프팅허 가트(Saeftingher Gat), 헬레가트(Hellegat), 브라크만(Braakman), 하벤가트(Havengat) 같은 조류 수로는 1580년대 침수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진흙 퇴적은 두껍고 비옥한 점토 토양을 형성했으며, 염수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토양 염분화까지 일어났다.
"홍수를 일으키는 것은 위험한 전술입니다"라고 데 크라커는 말한다. "제방의 신속한 복구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포함한 신중한 계획이 뒷받침될 때에만 잘 작동합니다. 그런데 제 연구에 따르면 이런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팔십년전쟁 당시 네덜란드 반군이 스페인군을 저지하기 위해 일으킨 홍수 이후 복구 자금이 마련되었더라도, 그 돈은 종종 복구 작업 대신 군사 목적으로 전용되었다. 데 크라커는 이번 연구 결과를 학술지 『수문학 및 지구 시스템 과학(Hydrology and Earth System Sciences)』에 발표했다.
점점 더 전략적으로
데 크라커는 역사 지도, 제방 피해 보고서, 해안 제방 유지 관리 기록, 침수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인물들의 서신 등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전쟁에서 홍수가 전술로 사용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어느 역사책에서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00년간 다양한 유형의 침수가 가져온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데 크라커가 처음이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물은 잠재적인 적과의 싸움에서 인간의 동맹이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중세 성 주변의 해자만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데 크라커의 연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계획된 침수는 팔십년전쟁 중에 일어났다. 오라녜 공 빌럼(Willem van Oranje)이 이끄는 네덜란드 반군은 스페인군을 저지하기 위해 서스헬더 강의 플랑드런 지역을 침수시켰다. 1584년과 1586년에 사프팅헤, 캄펀, 테르뇌젠에서 제방이 뚫렸고, 결국 젤란트플란더런의 3분의 2가 물에 잠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토 침수 전술은 점점 더 전략적으로 발전했다. 16~17세기에는 갑작스러운 영감이나 긴급 상황에 따라 홍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며칠 안에 국토를 침수시킬 수 있도록 젤란트의 플랑드런 지역에 특수 인프라가 이미 건설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네덜란드는 물을 무기로 마지막으로 사용했다. 1944년에는 연합군이 발헤런(Walcheren)을 침수시켰고, 해방이 눈앞에 다가온 1945년 4월 17일에는 독일군이 비린헤르메르 포르더르(Wieringermeerpolder)를 잠시 침수시켰다. 이로 인해 8,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네덜란드에서 전쟁 목적으로 이루어진 이 마지막 침수는 데 크라커의 연구 범위 밖에 있다.
1945년 비린헤르메르 포르더르 침수에 관한 폴리곤 뉴스(Polygon News) 단편 영상. 출처: NPO History, VPRO
자연만의 계획
현대 전쟁에서 물은 우리 지역에서 무기로 적합하지 않다. 전투기나 폭격기를 침수된 포르더르(간척지)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도 땅을 의도적으로 침수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라고 데 크라커는 말한다. "다만 그것은 자연 복원이라는 맥락에서입니다." 그는 자연 복원 담당자들이 과거 침수의 결과에 대한 지식을 더 폭넓게 활용하고, 문화경관을 물에 내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깊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는 한 예로 18세기 플랑드런인들이 슬라위스(Sluis)와 도얼(Doel) 마을 사이 지역에 구축한 방어선을 꼽는다. 위급 상황이 닥치면 그곳의 일부 지역을 침수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역이 퇴적되면서 결국 방어선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에게는 자연만의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데 크라커는 말한다. "군인이든 자연 복원 담당자든 모두 이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방치의 대가
네덜란드 문화유산청(Cultural Heritage Agency of the Netherlands)에서 자연지리학·고지리학 연구자로 일하는 헹크 베르츠(Henk Weerts)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데 크라커의 연구 결과를 놀랍지 않다는 반응으로 받아들였다. "30%라는 숫자는 놀랍지 않습니다. 팔십년전쟁 당시의 군사적 침수만 봐도, 그로 인해 사프팅헤의 침몰 땅(Drowned Land of Saeftinghe)이 사라졌으니까요." 베르츠는 전쟁이 간접적으로도 홍수를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호크스바르트, 비스보스, 서브라반트 일부를 잃게 만든 1421~1422년 성 엘리자베스 홍수는 부분적으로 호크와 카베야우 전쟁(Hoekse en Kabeljauwse twisten) 당시 제방 방치가 원인이었다. "전쟁 때문에 제방 유지에 쓸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