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가족의 초상에 계란이나 토마토를 던져도 된다. 여왕의 날, 곧 국왕의 날로 바뀔 이 축제일에는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네덜란드 왕정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고 피터 얀 므르리는 말한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여왕의 날에 받침대에서 내려온 최초의 군주였습니다. 그녀는 직접 백성들을 찾아가 마치 백성과 하나가 된 듯 행동했습니다."
므르리는 메르턴스 연구소의 민족학자로, 왕국 선포 200주년을 맞아 책 집필에 공동 참여하는 한편 라이덴에서 열리는 '민중의 오라니즘' 강연 시리즈에도 출연하고 있다. 올해 초 그는 메르턴스 패널 회원들을 대상으로 왕정과 오렌지 감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1,200명 이상이 응답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왕실을 향한 긍정적 감정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관용적 왕정주의자들
설문조사 결과 네덜란드인들은 확실히 오렌지 지향적이다. "응답자의 68%가 왕정을 지지했고, 18%가 반대했으며, 14%는 무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므르리는 이 수치에 단서를 단다. "찬성자가 모두 왕정의 열렬한 옹호자인 것은 아닙니다. 이 집단에는 소위 '관용적 왕정주의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사실 크게 개의치 않으면서도 현 체제가 나쁘지 않다고 여기지만,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베아트릭스 여왕이 해온 방식은 좋았지만, 빌럼알렉산더르가 어떻게 해낼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죠. 만약 기대에 못 미치면 견해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68%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 그대로의 왕실을 지지하는 셈입니다. 더 나은 대안이 없다는 생각도 한몫합니다. 대통령제가 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 지켜봐야 하고, 대통령제는 훨씬 정치적으로 기울며 비용도 적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반대론자들이 왕실이 대통령제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사람들은 값비싼 궁전을 예로 들지만, 왕실이 거처를 옮기면 그 건물은 기념물이 되고 유지 보수 비용은 여전히 발생합니다. 정부정보서비스(RVD)가 왕실 재정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많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렌지 감성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왕정주의자들은 오렌지 감성을 지지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반대측은 주로 스포츠와 연결 짓는 반면, 왕정 지지자들은 오렌지색이라 하면 곧바로 왕실을 떠올린다. 므르리는 이 용어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오렌지 감성은 사람들이 스스로 쓰는 표현이라기보다 미디어가 만든 용어에 가깝습니다. 아무도 '나는 지금 오렌지 감성이 넘쳐흘러'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왕정, 왕가, 혹은 오라녀 왕가와의 유대감을 느낄 뿐입니다. 참고로 우주인 안드레 카위페르스 같은 네덜란드의 영웅과 오렌지 감성을 연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오렌지는 성공과 특별한 업적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현대적인 왕가
네덜란드 국민의 상당수가 왕정에 긍정적인 데에는 베아트릭스 여왕의 공이 크다고 연구자는 분석한다. "베아트릭스 여왕의 전문성 덕분에 왕정은 한층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백성에게 열어준 개방성도 중요합니다. 율리아나 여왕 시절에는 위계질서가 여전히 엄격했습니다. 생일마다 백성들이 소스트데이크 궁으로 찾아가 선물을 바치던 퍼레이드는 오늘날의 여왕의 날과 정반대의 풍경이었죠. 이제는 여왕 자신이 백성들을 찾아갑니다."
므르리에 따르면 여왕의 날은 문자 그대로이자 은유적으로 카니발에 비유할 수 있다. 일상의 역할이 뒤바뀌는 날이기 때문이다. "왕가는 잠시 화려함을 벗습니다. 오라녀 가문도 우리 모두와 같은 평범한 시민임을 모든 면에서 보여주는 것이죠."
빌럼알렉산더르 국왕 역시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관 기념 동전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 므르리의 설명이다. 동전 뒷면에는 왕권의 상징물 대신 단순히 군중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왕세자 시절에도 그는 여왕의 날 행사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바로 이런 역전 덕분에 사회는 세습군주제라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제도와 타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응답자들은 이 역전의 한 단면, 즉 왕세자가 변기를 던졌던 사건에는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왕실은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움직인다. 백성에게 다가가는 것뿐만 아니라 왕자와 공주들이 평민과 결혼하는 점도 그 예라는 것이 므르리의 분석이다. "왕가에 항상 새로운 평민의 피가 들어오기 때문에 근친교배가 없습니다. 19세기까지 유럽 왕가에서는 근친결혼이 만연했고, 그로 인해 지능에 문제가 있는 후계자가 즉위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재위 중 퇴위가 가능하다는 점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스페인을 보십시오. 그곳에서는 국왕이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관례였고, 지금은 네덜란드를 본받고자 합니다."
전형적으로 네덜란드적인 왕실
므르리는 네덜란드 왕실이 현대적일 뿐 아니라 전형적으로 네덜란드적이라고 강조한다. "비용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언제나 있어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검소한 왕실을 유지해 왔습니다. 예컨대 빌헬미나 여왕은 결혼 후 랑에 포르하우트에 거처를 정했는데, 도심의 궁전이긴 했지만 사실상 연립주택 수준의 집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네덜란드 왕정은 덜 연극적인 형태의 군주제를 보여줍니다. 황금 마차 역시 왕실이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하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래서 '그냥 해버리자!'가 네덜란드 오라녀 가문의 좌우명처럼 보인다.